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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전혜린 - 두리소설 2
정도상 / 두리미디어 / 199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여자 전혜린. 이 책은 전혜린을 만나는 또 다른 통로였다. 그녀 자신의 수필도 아니었고 타인의 평전도 아니었다. 소설이다. 그러나 완전한 픽션으로 볼 수도 없다. 이 책은 또 다른 평전이기도 하다. 기존의 평전들이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해 다루고 있다면 이 소설은 단지 그녀의 내면세계를 유추하고 파악했다(혹은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것은 소설이라는 점. 잊지 말아야 한다. 소설이라는 점.
필자, 정도상은 1960년생. 전혜린이 한참 생을 살아갈 당시에 필자는 태어나지도 않았거니와 그녀와 공존했던 기간은 불과 5년이다. 결국 이 소설은 이 소설은 오로지 그녀의 수필만을 통해 세워졌으리라. 필자는 고인이 된 전혜린 여사에게 누가 가지 않을까 조심했기 때문인지 글 속 전혜린을 주영채라는 가상의 인물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 소설은 '소설가 소설' 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전혜린이 소설을 쓰고 그 소설속 내용이 주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소설 속 전혜린은 자신의 소설 속에 주영채라는 인물을 등장시키지만 독자는 누구나 주영채=전혜린이며 주희=주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백창우, 쟌느, 강문철을 가상의 인물로 내세워 허구와 재미를 가미했지만 전혜린 그녀의 본질은 손상시키지 않고 가미하지 않으려 애쓴 내색이 역력했다. 주로 그녀의 수필을 인용하는 것으로 모든 대사를 풀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절절하게 느낀 점은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들을 그녀의 지식과 인식의 열정을 추앙하지만 그녀 자신에게는 아버지로부터 만들어진 삶이었으며 한 남자의 아내로도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전혜린. 그녀는 철학과 문학에 대한 인식에의 욕망과 열정, 주혜와의 우정, 딸 정화를 향한 모정, 그리고 장 아제베도를 향한 사랑만이 그녀로 하여금 삶을 살아지도록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장 아제베도는 누구일까? 원래 그녀의 수필에는 실명이 거론되어 있었지만 유작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친지 및 측근에 의해 그 남자는 '장 아제베도' 가 되었다. 미지의 인물이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긴 전혜린이 시시한 남자를 사랑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의 실명이 거론된다면 사회적인 파장이 있으리 만한 인물이었으리라는 생각. 잡. 생. 각일지도....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는 궁금하지 않다. 오히려 장 아제베도로 나타났기에 우리 모두 전혜린과 함께 그에게 연정을 품을 수 있는 것일지도.
아, 너무 짧은 생을 산 전혜린. 그녀가 길디 긴 삶을 살았다면 이토록 아름답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적어도 '불꽃같은 생' 이라는 꾸밈말이 붙지는 못했으리라. 나는 전혜린처럼 고독하고 싶다. 인식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찬 육신이고 싶다. 불운했다면 불운했을 그녀의 삶이지만 오로지 그녀의 그런 철학적인 성향은 나를 매혹하기에 충분하다. 아, 전혜린. 파헤칠수록 기묘한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