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게된 것은 SICAF 1회 때였습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동인 만화팀들의 축제가 아카라고 한다면 메이저 만화사들의 축제라고 할 수 있는 게 저 SICAF였는데, 악평을 듣고 있는 근간에 비춰서도 그렇지만 1회 때도 별로 재미는 없었습니다. 여러 모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치뤄지는 대규모 만화-애니메이션 행사라는 점에서 서툰 점도 많았고.
그때 해외 출판사에서 독자적인 부스를 마련한 것중 하나가 고단샤였는데 거기서 바로 저 [공각기동대]의 프로모션 비디오를 틀어주고 있었습니다. 3평 정도 되는 좁은 공간에 겉치레로 갖다놓은 만화책들, 그 바깥쪽에 덩그라니 자리한 17인치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보여지는 환장할 정도의 동영상은 그 주변의 모든 엉성함과 대비되어 무척이나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2회 SICAF에서 화면에 네줄씩 쓰여지는 자막을 용을 쓰고 따라가며 최초로 [공각기동대]와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벌써 10여 년 전의 얘기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공각기동대]는 컨텐츠로서 살아있으며 소비가능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끊임없는 자아증식 끝에 하나의 카테고리로만 묶어도 될 정도의 양을 생산해냈습니다.





원작의 요소들을 상당 부분 빼오면서도 비주얼적 측면에서 독자적인 면모를 추구했던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이나 그런 극장판과 원작과의 접점을 보다 현재 시점에 맞춰 가공해낸 TV판, 그리고 다른 매체로 컨버전된 것들 중 가장 원작 코믹스의 이미지와 근접해 있던 플레이스테이션1용 게임과 SAC 시리즈와 함께 연동해서 나온 플레이스테이션2용 게임 등등. [공각기동대]는 잘 잡힌 컨텐츠가 근 20여년에 가깝게 쉬지 않고 활용되는 모범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기본은 바로 시로 마사무네가 만든 원작 코믹스입니다. 1989년에 나온 작품이 SF라는 장르를 가지고도 큰 변형이 없이 아직까지도 통용가능한 것은 '시대를 앞섰다'고 밖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일입니다. 실로 지금까지 나온 모든 [공각기동대]의 핵심은 시로 마사무네가 만든 원작 속 에피소드들의 변주에 다름 아니며 그것은 얼마 전에 방영된 새로운 시리즈인 [공각기동대 SAC Solid State Society]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각기동대]는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SF장르에서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네트시대의 도래에 맞춘 장치들을 이용하여 존재론적 인식을 극단까지 끌고 갔다는 점에서 작품의 미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 대한 위기가 인간의 상상력과 더불어 점점 고도화되고 있는 미래에 비추어 인식론은 쳇바퀴 돌듯 계속해서 회귀하고 있습니다. [공각기동대]는 고전적인 질문의 세련화지만 답을 내리기란 훨씬 더 어려웠지고 있음을 작품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미래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시로 마사무네 자신은 2001년에 [공각기동대2]를 내놓음으로써 10여년 만에 자신의 새로운 귀신들의 이야기를 다시 풀어놨습니다. SAC 시리즈에 원작제공자이자 자문으로 참여하고 있고 [공각기동대2]와 SAC 시리즈에서의 교집합이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는 만큼 여기서 쓰인 요소들이 향후에 어떻게 더 활용되는지를 보는 것도 재밌는 일일 듯 합니다. 정작 책 자체는 CG의 적극적 활용으로 인한 제본의 어려움과 무지막지한 대사 및 설정량, 매니악한 수용층 때문에 국내에 정식발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입니다만.

그리고 11월 24일 DVD 발매 전에 선행방송을 한 [공각기동대 SAC SSS]. 2기 GIG가 제작기간의 촉박함으로 인해 다소 헐렁한 퀄리티로 불만을 샀던 반면 이번 3기이자 단독 에피소드는 1억엔을 투자하여 만들어낸 압도적인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이스는 원작 [공각기동대1]의 첫번째 에피소드였던 성서민구제센터 에피소드를 각색했으며 미래를 보여주지만 현재를 지향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완결이 되도록 짜임새 있게 잘 짜놨더군요. 물론 칸노 요코의 오프닝 또한 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