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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스페인.  스페인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탱고, 투우, 토마토 축제 그리고 축구?  그리고 정열, 열정 이런 단어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제 '손미나'도 함께 떠오를 것 같다.  손미나의 저서로는 <태양의 여행자>를 읽어보았는데 참 행복한 여행 후기였다.  이 책 역시 여행기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상상하는 단순히 여행기는 아니었다.  왜냐면 그녀가 유학한 곳도 스페인이었고 쉼을 찾아 떠난 곳도 스페인이다.  오로지 관광을 위한 방문이 아니었기에 어디에 가면 뭐가 있고 입장료는 얼마고 하는 따위의 것을 상세히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녀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녀가 꿈꾸어 온 삶을 함께 쫓아가는 글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스페인은 여행 1순위다.  작년 여름 남편과 함께 스페인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한창 들끓던 신종플루의 발원지가 스페인이라는 사실에 겁이 많은 우리 부부는 행선지를 돌리고 말았다.  '다음 기회에'를 약속하며 말이다.  설레는 계절, 여름이다.  그래서일까?  여행기에 눈이 간다.  그러다 스페인이 불연듯 떠올랐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생업을 뒤로하고(간혹 포기하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본다.  우리는 그들에게 용기있다 말한다.  왜 그럴까?  먼 나라로 가기에?  소통의 어려움에 극복할 준비가 되었기에?  혹은 혼자서 그 곳에 가기에?  나는 조금 다르다.  내가 그들을 용기있다 하는 것은 바로 '얽매이게 하는 것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의지와 실천력' 때문이다.  누구나 여행을 꿈꾸고 그것이 이국적인 정취의 해외여행이라면 마다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시간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로 여행을 포기하거나 보류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수입원이 되는 직장을 관두고 돈을 잃고 그것을 시간으로 맞바꾼 자들이다.  당신이라면 일정 수입을 보장해주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날 수 있겠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못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들은 그런 것으로 자신을 묶어두지 않는다.  더 넓은 세계를 보고 나를 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한 여행에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머무르고 싶을 때 머무르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온다.   

  손미나의 여행기를 보면 행복이 물씬 묻어난다.  당시 그녀는 고민도 많고 휴식이 간절히 필요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독자인 내가 보기에는 그저 행복해 보였고 부러웠다.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우연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나는 그것들이 몹시 부러웠다.  어떻게 일본에서 스페인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고 그 만남을 스페인에서 다시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우연과 인연이 한 둘이 아니었다.  '설마 저자가 일부러 이렇게 쓴 건 아니겠지?' 싶을 정도의 기가 막힌 우연들.  아, 나도 그런 상큼한 뜻 밖의 우연들을 경험하고 사귐을 갖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스페인에서의 그녀의 삶은 내가 원하는 여행이었다.  그녀의 여행은 일단 면세점을 들러 그동안 갖고 싶었던 수입품을 두어 개 사고 비행기 안에서는 기내식을 앞에두고 사진을 찍고 현지에서는 그럴듯한 호텔에서 여왕처럼 묶고 이름난 관광지를 정신없이 찾아다니고 동행 외에는 누구와도 말과 눈길을 섞지 않은 채 일정에 쫓겨 다니며 몇 가지 기념품을 사고 죽어라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다.  스페인에서의 그녀의 삶은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다.  현지인과 어울리고 그 곳을 들여다 보는 자가 아니라 그 곳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자가 되는 것 말이다.  그것이 하루건 이틀이건 아니면 그보다 오랜 시간이건 말이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탐나도록 부러웠으며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물고기를 잡고 그것으로 식사를 하고 탱고를 추고.  이런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여행이다.  그러나 역시 여러가지 이유가 나에게 이런 여행은 그저 그림의 떡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먼저 현지인들과 술술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 친구를 사귀고 그 곳에서 그들과의 인연을 이어갈만큼의 시간이 없다는 것, 그만큼 그 곳에 머무를 돈이 없다는 것.  역시 언어, 시간, 돈이다.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글쎄, 너무 이상적인게 아닐까?  솔직히 언어 잘 되고 시간 많고 충분한 돈이 있다면 더 좋은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녀는 참 욕심이 많다.  쉬러 간 그 곳에서 공부를 했단다.  그렇기에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녀는 정말 휴식, 쉼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따뜻한 엄마의 품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스페인은 그녀가 유학생활을 한 곳이다.  책에서도 그녀가 스페인에 닿자마다 설레임보다는 그 곳의 모든 것이 그대로임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처럼 그녀는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그 곳이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미나 그녀가 부러운 것은 이 것만이 아니다.  그녀는 5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들었다.  역시 언어라는 것은 현지인들과 친근하고 쉽게 세상을 나누는 수단이 된다.  어쩌면 그녀가 그리 어렵지 않게 스페인에 머물러 살 수 있음도 그녀의 언어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언어라는 것이 단지 소통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정말 동경의 대상이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기는 대리만족이 된다고.  그런데 나는 그 반대다.  여행기를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낯선 곳, 새로운 세상, 낯선 사람들이 더욱 갈급해진다.  그러나 여행기를 읽는 내내 누군가의 삶을 엿보고 누군가의 그런 삶을 동경한다는 것 역시 설레는 일이다.  무언가에 매력을 느끼고 그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은 실천만 뒤따른다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책을 읽은 날은 2010 남아공 월드컵 4강전에서 스페인이 독일을 이긴 날이다.  왠 문어와 펠레가 스페인이 우승할 것으로 점치고 있단다.  지금 손미나와 같이 책 속에서 나를 만났던 그들도 자국의 승리를 응원하고 있겠지?  도시는 한층 더 뜨거워지고 함성은 높아져 있겠지?  정열과 열정과 꿈의 도시, 스페인.  나는 그 곳에 언젠가는 발을 딛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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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2 : 세계와 나
MBC 'W' 제작팀 지음 / 삼성출판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TV시청을 즐겨하지 않지만 MBC '세계와 나 W' 는 꼭 본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 방영 앞 시간에는 '아마존의 눈물' 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는데 나는 그야말로 열혈시청자였다.  피곤해서 잠이라도 들라치면 기어코 일어나 아마존 밀림과 원시족들을 보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세계와 나 W'를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세계여행기인가 했는데 볼 수록 그 깊고 그윽한 맛에 빠지고 말았다.  국제시사프로그램 W.  이렇게 나와 이 방송은 인연이 되어 지금도 꾸준히 보고 있다.  

  그런데 책으로 출간이 된 줄은 이제서야 알았다.  게다가 2권이라니.  2권 역시 마치 방송을 보는 듯 흥미로왔다.  총 19가지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다.  다행히 대다수 내가 보지 못한 방송분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STORY 01 프랑스 자전거 혁명, 벨리브 프로젝트, STORY 02 국가는 왜 나의 집을 부수나? STORY 03 수몰 위기! 지상 최후의 낙원 몰디브, STORY 06 엘살바도르 맹그로브 숲의 마누엘, STORY 08 언론은 죽어도 진실은 죽기 않는다' 이다.   

  [STORY 01 프랑스 자전거 혁명] 책을 여는 희망찬 메세지였던 것 같다.  고유가 시대, 대기 오염....  이것만으로 연상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자동차!  근데 프랑스에서는 곳곳에 자전거를 비치해두고 이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다시 말해 임대자전거.  30분간은 무료.  30분이 지나면 과금되는데 이 자전거를 1년간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이 불과 30유로(한화 3만 9천원 정도)다.  국민의 건강을 살리고 도시의 공기를 살리고 교통 체증 없고 빠르고(실험결과 전철 이용시보다 6분 가량 빨랐음) 주차난 걱정없는 경제적인 교통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국내 일부 대학 캠퍼스에 자전거가 비치되어 있고 그 자전거를 이용하고 정해진 장소에 반납할 수 있도록 된 곳이 있다.  그것이 도시 하나에서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이용하고 싶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 부근에 자전거를 두면 된다.  자동차를 대신한 임대자전거는 아주 먼거리(그래봤자 하나의 도시 안)를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인다.  이건 뭐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십조쯤은 될 것 같다.  그런데!  자전거의 80%가 분실되거나 망가졌다는 사실.  여기서, 무엇이 문제일까?  공공물건을 내 것처럼 아끼지 않는 시민들의 의식문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물론 순간 떠오른 생각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음)  시민의식을 바꾸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당장에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자전거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어 보는 것은 어떨까?  첫째, 자전거에는 요금을 계산하는 기계가 달려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계에다 자전거의 각 이용자가 멈춰선 최종 위치만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동하면 아주 좋을 것이다.  (자전거 이동경로를 관망하는 시스템을 생각했는데 그러면 이용자들이 사생활 침해를 거론할 것이 뻔하다)  고장나서 멈췄건, 아니면 일부러 기계의 전원을 꺼지게 했건, 누군가의 집에 자전거를 가져갔건 멈춰선 위치를 확인해 수리 보수를 하거나 '가져간 자전거 내놓으시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각 자전거 대여소에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다.  자전거 대여소 직원은 반납되는 자전거의 상태를 확인하면 훼손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자전거를 이용하려는 자의 연락처와 주민번호등의 정보를 얻고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것이다.  매일 마감 전에는 대여된 자전거가 도시의 체인망 어느 곳에 반납된 사실이 없다면 해당 이용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시 리옹에서는 자전거 분실, 훼손으로 지금은 회원제로 운영하고 있단다.  이것도 자전거를 보호하는 작은 방법이 되리라 본다.   

  [STORY 02 국가는 왜 나의 집을 부수나?] 우리날 용산참사와 같은 곳이 개도국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개발을 한답시고 주민들을 쫓아내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쫓겨난 주민들에게 정당한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다.  집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주민들은 공터로 쫓겨나거나 철거에 협조하지 않으면 폭력을 가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집이란 인간의 생활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영위할 수 있는 절대적인 수단이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든 정당하지 못하게 이것들을 빼앗는 것은 국가의 권력 오용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주민들은 어디에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그에 대한 적절한 방안이 수립이 개발보다 급선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STORY 03 수몰 위기! 지상 최후의 낙원 몰디브] 최고급 신혼여행지로 손꼽히는 몰디브.  그런데 몰디스가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안 사실이다.  지구 온난화로 대륙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단다.  더 끔찍한 것은 이 세기를 넘기지 못한 거라는 분석이다.  대통령은 다른 나라 대륙을 사는 등 인공섬 만들기를 진행 중이란다.  그리고 몰디브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규정을 정할 것을 각 나라에게 부탁하고 있으나 이행되지 않고 있단다.  우리는 우리가 체감할 수 없는 것을 남의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천재지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아주 무서운 재앙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인간으로부터 초래된 일이다.  지금 당장! 전세계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방안들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온 인류가 살아남는 길이 아닐까. 

  [STORY 06 엘살바도르 맹그로브 숲의 마누엘] 어린이 노동에 대해 다루고 있는 chapter다.  밤낮없이 일을 하고 모기를 쫓기 위해 담배를 피우고 각성제를 먹어가며 일을 하는 아이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린이 노동이 대개 가난한 나라에서 이루어진다면 이 나라에는 어린이들이 다른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이처럼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한다거나 약물중독, 탈선 등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가난하기에 그들이 일하지 않고서는 불가능 하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는 '돈'이다.  그렇기에 구호가 있지 않고서는 사실상 개선이 힘든 부분이기도 하기에 더욱 안타깝다.  그들이 병들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플 뿐이다.  부디,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어린시절의 기쁨과 즐거움을 알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STORY 08 언론은 죽어도 진실은 죽기 않는다] 역시 권력 오남용 문제다.  기자들의 기사가 불리하게 작용하는 이익집단에서 기자들을 살해하거나 납치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부조리한 일이 있는지.  그러나 경찰 당국은 이에 대한 조사에도 소극적이라고 한다.  기자들의 이런 세태를 논하는 글을 쓴 기자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로 부터 살해되었단다.  누가 살해했을까?  뻔하다.  기사가 불리하게 작용한 어떤 집단으로부터 누군가에게 사주한 일일 것이다.  펜으로 총과 칼에 맞선 기자들이 지금도 있다.  대다수 정세가 안정되지 못한 국가의 기자들인데 그들의 외침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이 펜으로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 펜이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까?" 라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들은 총을 생각하지만,  저는 이 펜으로 훨씬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P.114)    

  이 밖에 세계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잘 다루고 있었다.  방영되었던 화면이나 혹은 주제와 관련있는 사진들이 수록되어 있어 더욱 생생하다.  그리고 또 이러한 내용들이 모두 그저 딴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혹은 '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등을 고심하며 답을 찾아 본다면 더욱 의미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매 chapter의 뒤에는 주제에 관련된 객관적이고 정확한 분석자료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 역시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방송을 모조리 보았기에 책은 별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책은 영상의 빠른 전환으로 습득하지 못한 정보와 문제들을 더욱 차분히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세계와 나 W.  역시 보는 것도, 읽는 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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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60분 부모 : 문제행동과의 한판승 편
EBS 60분 부모 제작팀 엮음 / 지식채널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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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 독자의 대다수는 자녀를 가진 부모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아들, 딸을 두고 있는 독자가 아닐까 싶다.  나는 유치원 교사다.  '문제행동' 이것은 비단 가정에서만 부모 곁에 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 어디에서든 난감한 문제행동들을 마주하게 된다.  교사지만 역시 이런 문제행동을 직면하게 되면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올바른지, 내가 지금 장하고 있는지 항상 고민하게 된다.   이런  문제행동에 대한 해결책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집었다. 


  먼저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이해하기 전에 교사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버는 금물이다' 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무슨 말인고 하면 전혀 아무 것도 문제 되지 않을 아이의 자연스러운 현상에 아이를 마치 환자 취급하고 성인의 잘못된 대응으로 아이를 망가뜨리는 경우들을 많이 본다.  이는 오늘 날의 부모들의 자녀 양육 태도와 직결된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만 해도 자녀의 수가 다섯 손가락을 훌쩍 넘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많아야 셋, 이도 보기 힘들고 둘 아니면 하나다.  그러다 보니 부모는 '이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의 집착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자녀에게서 '옥의 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을 못견뎌한다.  '선생님 심리치료를 받아야 겠죠?' '아무래도 정신과에 가봐야겠어요' 등등.  이 중 일부는 정말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10건 중 9건은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모는 아이에게 나타나는 문제행동에도 눈을 열어야 하겠지만 그 보다 먼저 아이의 성장과정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혹자는 '혹여나 있을 문제에 대비해 부모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극도로 조심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될까요?'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모의 양육 태도와 자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자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렇게 자녀가 '병적인 상태'에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부모 아래서 아이들은 절대 평온함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이 책을 살펴보자.  이 책은 여러가지 문제행동의 사례들이 소개된다.  그리고 전문가의 조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아주 쉽게 접근하고 있다.  학술적 근거나 이론을 소개하기보다는 부모의 입장에서 해결방안, 개선점에 포커스를 맞추어 풀어나가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문제 행동의 사례들을 보고 '나라면 어떻게 도움을 줄까' 하는 관점으로 내 스스로 먼저 답을 떠올려 보고 그 아래 기술된 전문가의 의견들과 대조해 보았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만족스럽기도 했고 또 한 편으로는 문제행동을 단박에 잡을 수 있는 묘안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음에 아쉽기도 했다.  식물 하나를 키워도 물 주고 잎사귀도 살펴보고 햇볕은 충분한지 봐주고 가끔 영양제도 꽂아줘야 하거늘 자녀 문제가 그토록 쉬울리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게 자식농사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읽은 '자녀교육' '유아행동지도' 에 관한 책 중에 비교적 가장 정확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여러 책들은 오로지 부모의 온정주의에 포커스를 맞춘 경우가 많았다.  '아이에게 귀를 기울여라' '아이와 많이 놀와줘라' '아이를 사랑해줘라' 등등.  이 역시 다른 책들에서 강조하는 만큼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결코 이것이 다가 아니다.  어느 부모가 자녀에게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고 놀아주고 싶지 않고 사랑하기 싫을까?  단지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은 문제행동을 보일시 부모가 어떻게 행동하면 되는지에 대한 조언을 주고 있다.  '타임아웃'을 하거나 '스티커제'를 이용하는 등의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또 주의 할 점은 책에서 제시한 사례가 내 아이와 같은 경우라도 조언으로 제시해 놓은 부모의 행동지침을 반드시 같은 방법으로 적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아이의 개성에 맞게 아이를 훈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 나오는대로 하지만 왜 얘는 고집을 꺽지 못하는거야?' '역시 책은 책일 뿐이야.  직접 키우는 건 문제가 달라' 할수도 있다.  이 책은 해결 답안이 아니라 조언 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내 아이가 어떤 메뉴얼대로 키워질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방식대로 했으나 여전히 개선이 되지 않는 경우, 부모의 인내심이 더욱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리지만 3년 혹은 5년 그 이상을 자신의 생활 방식으로 살아온 아이들이다.  근데 그것이 부모의 태도가 한 순간 달라졌다고 아이들 역시 한 순간 달라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꾸준하게 일관성 있는 태로로 양육해 이전에 잘못 습득된 습관이나 기제를 스스로 바꿀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나는 이 책의 '부모'라는 단어를 모두 교사로 바꾸어 읽어보았다.  이 책은 반드시 부모에게만 읽혀야 할 책은 아니다.  아이들과 부모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교사나 유아교육 종사자들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부모 태도에 대한 조언이 있는데 이를 잘 적용하여 유아들을 지도하면 사례로 제시한 문제행동들은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는 수 많은 아들, 딸들의 엄마를 넘어 나와 피로 맺어진 내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  유치원 교사 경력 십 년이라 할지라도 부모로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내가 가르치는 나의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고 언제고 나를 '엄마'라고 부르게 될 내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에 일석이조라 생각한다.  아이를 낳기는 쉽지만 그 아이의 몸과 정신세계를 책임질 부모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부모들이여, 자녀 양육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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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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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스누핑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 "뭐?? 어머, 왜 그런게 하고 싶대? 농담이지?" "인간을 알고 싶어서" "야야! 그건 변태짓이지.  그 짓으로 무슨 인간을 안다는 거야"  단지 스누핑을 하고 싶다는 말에 정색하는 내 친구.  무슨 일이지?  사람을 꿰뚫어 보고 싶다는게 그렇게나 비열한 짓인가?  그녀의 그런 반응, 어쩌면 당연했다.  그녀는 스누핑을 '스와핑'으로 이해한 것이다. 아뿔사! (얘! 내가 미쳤니?)  

   어찌되었건 나는  제대로 스누핑을 하고 싶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호기심이다.  저 사람은 무엇을 좋아할까?  저렇게 하는 것은 그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라는거지?  나의 어떤 행동을 그는 이해하지 못할까?  등등.   

  그러던 중 나는 스눕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고 스누핑이라는 것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고 해야 하겠다.  막연히 누군가에 대한 짐작을 넘어서 <스눕>은 과학적인 접근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먼저 스눕이라는 의미부터 소개하려 한다.  '스눕'은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꼬치꼬치 캐다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스눕을 하는 자는 '스누퍼'라고 부른다.(친구야, 스누퍼는 스누피가 아니니 미리 알아두도록)  이 책의 저자 샘 고슬링은 직감을 넘어서 과학적으로 상대를 읽는 법을 제시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해왔단다.  그런데 이런 과학적 결과와 스누핑을 하는 기준이 절대적이고 완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통계상의 수치와 평균을 보고 '대개 그러하다' 는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겠지.  이렇듯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기에 이것이 모든 이들에게 정확하게 들어 맞는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상대를 조금 더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스눕할 수 있기를 원했다.  이 책은 흥미로왔다.  하지만 샘 고슬링 박사의 연구들을 잘 풀어쓴 보고서이지 '스눕을 하는 방법' 에 대한 좀 더 적나라하고 단명한 제안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례가 미국의 것이기에 우리나라인 한국에 적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적잖이 있었다.  국민성도 다르고 개개인의 성향도 문화색에 따라 분명 다르다.  미국에서 한 연구 결과가 우리나라에도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름을 나열해두고 들어봤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체크해보는 문항도 있었는데 역시 외국인의 이름은 모두 생경할 밖에.  당연지사다.  미국인이 아니면 난감한 문제와 접근법들이 많았다. 

  그리고 가능만 하다면 나는 샘 고슬링 박사를 내 방으로 초대해 침실연구(누군가의 침실을 보고 그 사람의 성향과 취향등을 알아내는 연구)를 시키고 싶었다.  앞서 말했듯 스눕을 통해 상대방을 알고 싶기도 하지만 제일 먼저 나는 나를 먼저 알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내 방을 훑어보았다.  누군가가 내 집에 와서 능숙한 스눕으로 단서를 발견하지는 않을까 말이다.(워워~ 나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깨끗하니 안심하기를)  내가 누군가를 제대로 스눕한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제대로 스눕하는 것은, 오오~ 결단코 원치 않는다.  (나 참 이기적이군)  나에 대한 그 스눕의 결과가 '모든 것이 아주 완벽한 이상적인 인간상'이면 모르겠지만 '음~ 상당히 게을러' '오~ 저속한 취미를 갖고 있군' 한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스눕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직원을 채용할 때, 선을 볼 때 등이 그렇겠다.  어떤 사람이 성실한지 그의 옷차림과 사용하는 언어나 지니고 있는 물건만으로 판단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게 또 있을까?  결국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스눕은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지금처럼 제대로 스눕할 줄 모르며 '아무런 의도없음'으로 순박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부딪혀 알아가야만 하는 미숙한 소시민인 것이 좋다.  그저 보여주는 것이 다라고 믿고 싶고 느껴지는 것이 다라고 믿고 싶다.  '저 자는 이런 걸 좋아하는군' '성적 취향이 독특한 것 같군' 이런 것을 내가 훤히 볼 수 있다면.  나는 내 스스로가 굉장히 징그러울 것이다.  그리고 미아리에 자리를 깔고 창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의도와는 달리, 내게는 그만 스눕의 매력을 잃게 했다.  아쉽게도 나는 단지 스누핑이라는 것이 직감적인 예견이나 추측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된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쩌면 나는 월간지 뒷편에 심심풀이로 수록되어 있는 '자 이것들 중에 선택하시오. 이걸 선택한 당신의 성격은 어쩌구 저쩌구. 저걸 택한 당신은 어쩌구 저쩌구' 이런 책을 원했고 그런 내용이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눕에 대해 나처럼 단순한 호기심으로 접근하고 쉽게 주의를 바꿔버리는 변덕쟁이가 아니라면 이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와 비슷한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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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전원 교향곡 - 을유세계문학전집 24 을유세계문학전집 24
앙드레 지드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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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과 '전원 교향곡'은 이름 난 고전이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이것을 읽어봤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나' 후회스럽기도 하고 '이제서라도 이 책을 읽은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새삼 고전만이 간직하는 이 문학적 기품에 적잖이 매료당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처럼 아름답게 인간의 번뇌와 고민 그리고 감성을 묘사한 책이 또 있을까.  '좁은 문' '전원 교향곡' 이 두 편 모두 굉장히 서정적이고 목가적이다.  '좁은 문'은 내가 사랑하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 듯 하기도 했다.  이 모두 서신(좁은 문: 제롬과 알리사의 편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가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이 작품에서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비극적인 결말도 그러하고 독자에게는 마지막 고백이 될 글들(좁은 문: 알리사의 일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베르테르가 죽고나서의 이야기들),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찬양과 경이로움을 담았다는 점이 그러했다.  

  알리사와 제롬의 사랑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렇게나 서로를 갈망하지만 결코 결혼만은 할 수 없는 사랑이라니.  세상에 이런 사랑이 또 있을까.  이 둘의 사랑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한 편으로는 알리사가 야속하기도 했다.  그들의 사랑이 결혼으로 옮겨가지 못하는 모든 이유가 그녀에게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알리사의 일기를 읽는 순간, 나는 그녀를 동정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작품을 이야기하자면 종교 이야기도 해야만 할 것 같다.  알리사의 절대적인 신앙.  그녀는 신 앞에 겸손하고자 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드리는 삶을 원했다.  그러나 자신과 제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분 앞에서 제롬을 택할 수 없었기에 그 힘든 싸움을 했던 것이다.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신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사랑의 방해자가 될 수 있나'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에서는 그 누구도 신에게 향하는 경배와 찬양 이상의 것을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불경한 일이기도 하다.  알리사는 이 점에서 번민했던 것이다.  제롬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모든 감각과 자신의 존재함 그 모든 것을 바칠 만큼 사랑했기에 그녀는 그런 마음을 바로 잡고 싶었던 것이다.  누가 그녀를 어리석다 할 수 있을까.  이런 지고지순하고 숭고한 신에 대한 사랑을 누가 함부로 말 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좁은 문'에서는 당대 문학에 대한 비판도 숨어있다.  제롬과 알리사가 나누는 대화나 그들이 읽는 책들이 그것을 밝히 보여준다.  이 점을 읽는 것도 재미난 일이다. (아쉬운 점은 나는 겨우 그들의 몇 작품만을 읽어봤을 뿐이라는 것)  그러나 '좁은 문'에서 내게 가장 으뜸가는 부분은 그들이 나눈 대화였다.  그것은 아름답기그지 없었다.  그리고 자연 곳곳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는 이 작품이 얼마나 서정적이고 섬세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런 대목들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전원 교향곡' 역시 너무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과연 누가 이런 숭고하고 겸손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도 앙드레 지드는 종교적 딜레마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사랑은 목사와 시각 장애인 소녀(제르트뤼드)와의 사랑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사랑을 천박하다 하지 못할 것이며 아무도 이 둘을 지탄할 수 없다.  그 사랑은 인간 그 자체만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랑에는 뜨거운 욕정의 순간이라든지 서로를 탐하고 취하려는 욕심은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학적인 기품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을 만큼 독자를 사로잡는게 아닐까 싶다.  제르트뤼드는 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느끼고 분별하는 세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나는 내가 이 세상을 너무나도 뚜렷이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주 짧게나마 원망스럽기도 했으니 말이다.  특히나 인상적인 부분은 목사와 제르트뤼드가 음악회에 간 장면이다.  악기의 음색을 색깔로 표현하는 대목.  이 찬란하고 경이로운 묘사를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제르트뤼드가 목사에게 자신이 호수에 뛰어든 진짜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다.  제르트뤼드는 모두가 말한 것처럼 호수에 핀 꽃을 꺽기 위해 호수가 육지처럼 단단하리라 생각하고(그녀는 한 번도 호수를 본 일이 없으니 이렇게 유추한 것이다) 발을 딛어 빠진 것이 아니었다.  개안수술을 하고나서 처음 보는 아멜리(목사의 아내)를 보고 그녀의 고통이 스민 얼굴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도 제르트뤼드도 둘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목사는 제르트뤼드에게서 눈을 뜨고 보는 것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엿볼 수 있었고 제르트뤼드에게 목사는 단 한 줄기의 빛이였다.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이 세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옳지 않지만 '그건 나빠요' 라고 말하고 나설 용기를 주지 않는 사랑.  이들의 사랑이었다.    

  앙드레 지드가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것처럼 이 두 작품 안에는 종교에 관한 갈등의 순간과 하나님에 대한 경배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 싶었고 영광을 돌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이 신앙으로 인해 넘지 못할 문제들에 직면한 적이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 두 작품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남녀의 욕정에 대한 묘사가 없다.  이 점은 앙드레지드가 지독한 금욕주의자였단다.  그렇기에 그는 이 두 편의 어느 순간에도 남녀의 애욕을 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알리사는 앙드레 지드 자신이 아닐까?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그 사랑이 깊어감과 동시에 신에게 대한 죄스러움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이 두 작품은 정말 어느 것을 우위에 둘 수 없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고상하고 숭고하다.  이런 인간의 번뇌와 신에 대한 절절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귀하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신의 주축이 될 만한 어떤 사건과 상황에 대해 지나치리만치 고민하지 않고 밤을 지새우지 않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괴로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말이다.  그것은 비로소 인간에게 부여된 원죄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이 아닐까.  아름다운 이 두 편의 소설은 내게 또 하나의 등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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