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너는 자유다 -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 개정판
손미나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스페인.  스페인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탱고, 투우, 토마토 축제 그리고 축구?  그리고 정열, 열정 이런 단어들을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런데 이제 '손미나'도 함께 떠오를 것 같다.  손미나의 저서로는 <태양의 여행자>를 읽어보았는데 참 행복한 여행 후기였다.  이 책 역시 여행기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상상하는 단순히 여행기는 아니었다.  왜냐면 그녀가 유학한 곳도 스페인이었고 쉼을 찾아 떠난 곳도 스페인이다.  오로지 관광을 위한 방문이 아니었기에 어디에 가면 뭐가 있고 입장료는 얼마고 하는 따위의 것을 상세히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녀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녀가 꿈꾸어 온 삶을 함께 쫓아가는 글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스페인은 여행 1순위다.  작년 여름 남편과 함께 스페인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한창 들끓던 신종플루의 발원지가 스페인이라는 사실에 겁이 많은 우리 부부는 행선지를 돌리고 말았다.  '다음 기회에'를 약속하며 말이다.  설레는 계절, 여름이다.  그래서일까?  여행기에 눈이 간다.  그러다 스페인이 불연듯 떠올랐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생업을 뒤로하고(간혹 포기하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본다.  우리는 그들에게 용기있다 말한다.  왜 그럴까?  먼 나라로 가기에?  소통의 어려움에 극복할 준비가 되었기에?  혹은 혼자서 그 곳에 가기에?  나는 조금 다르다.  내가 그들을 용기있다 하는 것은 바로 '얽매이게 하는 것을 벗어던질 수 있는 의지와 실천력' 때문이다.  누구나 여행을 꿈꾸고 그것이 이국적인 정취의 해외여행이라면 마다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시간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로 여행을 포기하거나 보류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수입원이 되는 직장을 관두고 돈을 잃고 그것을 시간으로 맞바꾼 자들이다.  당신이라면 일정 수입을 보장해주는 직장을 그만두고 어디론가 떠날 수 있겠는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못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들은 그런 것으로 자신을 묶어두지 않는다.  더 넓은 세계를 보고 나를 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한 여행에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머무르고 싶을 때 머무르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온다.   

  손미나의 여행기를 보면 행복이 물씬 묻어난다.  당시 그녀는 고민도 많고 휴식이 간절히 필요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독자인 내가 보기에는 그저 행복해 보였고 부러웠다.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우연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나는 그것들이 몹시 부러웠다.  어떻게 일본에서 스페인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고 그 만남을 스페인에서 다시 가질 수 있을까?  그런 우연과 인연이 한 둘이 아니었다.  '설마 저자가 일부러 이렇게 쓴 건 아니겠지?' 싶을 정도의 기가 막힌 우연들.  아, 나도 그런 상큼한 뜻 밖의 우연들을 경험하고 사귐을 갖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스페인에서의 그녀의 삶은 내가 원하는 여행이었다.  그녀의 여행은 일단 면세점을 들러 그동안 갖고 싶었던 수입품을 두어 개 사고 비행기 안에서는 기내식을 앞에두고 사진을 찍고 현지에서는 그럴듯한 호텔에서 여왕처럼 묶고 이름난 관광지를 정신없이 찾아다니고 동행 외에는 누구와도 말과 눈길을 섞지 않은 채 일정에 쫓겨 다니며 몇 가지 기념품을 사고 죽어라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다.  스페인에서의 그녀의 삶은 여행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다.  현지인과 어울리고 그 곳을 들여다 보는 자가 아니라 그 곳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자가 되는 것 말이다.  그것이 하루건 이틀이건 아니면 그보다 오랜 시간이건 말이다. 

  친구들과의 우정을 탐나도록 부러웠으며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물고기를 잡고 그것으로 식사를 하고 탱고를 추고.  이런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여행이다.  그러나 역시 여러가지 이유가 나에게 이런 여행은 그저 그림의 떡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먼저 현지인들과 술술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 친구를 사귀고 그 곳에서 그들과의 인연을 이어갈만큼의 시간이 없다는 것, 그만큼 그 곳에 머무를 돈이 없다는 것.  역시 언어, 시간, 돈이다.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능하다고?  글쎄, 너무 이상적인게 아닐까?  솔직히 언어 잘 되고 시간 많고 충분한 돈이 있다면 더 좋은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녀는 참 욕심이 많다.  쉬러 간 그 곳에서 공부를 했단다.  그렇기에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녀는 정말 휴식, 쉼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따뜻한 엄마의 품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스페인은 그녀가 유학생활을 한 곳이다.  책에서도 그녀가 스페인에 닿자마다 설레임보다는 그 곳의 모든 것이 그대로임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처럼 그녀는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그 곳이 그리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미나 그녀가 부러운 것은 이 것만이 아니다.  그녀는 5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들었다.  역시 언어라는 것은 현지인들과 친근하고 쉽게 세상을 나누는 수단이 된다.  어쩌면 그녀가 그리 어렵지 않게 스페인에 머물러 살 수 있음도 그녀의 언어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언어라는 것이 단지 소통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정말 동경의 대상이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기는 대리만족이 된다고.  그런데 나는 그 반대다.  여행기를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낯선 곳, 새로운 세상, 낯선 사람들이 더욱 갈급해진다.  그러나 여행기를 읽는 내내 누군가의 삶을 엿보고 누군가의 그런 삶을 동경한다는 것 역시 설레는 일이다.  무언가에 매력을 느끼고 그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은 실천만 뒤따른다면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이 책을 읽은 날은 2010 남아공 월드컵 4강전에서 스페인이 독일을 이긴 날이다.  왠 문어와 펠레가 스페인이 우승할 것으로 점치고 있단다.  지금 손미나와 같이 책 속에서 나를 만났던 그들도 자국의 승리를 응원하고 있겠지?  도시는 한층 더 뜨거워지고 함성은 높아져 있겠지?  정열과 열정과 꿈의 도시, 스페인.  나는 그 곳에 언젠가는 발을 딛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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