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의 전통을 타고 시작하지만 공포소설은 아니다. 도입에서부터 중반까지의 강력한 흡입력은 실로 훌륭. 다소 루즈해지는 후반부는 그저 불가해 스타일의 공포소설이 가진 진부함을 거부하려는 딜레마가 섞인 결말부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럭저럭 납득. 그러나 왜 이렇게 비싸, 하고 생각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볼륨 대비 가격치가 안타깝다.

 

부드럽고 쉬이 읽히며 중세에 대한 지식을 재확인하게 만들고 깔끔하게 요약수습이 가능하다는 점이 미덕. 작가의 처음 의도대로 현대적인 컨버전을 배제한 고답스러운 방향으로 갔으면 훨씬 단단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시간역전이라는 소재를 통한 캐릭터 유희의 매력적인 일례. 소문대로 괜찮은 가독성. 나가토 유키 팬들의 축제의 장. 개인적으론 이토 노이지의 정력적인 동인활동 중 나가토 유키를 벗기는 게 하나쯤은 껴있길 기대하고 있을 정도로 열광적인 팬인 본인으로서도 당연히 만족.

 

아틀라스 게임 전문 컨버전 만화가였던 우에다 신슈의 오리지날 작품. 생각해보면 이 양반이 [바로크]도 만화화했었는데 그런 걸 보면 작화 자체는 야오이물에나 나올 법한 진한 색기(G펜)를 풀풀 풍겨내지만 정신세계는 꽤 그로테스크 지향인 듯. 이 작품도 작가가 책날개에서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끈질기게 러브코미디로 그리려고 했다고 뻥치고 있는데 다 본 사람이면 별로 동의가 불가능하거니와.... 일단 표지부터가 그렇다. 전기물에 가까운 내용으로 앞으로가 기대되는 물건.

 

호크아이 하악하악. 전체적인 내용은 쉬어가는 분위기로 지금까지 나온 권들 중 가장 긴장감이 덜하지 않았나 싶다. 그 증거로 작가의 농땡이로 인해 무려 11페이지나 배정된 보너스 만화 페이지. 본편 이상으로 즐겁게 보고 있다는 독자편지 투고자(and me)에게 동조하는 이라면 별 불만도 없겠지만.

 

의외로 유머가 넘치는 만화. 가끔씩 매 에피소드 끝에 달리는 작위적 해피엔딩의 쌍팔년도적 센스만 빼면 좀 좋겠다.

 

퀄리티가 화끈하게 떨어져버린 작화(월간연재인데). 그러나 이야기는 이제야 볼만하게 클라이막스로 달려간다. 즉슨, 이제 이 작품을 보면서 더이상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 그런 점에서 진지하게 원작소설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원작자의 말을 빌리자면 '주요 등장인물의 머릿속 나사가 기세 좋게 튕겨 나가는' 5권. 오직 오이와 켄다이의 색기 자르르한 그림만 보고서 참고 온 보람이 조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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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6-09-16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미레 17세는 만화 소개글만 봤는데 느낌이 팍! 오더군요.=)

hallonin 2006-09-1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치는 50% 이상 삭감 바람. 헐.
 

처음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게된 것은 SICAF 1회 때였습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동인 만화팀들의 축제가 아카라고 한다면 메이저 만화사들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게 저 SICAF였는데, 악평을 듣고 있는 근간에 비춰서도 그렇지만 1회 때도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여러 모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치뤄지는 대규모 만화-애니메이션 행사라는 점에서 서툰 점도 많았고.

그때 해외 출판사에서 독자적인 부스를 마련한 것중 하나가 고단샤였는데 거기서 바로 저 [공각기동대]의 프로모션 비디오를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3평 정도 되는 좁은 공간에 겉치레로 갖다놓은 만화책들, 그 바깥쪽에 덩그라니 자리한 17인치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보여지는 환장할 정도의 동영상은 그 주변의 모든 엉성함과 대비되어 무척이나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2회 SICAF에서 화면에 네줄씩 쓰여지는 자막을 용을 쓰고 따라가며 최초로 [공각기동대]와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벌써 10여 년 전의 얘기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공각기동대]는 컨텐츠로서 살아있으며 소비가능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끊임없는 자아증식 끝에 하나의 카테고리로만 묶어도 될 정도의 양을 생산해냈습니다.

 

원작의 요소들을 상당 부분 빼오면서도 비주얼적 측면에서 독자적인 면모를 추구했던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이나 그런 극장판과 원작과의 접점을 보다 현재 시점에 맞춰 가공해낸 TV판, 그리고 다른 매체로 컨버전된 것들 중 가장 원작 코믹스의 이미지와 근접해 있던 플레이스테이션1용 게임과 SAC 시리즈와 함께 연동해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2용 게임 등등. [공각기동대]는 잘 잡힌 컨텐츠가 근 20여년에 가깝게 쉬지 않고 활용되는 모범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기본은 바로 시로 마사무네가 만든 원작 코믹스입니다. 1989년에 나온 작품이 SF라는 장르를 가지고도 큰 변형이 없이 아직까지도 통용가능한 것은 '시대를 앞섰다'고 밖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일입니다. 실로 지금까지 나온 모든 [공각기동대]의 핵심은 시로 마사무네가 만든 원작 속 에피소드들의 변주에 다름 아니며 그것은 얼마 전에 방영된 새로운 시리즈인 [공각기동대 SAC Solid State Society]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각기동대]는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SF장르에서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네트시대의 도래에 맞춘 장치들을 이용하여 존재론적 인식을 극단까지 끌고 갔다는 점에서 작품의 미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 대한 위기가 인간의 상상력과 더불어 점점 고도화되고 있는 미래에 비추어 인식론은 쳇바퀴 돌듯 계속해서 회귀하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는 고전적인 질문의 세련화지만 답을 내리기란 훨씬 더 어려웠지고 있음을 작품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미래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시로 마사무네 자신은 2001년에 [공각기동대2]를 내놓음으로써 10여년 만에 자신의 새로운 귀신들의 이야기를 다시 풀어놨습니다. SAC 시리즈에 원작제공자이자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고 [공각기동대2]와 SAC 시리즈에서의 교집합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는 만큼 여기서 쓰인 요소들이 향후에 어떻게 더 활용되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일 듯 합니다. 정작 책 자체는 CG의 적극적 활용으로 인한 제본의 어려움과 무지막지한 대사 및 설정량, 매니악한 수용층 때문에 국내에 정식발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입니다만.


그리고 11월 24일 DVD 발매 전에 선행방송을 한 [공각기동대 SAC SSS]. 2기 GIG가 제작기간의 촉박함으로 인해 다소 헐렁한 퀄리티로 불만을 샀던 반면 이번 3기이자 단독 에피소드는 1억엔을 투자하여 만들어낸 압도적인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이스는 원작 [공각기동대1]의 첫번째 에피소드였던 성서민구제센터 에피소드를 각색했으며 미래를 보여주지만 현재를 지향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완결이 되도록 짜임새 있게 잘 짜놨더군요. 물론 칸노 요코의 오프닝 또한 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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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으로 끝났습니다만,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일단 저는 후자쪽에 가깝습니다. 어쩌면 중간중간 텀이 너무 길었던 탓에 긴장감을 잃어버렸던 게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요. 그런데....

 



딱 예상했던 이런 일을 벌이는군요. 사실 톱을 노려라2의 관건은 1과의 연계가 어떻게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이벤트가 일어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로선 당연히 추가장면이나 보다 끈끈해진 연관관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마지막인 6화의 제목은 가이낙스의 전통처럼 SF소설에서 빌려왔더군요. 바로 테드 창의 저 유명한 [당신 인생의 이야기]. 안에 실린 단편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내용이 '외계인과의 접촉 임무를 부여받은 언어학자의 인식론적 변용'이라고 하니 역시나 어느 정도 들어맞기도 하군요. 전부터 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어째 아직까지 손에 못 들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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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6-09-0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 인생의 이야기… 제가 2005년에 본 책 중에 최고로 꼽습니다. 보시기로 마음 먹으셨다면 꼭 보실 것을 권해드려요. =) 음 그러고보니 이렇게 권하면 절대 안 보는 분들이 있어 조금 걱정되는군요. (저도 그런 편이라 --;)

hallonin 2006-09-1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보고는 싶은데 여유가 없어서.... 네이쳐지에 소설을 올리는 작가로도 유명하더군요. 어떻게든 볼 겁니다!
 

http://paper2k1.egloos.com/2485385

뭐 지금쯤이면 이미 웹에 퍼질대로 퍼졌겠다 싶습니다. 저 '에바'가 드디어 돌아오는군요.

사실 전부터 가이낙스가 주식값이 떨어지면 에바를 한 번 더 재탕해먹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게 된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라는 예상에선 사이드스토리거나, 패러렐월드거나 둘중 하나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후자쪽으로 결정이 난 것 같습니다.

http://mirugi.egloos.com/1407574

예정으론 내년 여름부터 시작될 전편, 중편, 후편, 최종화의 네 편에 이르는 극장판이며 같은 시간축에서의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라는군요.

대박난 작품이 으례 그렇지만 에바의 경우는 특히나 시대와의 공명이 지독하게 이뤄졌던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모든 경험과 감각들이 흔해진 현재에 에바가 과연 통용 가능할 것인지는 제작진들의 가장 큰 고민일 것입니다. 사실 에바 이후 안노 히데아키가 보여줬던 실사영화에서의 반타작 삽질, 기획 및 프러듀스에서의 신통찮음, 그리고 후속 가이낙스의 작품군이 썩 지지를 못 얻었다는 점에서도 이번 '에바의 재구성'에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새로운 에바 극장판에 다시금 눈을 붙이게 되는 것은 저 인터뷰에서 나왔다는 말, '현상의 애니메이션 업계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에바』로부터 시작된 시대에 막을 내리겠다는 것이 제작 측의 마음가짐'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고 일본에선 3월달에 나온 이거 10권은 왜 반년이 넘도록 아직 안 나오는 겁니까.... 신지와 카오루의 보다 노골적인 러브씬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웨타에서 만든다던 에바 실사판도 떠오르는군요. 그건 그것 나름대로 출중한 즐거움이 되리라고 생각됩니다만, 과연 만들긴 만들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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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지만 영원히 안 나올 것 같은 모양새인 [지오브리더스]가 아니라 저 [와일더니스]의 한국판 [런어웨이] 4권입니다. 오랜만에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오랜만이군요. 3권이 2004년에 나온 걸로 되어 있으니 어언 2년여만입니다.

시대정신을 오우삼의 미학에 맞추고 있는 이토 아키히로의 고전적인 취향이 돋보이는 [런어웨이] 4권은 대두 캐릭터로도 멋진 액션씬을 연출할 수 있다는 걸 과시한 전작들과는 달리 총격전이나 액션씬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번 4권에서의 주제는 죄의식. 사건은 크게 진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람을 죽인 이들과 임무를 방관한 이가 죽음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인물들의 신경증적인 표정이 많이 쓰이더군요. 다만 이야기 자체는 정체되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희대의 쾌작 [지오브리더스]가 시공사로 판권이 넘어가서는 만화부서가 집안사정의 희생양이 되어 망한 이후 수년이 지난 현재 아무데서도 출판하지 않는 상황에서 [런어웨이]는 그 자체로 소중한 창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런어웨이]의 방향성 자체가 [지오브리더스]보다는 하드보일드함을 지향하는 바, 이 이야기의 둔중한 흐름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바라고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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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6-09-02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런어웨이..웬만한 책방에서는 보지도 못한듯.
카이지 작가의 최강전설 쿠로사와 <- 이거 상당히 기대하고 있읍죠/

hallonin 2006-09-0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인기가 없군요....

리리수 2006-09-0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 목록을 보다.. "런어웨이" 제목을 보고 다른 책이것거니 생각했는데.. 놀랐네요.
일본어를 몰라 지오브리더스 8권 이후를 못보는 심정을 이거로라도 달래야겠네요.

hallonin 2006-09-05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안타깝지만 4권은 위안 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