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본 순간, 나는 제목의 쉼표에 제일 먼저 눈길이 갔다.  쉼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얼마나 클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쉼표를 보는 순간 쉼과 같은 책이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나의 관심을 끓었는데 아니, 뭐라고?  게다가 저자가 루시드폴이라니.  오오~  루시드폴의 팬이라고 하기엔 조금 아쉬운 구석이 있겠지만 나는 그의 많은 노래들을 참 좋아한다.  처음 그의 노래를 들었을때는 그 읊조림이 얼마나 신선하던지.  또한 가사 역시 참으로 아름다웠다.  세간에 불려지고 들려지는 곡과는 약간 다른,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글이라니. 

  망설임없이 선택한 책.  한 장 한 장씩 얼마나 야금야금 읽어내려갔던지.  한번에 쓰윽 읽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읽어가고 싶었다.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이면 다 읽을 이 책을, 나는 꼬박 일주일동안 읽었다.  편지글이라는 사적인 느낌을 나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이들처럼 한 작가와 편지를 나눈 일이 있다.  잠깐 소개하자면 그 작가는 동화작가였고 나의 어린시절(당시, 국민학교 3학년) 나에게 책읽는 즐거움을 알게 하고 내게 작가라는 꿈을 소망하게 한 동화의 저자와 편지를 나눈 일이다.  나는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어디론가 사라진 그 책을 찾았고 내게 없다는 것을 알고 출판사며 헌책방을 전전했다.  그렇게 책을 쫓다 그 책의 작가와 인연이 닿았다.  나는 책을 구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 동화가 나의 인생을 크게 바꾼 책이었다는 점을 메일로 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그렇게 시작된 메일 교환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었다.  나는 나의 글이야기, 책이야기, 일이야기를 했고 그도 그의 글과 책, 그리고 사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던 그 동화책의 작가인 선생님의 편지글 앞에서는 항상 숙연한 마음으로 답장을 했고 그러다 보니 나는 편지에 답을 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던게 사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몇 해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느낌, 동경의 대상, 존경의 대상으로부터 오는 그 소중한 메세지의 설레임.  나는 루시드폴과 같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소박했다.  학업, 일, 음악, 여행, 가족, 타국 이야기.  그리고 그에 빠질 수 없는 고국에 대한 향수.  이국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의 영원한 화두, 노스탤지어.  나는 마종기라는 시인의 시를 일부러 찾아 읽은 기억은 없다.  우연히 몇 편의 시를 읽은 듯 하다.  그러나 사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그가 마해송씨의 아들이라니.  나는 아동문학가였던 마해송씨를 더 잘 알았다.  아니 그가 내겐 더 귀익은 사람이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이 책에서 나는 나이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가 좋아할만한 음반을 선물하고 그 곳이 서울이건, 로잔이건 그 어디건 서로의 편지에 회신을 하고.  열정의 삶을 서로 반추해보는 그들의 애정어린 우정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내게도 이렇게 삶을 나누고 '니가 보고싶어' '널 사랑해' 라고 말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편지와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인 소통이 가능한 누군가의 깊이 있는 편지는 삶의 아주 큰 활력과 용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편지의 후미부분에서 그들이 만났다.  서울의 한 곳에서.  그 둘의 정겨운 사진에 괜시리 내가 다 즐거워졌다.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겠지?  서로를 위한 격려와 사랑의 메세지는 여전하겠지.   

  둘의 편지글을 담은 이 책은 그들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를 주는 책일테다.  어쩌면 이 책으로 인해 그들은 정말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들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두 사람 사이의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 음악사
오카다 아케오 지음, 이진주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작년 겨울부터 올 봄까지는 정말 책을 읽지 못했다.  항상 곁에 두긴 했으나 서너권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읽고도 서평도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유를 되찾았던 것인지, 부지런히 책을 읽지 못하는(않는) 내 스스로가 못마땅했던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서양음악사>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서양음악사에 유달리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오랜 공백기간을 깨고 책을 읽는 내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 하나로 급작스럽게 선택한 책이었다.  하지만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이 책을 나의 '회복'의 도서로 삼았던 이유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전에 삼양미디어의 상식 시리즈 중 두 권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독자로 하여금 '상식'을 목적으로 하는 책인만큼 굉장히 쉬웠고 재미있었다.  무언가 알고 싶으나 너무 어렵게 여겨지는 어떤 것을 처음 접할 때는 상식을 목적으로 하는 책들이 참 유익한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펼치고 저자의 머리말을 읽으며 참 설렜다.  '대놓고 어렵게 기술하지 않겠다 하니 서양 음악사에 대해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예술서적이나 전문서적을 읽다보면 전문가의 젠 체 하는 자세들을 참 많이 보게 된다.  독자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 나 이만큼이나 알고 있는 대단한 작자라구' 하는 식의 오만한 저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머리말에서'예비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을 전제해서(갖고 있어야만 하는 것 같은)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집필의도가 얼마나 편안한 마음을 갖게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책장마다 가득 담긴 컬러 사진들과 삽화는 더욱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일으켰던 것 같다.  그리고 지난 번, 상식 시리즈 중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음악들을 담은 CD도 함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CD까지 함께.  오우~  제대로 즐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  

  그러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실 이런 책은 읽고서 모든 것을 명확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전 지식이 깊었던 사람들에게는 정확한 라인을 그어 줄 것이며 나같이 전혀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흐릿하게나마 서양 음악의 역사를 그려주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이 어떻고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어떤지를....  그런데 이 책은 내게 음악을 단순히 귀로 듣는 일 뿐 아니라 그 곡의 흐름과 그 곡의 늬앙스를 유심히 바라보도록 해 준 책이다.  모든 곡이 그저 작곡가의 취향과 스타일대로 지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런 곡들이 당대의 시대상 흐름과 느낌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예술은 본디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음악들의 그 기원이 성가에서 시작한 것들이 많고 수많은 화가들이 성화와 수태고지 등을 그렸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모든 음악과 모든 그림들이 이것들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그 시작에는 신의 영화로움과 찬양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 책은 쉽지 않았다.  아니 나에게 쉽지 않은 책이었다.  특히 이 책은 당대의 창작배경과 음악의 발전화 그 역사를 말하는 것이라 화성에 대해 여러 부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화성을 다룬 부분은 내게는 굉장히 어려웠다.  아니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뭐랄까?  화성학은 다분히 수학적이기에 두렵다.(나는 수학.... 오노~)  이처럼 눈으로 훑을 뿐인 부분들도 있었지만 반면 오페라를 좋아하는 내게 베르디 등의 작곡가와 오페라에 대해 다룬 부분은 정말 즐겁게 읽었다. 

  그리고 내가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책을 읽기 전에는 서양음악사라 함은 클래식음악의 역사를 다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서양음악사는 말그대로 서양 음악의 역사를 다룬 것이기에 20세기의 파퓰러 음악(이를테면 비틀즈 음악) 역시 이것들의 역사적인 행보로 본다는 사실이다.  역사라는 단어가 주는 엔틱한 느낌과 고전적인 늬앙스로 인한 나의 오해였으리라.  이제 누군가와 서양음악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나는 구태여 고전파니, 낭만파니 그 안에서만 허덕이지는 않아도 되겠지.   

  천천히 이해하며 읽으려고 했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오랫시간만큼 귀한 경험을 안겨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쓰는가?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나의 약속장소는 항상 서점이다.  일찍 도착해 기다리게 되는 날에는 읽을 거리도 많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그야 말로 나의 초대형 서재(?)인 셈이다.  또 만나기로 한 사람을 위해 갑작스레 한 권의 책을 고르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역시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읽게 된 책이다.  어쩌다보니 2009년 새해 첫 날 읽은 책이 되었다.  <왜 쓰는가?> 폴 오스터의 책으로는 <타자기를 치켜세움> 이후 두 번 째다.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남은 약속 시간동안 충분히 읽을 분량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열자 붉은 선이 그어진 노트가 펼쳐졌다.  그 위에 새겨진 글자는 컴퓨터로 찍어낸 필체가 아니가 손글씨체였다.  '이 책 뭔가 아주 사적인 느낌을 주는군'  그렇게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을 덮은 후의 느낌 역시 같았다.  '참으로 사적인 책이야.'  누구에게?  폴 오스터 자신에게!   

  이 책은 짧은 폴 오스터에게 있었던 일화들을 기록한 자전적 메모(단편이라기도 꽁트라기도 뭔가 부족해 ^^;;)들이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어린시절 굉장히 좋아하는 야구선수를 만났는데 아무도 펜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사인을 받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단다.  그 이후부터는 그런 날을 대비해 펜을 항상 가지고 다니게 되었고 그 펜은 폴 오스터에게 무언가를 끼적거리는 습관을 가져다 주었고 그로 그는 작가가 되었다고 회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나도 메모지나 펜이 없이는 길을 나서지 못한다.  갑작스레 내 머리와 가슴을 옮겨줄 것들이 없을 때는 참 답답하다.  그것이 일상에 대한 단상이거나 편린을 기록하기 위함 뿐 아니라 급히 누군가에게 편지 아닌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순간이 많기 때문이다.  냅킨, 영수증, 종이 봉투등은 나의 편지 패드가 되어 주었다.  어쩌다 깜빡 잊은 날 한 자루, 한 자루 사들고 다닌 볼펜 수를 보면 아마 평생을 쓰고도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폴 오스터도 우연히 갖고 다니게 된 펜으로 무언가를 쓰게 되고 그것이 작가가 되게 한 계기라 믿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 어떤 재능 있는 작가도 쓰지 않으면, 꾸준히, 정신없이 쓰지 않으면 결코 훌륭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화를 제외하고 이 사적인 기록들의 모음은 내게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한 편으로는 폴 오스터이기에 이런 별스럽지 않은 글도 책으로 묶여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내심 부러웠다.  역시 명망있는 작가란 그의 말 한미다가 활자로 남길 구실이 되고 단 하나의 문장이 종이에 새겨질 위대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대단할 것 없는 한 권의 책은 그의 모든 기록을 가치롭게 소중히 여겨주는 출판사의 마음이겠지.  그러나 이 얇은 책을 양장으로 만들고 가름끈까지 넣어 제작을 한 것은 지나친 포장이었다.  이 책의 분량으로 보나 내용으로(폴 오스터씨, 죄송해요) 볼 때는 한 권의 책에 부록 정도로 붙여도 좋을 법했는데 이 얇은 책은 왜 이토록 갖출 것 다 갖춘 모양새로 나와야 했을까?  폴 오스터 팬들의 소장욕을 자극하고자 계산한 것이 아니었을지.  개인적으로는 글로나 책으로나 많이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체 불만족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신정을 보내러 대구에 내려오면서 한 권의 책도 챙기지 못했다.  이유는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동행할 사람이 있어서였고 둘 째는 짐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어서 필요외의 짐은 최대한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고 셋째는 대구 집에도 읽을만한 책이 적잖이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는 책장부터 살폈다.  어떤 책을 읽을까?  그 때 내 눈에 띈 책 <오체불만족>이다.   

  오토다케 히로타다에 대해서는 몇 해전 매스컴을 통해서도 익히 들었고 그의 두 번째 저서 <그래도 나는 학교에 간다>는 일전에 읽은 적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신경숙, 공지영 등 내로라 하는 문학가들의 책을 뒤로한 채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하나다.  새해를 앞두고 있는 지금, 나에게 뭔가 긍정적인 힘을 붇돋아 줄 수 있고 삶의 열정을 한 껏 쏟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루가 채 못되어 다 읽었다.  마치 일기와 같은 그의 글은 참 쉽게 읽혔다.  오토다케의 문장은 단정하고 간결했다.  그리고 그가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그만의 위트들이 문장 곳곳에 숨어 있었다.  팔, 다리가 없는 장애인인 그의 글을 읽기 전, 나는 한 가지 염려가 앞섰다.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불치병과 싸우는 어린이들, 거동이 어려운 노인 혹은 장애인들의 생활을 볼 때면 그들이 안타깝고 가여워서 눈물을 꾸역꾸역 삼키게 되니 말이다.  '이 책 역시 그렇겠지.  이 사람이 안스러워 마음 한 켠이 씁쓸해지겠지?' 

  그러나 나의 염려는 큰 오산이었다.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밝았으며 희망찼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가 참 부러웠다.  이 무슨 부모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소리냐고.  물론 나는 그의 신체가 부러운 것은 절대 아니다.  그의 밝고 긍정적인 사고가 부러웠다.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생활 환경은 부러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어떻게 장애인인 그가 정상인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를 지도한 선생님이나 그의 많은 친구들이 내게는 참 남다르게 비쳐졌다.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대개 '안타깝다' '가엽다' 정도다.  기껏해야 건강한 자신의 신체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하게 만든다.  그러나 오토다케의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부모님들은 달랐다.  그를 안스럽고 가엽게 여기기 보다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의 입을 빌자면 그는 '초개성'적으로 태어났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자신의 장애에 좌절하지 않고 낙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오토다케를 출산 후 처음 만난 어머니에게서도 초기인적인 힘을 엿볼 수 있었다.  사지가 하나도 없는 사내아이를 처음 보고 어찌 '사랑스러운 나의 아가야' 라고 품에 안을 수 있었을까.  부모님 역시 충격과 가슴아픔은 여느 부모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으로 태어난 아이를 첫대면하는 자리에서 그토록 긍정적인 자세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부모가 보여준 도전과 용기를 다 들추어 보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그 뿐 아니다.  오토다케를 받아들인 학교와 그 선생님들 역시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중증장애인을 담임으로 자청하고 독립심과 자립심을 길러준 선생님, 또 다른 학생들과의 역할 분담을 통해 오토다케만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지원해준 선생님.  그들에게 존경심이 일기가 무섭게 나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과 환경, 그리고 교사들을 과연 이에 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나부터가 말이다.  '올 한 해 저 아이때문에 힘들겠구나'를 생각지 않고 그에게 최적의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 더 부지런할 수 있었을까 말이다.  참으로 부끄러워야 할 것이고 참으로 반성해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오토다케 히로타다.  그는 장애인이 아니다.  그의 말처럼 남들과 다를 뿐이다.  장애는 불편할 뿐 불행하지 않다는 말처럼 그는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노력으로 신체의 불편함을 극복했다.  정말이지 이런 그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여기며 그것을 해냈는데 '나는 못해' '못하겠어' 하며 포기해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인간이라는 것이 노력과 훈련 앞에서 얼마나 단련될 수 있으며 강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오토다케와 같은 많은 장애인들이 이 지구 위에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환경 오염, 후천적 사고 등으로 장애인의 수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다수를 위해 제작된 모든 것들로부터 외면당하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그들을 그저 운이 나쁜 소수일 뿐이라 치부하며 남일 보듯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을 위한 복지에 좀 더 힘써야 겠으며 장애인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장애를 극복한 한 일본인의 수기를 넘어서 장애인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도록 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지음, 김철 옮김 / 이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특별히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언더우드씨를 기억하고 있다.  그가 우리나라에 온 의료선교사라는 것.  또 그가 이 나라에 전하러 온 종교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력을 끼친 자이기 때문이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또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을 설립하였으며 성서번역에도 기여하였으며 왕실과도 교류하는 등 그의 행보들은 굵직굵직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의 아내 언더우드 여사의 그것이다.  사실 나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업적들이 궁금해 이 책을 집은 것은 아니다.  그의 아내가 썼다는 이 책을 통해 서양인이 바라본 내 조국 한국의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조선.  학창시절에는 참 많이 듣고 공부했으며 지금은 심심찮게 시대물이나 사극, 또 다큐멘터리 등에서 당대를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나라의 옛 사정을 적잖이 알고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 동안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책은 민비 시해 사건, 갑신정변, 청일전쟁 등 크고 작은 나라의 대소사를 섬세하게 기록한 또 한 권의 역사 교과서였다.  나는 그저 서양인이 바라본 조선은 어떠했을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이 책은 실로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파란 눈이 옮겨 놓은 조선 뿐 아니라 이 나라의 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 내막은 잘 알지 못한채 안다고 믿어왔던 역사적인 사건들.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이웃나라와의 관계들....  이 책은 낱낱이 그 때를 옮겨 놓고 있었다.

  '아마 역사에 대해 기술한 책이니 좀 지루할지도' 나의 첫 마음은 이러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기는 커녕 내 나라 조선의 새로운 이야기들에 깊이 빠져 들었던 것 같다.  당시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지듯 생생했다.  내가 보지 못한 내 나라의 모습이 나에게는 생경했다.  마치 아프리카 오지에 구호 활동이나 선교 활동을 나간 자들이 보고 들은 것과 같았다.  미개하고 열악한 삶의 터전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작은 민족들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실지 같은 한국인으로서 선조들의 불결함과 무식함에 대한 언급에서는 슬쩍 속상한 마음이 솟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민족을 사랑의 눈으로 보듬는 그녀와 언더우드 선교사, 또 그 밖에 많은 동지들의 희생과 봉사에 이내 숙연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 전한 것은 종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피부색, 머리색, 눈동자 색은 물론 심지어는 언어까지 다른 동양의 한 작은 나라, 그 안에서는 서양을 배척하고 개혁과 개화를 거부하고 오로지 동양적인 것만 추구하려 했던 무리들도 있었고 온갖 미신과 허황된 믿음으로 점철된 민족들의 터전에서 그들이라고 왜 두려움이 없었을까?  그들이라고 왜 고국이 그립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들의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기에 이 나라가 한 걸음이라도 빨리 선진화 되었던 것이 아닐지.  (혹자는 그들이 가져다준 문명을 달갑지 않다 할지도 모르겠다만은.)  삶의 질과 수준 향상은 뒤로 하고라도 그들이 이 나라에서 행한 많은 훌륭한 사역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이 울컥했다.  순간 목구멍이 얼얼해졌다.  그 대목을 잠시 소개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콜레라에 지천에 퍼져 병든 자들을 위해 밤낮없이 뒤치닥거리를 하는 그들을 보고 "저들은 왜 저렇게 우리한테 잘 해주지?" 라는 물음에 다른 한 조선인이 "우리들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야" 라고 답하는 대목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런게 아닐까?  서로 대화할 수 없어도 온기가 느껴지고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해주고 섬겨주는 기운이 이 쪽 가슴에서 저 쪽 가슴에 닿아 전해지는 그것이 아닐까 말이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랑이 아닐ㅋ까?  내 나라 작은 동양의 한 나라, 그렇지만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 사랑 이야기, 사람들의 이야기는 후세토록 계속 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