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앤디 워홀의 '작품'을 접했던 것은 8살 때, 다니던 오락실에서였다. 세가에서 자사의 걸작 프랜차이즈가 될 운명으로 내놓았던 게임 [시노비]. 그 스테이지1의 벽에 앤디 워홀의 저 유명한 마릴린 먼로가 붙어있었다. 게임의 영역에까지 스며든 그의 공장작업의 말단의 말단을 통해 접하게 된 나는, 나름대로는 그의 소원성취가 이룩된 한 길을 통해 그를 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후로 알게 모르게 앤디 워홀은 간접적으로 내 시야에서 어른거렸다. 그의 작품들은 인공적으로 빚어진 현대의 생령 같았으니까. 또한 나이가 먹어가면서 차츰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듣게 될 시절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너머로 영 거슬렸던 팝아트란 말도 점점 익숙해져가는 세월이 있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앤디 워홀을 싫어할 순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면서 앤디 워홀을 무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가 구상한 틀은 뒤샹의 작업들처럼 그것들을 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도망갈 수 없게끔 만드는 자가당착적인 함정들을 곳곳에 품고 제 몸뚱아릴 드러냈다. 선택을 강요한다기보다는 어떻게하든 강제적으로 자신의 쇼의 일원이 되게끔 만들어버리는 그 음흉한 공식들은 억울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불공정한 게임을 제시한다.
난 앤디 워홀이 싫다.
뭐 달리 싫어해야겠다, 고 다짐한 것도 아니고. 사실 난 앤디 워홀의 작품들 중 좋아했던 게 하나도 없었다. 감명 받았던 것도 없었다. 보다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그 작품들의 주변적이면서도 의도된 화제성을 제외하면 대상 자체로서의 앤디 워홀의 작품들은 따분하게까지 느껴졌다. 뭐 몇몇 주변인은 놀랄 소리일려나?

그래서 앤디 워홀에 관한 책들 중에선 이 책이 가장 맘에 든다. 이 책에는 돈얘기가 넘쳐난다. 앤디 워홀(과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사서 어떻게 팔아야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지에 모조리 집중하는 이 책은 그래도 가끔씩 짧은 감탄사처럼 "오, 그 색감! 그 부드러움!" 운운하면서 앤디 워홀의 예술적 탁월함을 생색내듯 찬양한다. 아, 이거 이 책이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다. 돈과 돈이 오가며 80년대 미술 경매 시장에 대한 생생한 얘기들로 가득한 이 책은 꽤 흥미롭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모든 것이 앤디 워홀의 '예술혼'에 가장 부합되고 있진 않나 싶은 것이다.
<이건희 회장과 앤디 워홀이 만난다면>
그리고 이번에 삼성미술관에서 열리는 앤디 워홀 전시회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표현은 바로 저 제목에서부터 나온다. 내용은 그리 볼 게 없으니 제목만 음미해도 충분하다. 저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