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물론 뻥이여....

라고 말하긴 뭐하고, 나도 한 번 저런 제목 써보고 싶었다. 암튼 10여년만에 두 권의 만화책이 정식 발간, 재발간됐다.

 

어찌되었든 옛것이 재발굴되는 세상. 지금이야 [딸기100%]에서의 절제없는 서비스씬으로 하렘물의 신흥강자쯤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원래는 야오이계에서 활동했던 카와시타 미즈키가 모모쿠리 미칸이란 이름으로 슈에이샤에서 냈던 소프트 야오이 [하늘의 성분]이 정식으로 발간됐다.

우리나라에선 예전에 불법판으로 두 번에 걸쳐서 발간이 됐었는데 처음엔 고급스러운 A5 판형으로 나왔지만 두번째는 조악한 B6 판형. 이번에 나온 건 일본어판을 준수하는 A5판형이다(어째 정보에는 B6판형으로 올라와있다).

스토리는 유별나거나 튀지 않는, 잔잔한 전개로 표지에 박힌 농구 잘하는 킹카 남정네가 이쁘고 잘 빠진 여친(근데 생각해보니 사촌이던가.... 암튼 유사근친 비스무리한 관계. 별로 안 튀는 건 아니구만....) 냅두고 이쁘게 생긴 남자애한테 빠져버린다는 내용. 사랑하는 마음이 떠나가는 것을 구름에 비유했다는 점에선 [봄날은 간다]의 정서와 비슷하지만 떠나가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갈등과 고통보다는(재빨리 정리되버린다) 남자가 너무 이뻐 하아하아에 촛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가볍게 볼 수 있다. 작가는 여기서 오쿠 히로야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은 그림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히로인이라 할 수 있는 이쁘장한 숫컷 고이즈미는 오쿠 히로야의 빗나간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變]의 사토우랑 붕어빵이다. 나도 사실 처음 봤을 때 같은 작간 줄 알았으니까. 다만 이쪽이 좀 더 여성적인 선과 부드러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해적판으로 두 번이나 찍었고, 간간이 얘기되는 걸로 봐서도 국내에서 이 작품의 팬이 꽤 되는 걸로 아는데, 특히 남자들 중에서 고이즈미의 색기에 반해서 야오이라는 외도에 빠져든 이가 제법 됐다. 두번째 해적판은 불법 야오이 레이블이었지만 첫번째 해적판은 적어도 겉만 봐선 멀쩡... 하기도 하고 뒷표지엔 웬 흐트러진 단발 미소녀가 있어서....

해적판과 다른 점이라면 말미에 금단의 사랑을 알아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가 3페이지 들어가있다는 거.

 

[스피릿 오브 원더]가 발간한지 10년쯤 되는 해엔 자신의 경력에 단행본이 한 권쯤 더 추가되어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말하던 츠루타 켄지씨. 결국 지키지도 못할 약속 뭐하러 했나 싶을 정도로 별 얘기 없이 10년째인 2007년을 맞이했다. 그 잃어버린 10년을 기념이라도 하듯, 철저한 시장의 외면과 세주문화의 부도 덕에 희귀템이 되버린 [스피릿 오브 원더]가 불법 재발간.

 

http://gall.dcinside.com/list.php?id=comic_new&no=214370&page=1&search_pos=-205553&k_type=0110&keyword=%EC%9B%90%EB%8D%94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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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7-03-1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우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했는데…해적판으로 나올 줄이야.. 아깝습니다, 아까워요.

hallonin 2007-03-1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으로 재테크하실 생각을 하다니, 상당히 가망이 없는... 헐헐, 근데 뭐 해적판이니 라이센스판의 가치가 떨어질 것 같진 않습니다만.
 

우선 들어가기에 앞서.... 여기서 나오는 미야다이 신지 교수는 일본에서 연재중인(중인 거 맞을려나?) 이유정씨의 만화 [군바리]의 스토리작가인 이현석씨(http://warmania99.egloos.com/)의 은사입니다. 이현석씨는 다수의 만화에서 스토리작가를 했었고 영챔프에서 일본통신을 연재하기도 했었습니다.



밑의 글에서 소개되고 있지만 미야다이 교수는 보수주의자이자 천황제 지지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덤으로 징병제예찬자(군바리 띠지에다 글 써주고 말미에선 인터뷰도 하고). 제가 생각하기에 이 양반은 일본내 거대담론이 붕괴되고 그 자리에 들어선 허무주의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그 방법론으로 천황제 지지와 그에 따르는 "일본다운 구조의 성립"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미시마 유키오와도 꽤 흡사한 양반입니다. 아직 자살은 안 했지만.


이 기사가 실린 곳은 프리존이라는 보수우익매체입니다. 같은 매체에 이현석씨의 인터뷰도 실려있었지만 단편적이라서, 통째로 현지인의 목소리를 가져와봤습니다. 미야다이교수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이 기사 자체의 성향이 국내에 있는 친일적 정서의 사람들(말그대로 정치적인 측면에서)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애국과 자유를 외치는 보수언론에서 유독 일본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난다는 것은 확실히 우리나라 보수우익의 한심스런 정체성을 재증명해보이고 있죠. 더군다나 강한 일본을 주장하는 사람을 불러다놓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자가 가끔씩 보여주는 삽질(나중에 가면 러브앤피스까지!)은 무시해버리고 미야다이 교수가 말하는 일본의 정치상황 개론에 집중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도시형 우익이란 건 말하자면 인터넷찌질이들 같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건데 스스로를 정통파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는 미야다이 교수는 명백하게 그런 부류들을 혐오한다는 관점입니다. 징병제와 관련해선 모종의 환상마저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와 관련한 미야다이 교수의 생각은 세계를 갈등구조로만 파악하는 시선에서 비롯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상대립의 붕괴와 개인주의 지향이 극심한 사회변동의 축과 더불어 변증법적으로 순환한다고 보는 이에게 이 양반의 징병제대안론은 환상처럼 보일 것입니다(그리고 바로 그 징병제가 행해지고 있는 나라에서라면). 어찌되었든 소위 얘기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이지만 이런 양반이 주류가 되면 진짜로 위험해질지도 모를 일이죠.

얼마 전에 오타쿠의 우익성향에 관련된 포스트를 올렸습니다만, 이 사람의 입장은 "과연 일본의 군사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시각으로서 참고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가 미묘한데, 참고로 우리나라 내에서 일본의 군사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1. 또 일으킬 거다. 두려우니 아작내자.

2. 그런 거 없다. 일본애들 존나 무기력하고 모에에 정신이 빠져서 그짓 못한다.

3. 일단 무기력해보이지만 흐름이 겹쳐져서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모른다.

정도로 정리가 되겠습니다.

모쪼록 시각 정립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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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미야다이 교수 “반한감정 조장세력은 '도시형 우익'”
[3·1절 기획③] 일본 사회학자가 보는 일본의 사회 문제와 한일관계
전경웅 기자 2007-03-04 오후 12:46:10  
 
미야다이 신지(宮台真司) 도쿄 도립대 사회학과 교수. 미야다이 교수는 현재 일본 사회에 대해 가장 정확한 분석을 내놓는 학자로 유명하다. 천황제 지지자이며 과거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기도 했다.ⓒ 프리존뉴스



좌파 성향의 미디어 전문가와 대중문화 평론가인 유학생이 전하는 일본 이야기는 우리가 한국에서 듣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일본 우익들은 지금의 일본과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미야다이 신지(宮台真司) 도쿄도립대 교수는 니콜라스 루만의 사회시스템 이론을 기반으로 현재의 일본 사회에 대해 가장 정확한 분석을 내놓고 있는 학자 중 한명이다. 미야다이 교수는 1959년생으로 올해 마흔 아홉살이다.

 

그는 현재 일본의 젊은 우익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최근 일본의 대외관계가 지나치게 친미적이라는 이유로 고이즈미 총리와 아베 총리 등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로도 알려져 있다.

미야다이 교수에게 먼저 한국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일본 우익에 대해 물었다. 정말 일본 우익은 한국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것처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과거 한국인들에 대한 착취와 희생을 정당화하고 있을까?

그는 "일단 일본 우익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완벽한 오보"라고 주장했다. 미야다이 교수는 "일본의 전통우익은 반한감정을 조장하는 일이 없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미야다이 교수는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등 반한감정을 조장해 양국 간의 감정대립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들을 '도시형 우익'이라고 불렀다.

그는 "도시형 우익은 주로 젊은이들이 많다. 이들은 과거의 우익들이 신성시하는 천황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며 역사적 지식도 전혀 없다. 전쟁 전의 역사는 물론이고 전후 일본을 지배했던 다양한 사상들과도 연관이 없다. 이들은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 몇 권을 보고는 우익이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이들의 돌출발언과 우발적 행동 때문에 군국주의 시대에서부터 이어지는 전통적 우익들이 크게 당황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는 이들이 지금과 같이 주변 국가의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인터넷과 일본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고이즈미 수상에게는 이지마 이사오라는 보좌관이 있다. 그는 이런 도시형 우익을 정치적으로 동원해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는 데 이용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미야다이 교수가 설명한 도시형 우익들은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혼자 살아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임시직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 계층이 대다수라고 한다. 미야다이 교수는 '약자일수록 강자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으며 이들에게 이니셔티브만 주면 동원할 수 있다'는 고전적 파시즘 이론을 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일본 내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동원된 이들이 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해 갈등을 일으키는 것일까. 미야다이 교수는 "이 사람들이 한국이나 중국, 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건 스스로 정의롭다고 고무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어떤 나라든 젊은 세대들은 정의감에 충만해 있다고 전제했다. 40여년 전 일본에서 사회 정의를 중시했던 젊은이들은 대부분 좌익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권력에 빌붙는 노동귀족, 노조귀족'과 같은 존재로 변해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과 임시직을 전전하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전혀 없다고 한다. 때문에 지금의 젊은이들, 즉 '도시형 우익'은 이런 좌익에 공격적인 태도를 가지게되는데, 이들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일본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인 한국과 중국, 북한도 같은 공격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이즈미 내각은 이미 지난 정부다. 그렇다면 지난 2일 자민당 내 우익 의원들과 함께 '일본은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적이 없다'는 망언으로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을 들끓게 한 아베 내각은 어떨까? 이들이 추구하는 건 뭘까?

미야다이 교수는 아베 내각도 고이즈미 내각의 연장선이며 자민당과 같은 전통적인 우익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민당 같은 우익과 2차대전 당시의 우익이 또한 전혀 다르다"며 "2차대전 후 일본 우익인 자민당의 기본 정책은 부의 재분배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우파와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미야다이 교수에 따르면 전후 초대 수상인 요시다 시게루는 정부 예산을 통해 지방공공사업을 조성해 그 지역에서 대량고용을 창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때문에 일본 농촌에서는 사민당이나 공산당을 지지하는 건 곧 지역경제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자민당을 지지해야만 생활이 나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시다 수상은 지방공공사업 조성에 소요되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이 일본의 안보를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 안보를 맡기는 과정이 맹목적인 굴종은 아니었다.

전후 한국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과 한국전 참전을 요구하자 요시다 수상은 지방공공사업 등을 이유로 재무장에 반대하고, 보안대-경찰 예비대–자위대라는 조직을 창설하는 선에서 미국의 입을 막았다. 이때 미국의 요구가 강해지면 사회당을 이용해 파업을 조장하기도 하면서 '우리를 압박하면 일본에 공산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며 미국을 협박하기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재무장과 천황제 부활을 꿈꾸는 우익들도 요시다 정권에게 억압받았다. 그렇다고 이들을 완전히 말살하지도 않았다. 전후 일본의 지식인 사회를 장악한 좌익들을 견제하기 위해 이들 우익을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요시다 수상은 ▷미국이 시키는대로만 하면 일본은 국익을 잃는다 ▷일본이 언젠가 아시아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하면 국익을 잃게 된다 ▷전쟁 전의 내무성, 육군, 해군 인맥은 절대 신용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의 원칙을 갖고 미일 안보조약을 맺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약을 통해 "재군비를 하지 않는대신 장소는 무상으로 제공할테니 언제든지 일본을 지켜달라"고 미국에게 요구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재무장을 할 경우 당장 전쟁을 할 일은 없지만 언젠가 미국의 졸개로 참전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요시다 수상의 '복선이 깔린 반미전략' 덕분에 일본은 미국의 힘을 빌려 안보를 강화하고, 재무장에 들어갈 예산으로 공공재정을 확보하고 노동자 계층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당시 요시다 수상은 국제정세에 능통했다. 그의 참모였던 시라스 지로 또한 미국에서 교육받은 애국자였다고 미야다이 교수는 표현했다. 문제는 이들이 물러난 후부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에서는 이들이 세운 전략의 본래 의미는 잊어버린 채 '미국은 무조건 좋은 나라' 또는 '반공반미가 진정한 국시'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다 나중에는 좌익 세력들이 늘어나면서 반미와 함께 경무장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좌익 세력들은 일본이라는 나라는 미국이 없으면 재무장이 불가피한데도 반미와 경무장이 가능한 것처럼 호도했고, 90년대부터 나타난 '도시형 우익'은 이런 좌익 세력들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은 철저히 익명으로 활동하며 주로 인터넷에서만 보인다고 한다. 결국 한국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일본 우익들의 발언은 인터넷 등을 통해 활동하는 '키보드 워리어'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지 물었다. 미야다이 교수는 "한국 사정을 잘 몰라서 확실하게 이야기는 못하지만 지금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가 노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는 "일본에도 존재하는 재벌, 기자클럽과 같은 특정이익집단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했고 권력기관의 권위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이해관계가 없는 서민들을 보호해 시민정치권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에게 "노 대통령의 집권 동안 사회적 분열이 심각해졌고 안보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제는 지지율이 한 자리 숫자"라고 말해주자 놀라는 눈치였다.

이런 한국과 지금의 일본 사정을 비교하면 어떤지 묻자 "일본도 지금 심각한 상황"이라며 "차라리 한국이 부럽다"고 말했다. 미야다이 교수는 고이즈미 내각도 국민의 분열을 초래했고 유능한 전략가와 참모들을 배제하는 풍토를 만들었다며 "전략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친미 노선을 지향하면서 아시아에서의 고립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그가 생각하는 고이즈미 정권의 실패 원인은 '감정적인 동원수단을 이용한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고이즈미 수상은 심지어 자민당 내에서 자신의 반대파를 숙청할 때 '나의 개혁이 당내 저항세력 때문에 안된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저항세력'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고. 결국 노무현 정권과 고이즈미 정권은 반대 방향으로 갔지만 결과는 같았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한국 사회에 관심이 많은 미야다이 교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미야다이 교수는 한국 젊은이들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지 물었다. 그에게 최근 사회문제에 대한 인터넷 상의 분위기와 적극적인 참여는 아니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을 우려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하자 "이런 차이는 역시 징병제의 유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는 "한국에서는 그나마 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군대라는 경험을 통해 재사회화가 이뤄지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추측했다.

미야다이 교수에 따르면 최근 일본의 젊은이들은 인생의 목적이 주변에서 인기가 있는지, 이지메를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등의 신변잡기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거의 모든 사회생활에 대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일이라며 일찍 포기한다고. 때문에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군사대국이라든지 국익 등과 같은 사회적 담론의 형성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들의 인간관계가 더 좋아지지도 않았다는 게 그의 조사결과였다. 지난 15년 간의 통계에 따르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은 사회문제나 정치에도 관심이 많은 반면 그 반대인 사람은 사회나 정치에도 관심이 없다고 한다. 문제는 지금 일본에서는 후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기준 또한 한국과 같은 대인관계가 아니라 분위기 파악을 얼마나 잘 하고, 그 자리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역할을 얼마나 잘 하는가 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미야다이 교수는 "이런 일본 젊은 세대의 현상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일 정도로 고용불안이 높은 상황인데도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포기하거나 무관심한 세태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본은 소재산업이나 내구재 산업에서 큰 강점을 지니고 있고 공부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느냐고 묻자 "그건 과거에 벌어놓은 것을 단순히 까먹고 있는 것"이라며 "과거와 같은, 고도의 기술을 갖춘 젊은 숙련공 인력과 노하우가 고갈되어 가는 상태"라고 한탄했다.

미야다이 교수가 설명하는 현재 일본의 상황은 꽤 심각했다. 일본을 일으킨 '단카이 세대'가 아랫 세대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았던 탓에 지금 일본 사회에서는 젊은 숙련공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단카이 세대는 자신들이 배웠던 것처럼 아랫 세대들이 따라올 것으로 믿고 관심을 쏟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출세한 엘리트 계층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들에게는 사회적으로 공헌한다거나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인드, 서민 계층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 하층민들을 경멸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한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나라도 버릴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외부 인재를 수혈하는 것 또한 정치계, 사회 고위층의 문제라는 점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쿄 신주쿠(新宿)역 앞의 정치선전 차량. 일본의 정치선전 차량은 이처럼 출퇴근 시간 위주로 주요 지역 앞에서 활동한다. 사진은 환경운동정당의 선전 차량이다.ⓒ 프리존뉴스
그렇다면 한국은 일본에게 무엇을 배워야 할까? 미야다이 교수에게 한국과 한일 관계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는 지금과 같은 윤택한 생활이 당연한 것이 되면서 치열한 사회적 경쟁이나 욕망이 사라졌다. 또한 주변의 인간관계와 같은 협소한 부분에만 관심이 많다. 한국도 나중에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통일이 된다면 일본과 유사한 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며 "일본의 문제를 냉정하게 보면서 반드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한 향후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중국 문제를 거론했다. 미야다이 교수는 "중국은 앞으로 시장뿐만 아니라 자금력, 정치적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그런데 고이즈미 내각의 포퓰리즘으로 인해 지금 중국과 일본 관계는 매우 나빠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은 중국이 일본의 기술을 흡수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일본을 존중하지만 나중에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 일본을 버리고 유럽이나 미국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중화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으로부터 생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일본은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한다. 중국의 팽창에 영향을 받을 한국과 일본이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아야 할 것"이라며 한일 관계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야다이 교수는 또한 "최근에는 '도시형 우익'의 세력이 쇠퇴해 스스로 아나키스트를 자처하고 다닌다"며 "한국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일본의 부정적인 모습이나 '도시형 우익'의 바보같은 행동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라. 한국과 일본은 서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충고했다.

인터뷰를 마친 미야다이 교수는 방송 녹화 일정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일본의 우익 지식인으로 알려진 그의 분석과 한국에 대한 조언 속에는 한국을 다시 지배해야 한다는 시각이나 한국 사람을 얕보는 시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활력과 아무런 지원이나 대가도 없이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세계로 나가는 한국 젊은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더욱 컸다. 우리가 우려하던 일본의 군국주의화는 결국 존재하지 않는 환상에 가까웠다.

전경웅 기자(enoch@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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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머릿 속에 계속 남는 영화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프레스티지]다. 일단은 재밌다. 두시간이 넘어가는 상영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프레스티지]는 반전영화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반전을 착각하고픈 이들에게 바치는 재치있는 조롱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한 수많은 샤말라니스트(반전주의자)들의 아우성은 사뿐히 무시할만 하다. 사실 반전이란 요소 자체가 미끼로 쓰인 영화기 때문에, 언제고저제고 반전 터질 때만을 기다리느니 진중하게 이 영화의 유쾌한 장난과 영화 곳곳에서 보여주는 세세한 사려깊음에 즐거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작인 [메멘토]는 시간유희를 빼버리면 전형적인 필름느와르였고 [인썸니아]는 말그대로 정극스릴러였다. [프레스티지]는 흡사 그 두 작품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다. 교차되는 화자를 통해 제시되는 불완전한 기억과 그를 통한 속고속임은 [메멘토]를, 두 사람을 축으로 한 갈등과 끝에 다다르려 하는 브레이크 풀린 의지는 [인썸니아]가 떠오른다. 그를 바탕으로 반전의 재기발랄함 대신 인간의 욕망과 디지털 딜레마를 중후하게 파고들어간 [프레스티지]에서 내가 매혹된 부분은 두 부분이었다.

하나는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잔인한 풍경화다. [프레스티지]의 비밀은 이미 오프닝에서 나오는 노인의 설명, 보여주고, 숨기지만, 돌려보낸다 에서 끝나 있었다. 정말로 충격적인 것은 프레스티지가 실은 그리 대단치도 않은 트릭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매번 자신을 죽여야 했던 엔지어의 잔혹한 딜레마와 직면하는 순간이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보든과 엔지어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주고받는 증오의 정서는 [인썸니아]의 노곤함 직전에 영원히 머무르는 시간대 같다.

두번째는 이 영화가 아날로그 시대를 배경으로 디지털적 환상극을 창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그러나 테슬라의 전설적인 일화들을 생각해보자면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원본과 복제의 딜레마라는, 거의 고전에 가깝게 된 문제 속에서 엔지어는 한계를 초월한다. 그 깨어진 한계란 거리의 한계이기도 했으며(그로 인해 극장이라는 가상공간은 엄청나게 확장되버린다) 인간적인 것의 한계이기도 했다. 누가 죽게 될지 모를 불안에서 계속 쇼를 진행해야 했던 엔지어의 마지막 말은 그 자신이 빠진 지옥도의 프로세스를 알려준다. 이미 돌아오지 않게 된 것에서, '프레스티지'의 법칙은 무시당한 것이었기에 이 게임의 패자는 정해져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룰을 깨버린 이에겐 관객의 비난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보드리야르가 극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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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연' 보드리야르 서거에 부쳐 
 
2007-03-08 오전 10:06:12     
 
 
  
 
10년 전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과 벨기에의 물리학자 장 브리크몽은 <지적 사기>라는 책을 통해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장 보드리야르, 쥘리야 크리스테바, 자크 라캉, 질 들뢰즈, 펠릭스 카타리 등이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통칭되는 프랑스 철학은 겉치레와 수사, 현학을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지적인 사기라는 독설을 퍼부었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상대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철학의 개념을 오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프랑스 철학자들은 "과학의 단선적 객관성을 잣대로 인문학을 바라보려는 과학주의자들의 시각이야말로 또 다른 권위주의"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해서 촉발된 것이 이른바 '과학전쟁'이다. 당시 소칼과 브리크몽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지식인의 비굴함과 나태는 우리시대의 올림픽 종목이 돼버렸다"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현대 프랑스 철학을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지난 3월 6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자크 라캉(81년 사망), 질 들뢰즈(95년 사망), 자크 데리다(2004년 사망)에 이어 현대 프랑스 철학의 또 하나의 큰 별이 진 것이다. 프랑스 최고권위의 일간지 르 몽드와 지식인들이 즐겨보는 리베라시옹은 3월 7일자 1면 톱기사로 보드리야르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보드리야르의 비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섹스, 언어, 기호, 상품, 전쟁 등 그 어떤 것도 이 사회학자의 역설적인 분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리베라시옹은 보드리야르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렸다.
 
1929년 7월 20일 랭스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했고 브레히트나 맑스의 번역자이기도 했던 보드리야르는 1966년 파리 10대학 낭테르의 강단에 서면서 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러 학위들을 고려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65년 사회학만이 유일하게 개방적인 학문이었다."사회학을 선택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박사논문이자 첫 번째 저작인 <사물의 체계(1968)>와 1970년에 출간한 <소비의 사회>는 그를 일약 대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현대인의 일상을 소비라는 측면에서 해부한 보드리야르는 현대인들이 물건의 본연의 기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세와 권위, 즉 기호를 소비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얻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에서는 독창적인 분석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실재가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뮐라시옹(Simulation)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시뮐라크르(Simulacre)'인데,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사와 복제에 의한 가상실재, 즉 시뮐라크르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라는 그의 독특한 분석과 이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흐름을 이끌었고 미디어와 예술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일상생활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81)의 제자로 초기에는 맑시즘을 신봉했으나 1973년 <생산의 거울>이라는 책을 통해 맑시즘과 결별하고 구조주의와 기호학에 관심을 쏟았으며 그 뒤 줄곧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회이론을 전개해 왔다. <상징적 교환과 죽음>(1976), <푸코 잊기>(1977),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 아래서>(1978), <유혹에 대하여>(1979),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 <차가운 기억들 1,2,3>(1987~95), <아메리카>(1986), <악의 투명성>(1990), <완전범죄>(1994), <이타성의 형태들>(1994) 등 50편에 이르는 저작을 남겼고 그의 책의 한국에서도 20여 권이 번역되었다.
 
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1991년 걸프전 당시에도 지성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걸프전이 한창일 때 그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사일이 정확히 투하돼 목표물이 파괴되는 장면은 실제 아주 무섭고 비참한 것이지만 안방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 속 가상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토모던 현실 속에서는 일상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모사된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한국을 방한했던 보드리야르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제실험은 자연현실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시뮐라시옹의 극단적 사례"라고 주장했고, "문화와 예술, 행동양식에서 기호를 통한 현실의 재현을 가리켰던 근대의 시뮐라시옹과 달리 현대의 시뮐라시옹은 급격한 변화와 전이, 도약을 통해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가상현실로 넘어간다"고 설명하며 '극단적 현실 청산에 대한 두려운 전망'을 언급한 바 있다.
   
 
"소비는 일종의 신화이자 현대사회 스스로에 대한 표현이며 (…) 충만한 자기예언적인 담론이고 (…) 총체적인 해석체계이자 사회가 스스로를 극도로 향유하는 거울이며, 예견을 통해서 사회가 스스로 성찰하는 유토피아이다."
 
소비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통찰력을 담은 <소비의 사회>는 그의 학문적 입지를 단숨에 다져놓았다. 이 책의 서문에서 리딩대학교 토크빌연구소 메이어 교수는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뒤르카임의 <사회분업론>,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과 같은 책의 대열에 자리 잡고 있다"고 격찬했다. 모더니티에 대한 분석, 현대사회의 작동기제와 이면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우리시대 지성의 폭을 크게 넓혀놓았고, 무한한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열었다.
 
'참여하지 않는 지식인', '유토피아적 망상가'라는 그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장 보드리야르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통찰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류의 지적 자산을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간 빈 공간에 그가 우려한 바와 같이 지식인의 무기력과 나태함이 자리잡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때문에 그가 떠난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최연구/기획위원·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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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이 5년만 더 참았으면, 저런 말은 못했을 듯 싶다. 단순히 [매트릭스]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된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미디어와 기술에 대한 가장 예리한 통찰자로서 그는 일찌감치 현대인들의 일상과 가장 결부되는 화두의 제시자였으며 그렇기에 스스로가 자명한 현대인이었고 끊임없이 '포스트모던'(이 단어의 장난질 같은 속성은 잠시 제쳐두자)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통 속에 든 뇌인 이상, 그가 세상에 내놓은 목소리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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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데스노트]는 좀 이상한 만화였다. 처음 시작은 소위 택티컬한 두뇌게임으로 시작됐지만 뒤로 갈수록 만화는 캐릭터에 집중되는 망상대결로 흘러갔다. 그래서 중반 이후로 내용에 대한 논의는 거의 사라지고 주로 캐릭터 팬덤에서의 얘기들만이 열정적으로 오갔다. 매체상으론 소년만화였지만 내용 자체가 완전범죄 성립을 위해 상황에 따라서 사람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고민하는 내용인데다가 가끔씩 보여지는 코드들은 작가의 취향을 드러내는, 어둠의 성향을 꽤 띄고 있기도 했다(거북줄묶음, 고스스타일들 등등). 그래서 애니메이션판은 심야에 방송중.

뭐랄까, 설익은 사과를 씹는 기분이랄까. 워, 이건 정말 멋진 걸, 하고 말하고 싶어도 항상 얼마간은 부족했다. 그중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은 캐릭터들의 정서적 풍부함이 컷을 가득 메우는 활자들과 사건 전개 이외의 씬에서는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대사와 상황에 근거한 인물들의 빈약한 드라마에 비례해서 사라져있다는 거였는데, 그것을 가까스로 살렸던 것이 오바타 다케시의 매력적인 작화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어찌되었든 근래에 나온 가장 파괴력 있었던 컨텐츠긴 했지만, 소년 점프가 아니라 애프터눈에 연재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게다. 뭐 그랬다면 또 이만큼이나 돈을 벌 수 있었을진 모르겠지만.

 

 

 

결론은 2기 오프닝이 맘에 들어서 올리려고 했던 것. 때깔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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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7-03-03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작가가 야오이나 H망가를 그려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 엄청난 그림체로 그려낸다면 오구레히토 정도는 눈에도 안 들어올 겁니다!! (하악하악) 스토리가 무슨 필요 있겠습니까. 섹스노트 같은 걸로 그냥 고고씽

hallonin 2007-03-03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에토 아야가 AV계 데뷔하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겠군요.... 뭐 오바타급은 아니라고 해도, 에로만화쪽으로 가면 정말 굉장히 잘 그리는 사람들이 꽤 되죠. 한 번 그 넓디넓은 세계에 빠져보심도 좋을 듯.

그리고 야오이 전문 레이블 하나 만들어보는 게 어떻습니까? 야오이팬들의 충성도란 게 장난이 아니니까.... 그래도 수익구조는 좀 불안하긴 하지만.
 

<소설의 위기인가, 한국소설의 위기인가>
 
[연합뉴스 2007-02-25 15:46]  
  
 
"소설 시장 여전히 강세..한국소설 시장 응전력 자성해야"
'세계의문학' 봄호 '문학의 위기' 진단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2000년 대 들어 '소설의 위기'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뉴미디어시대에 접어들면서 과거 소설 향유층과 신세대들이 더 이상 소설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 문학인들과 출판사들의 하소연이다.

과연 이 시대 소설은 위기를 맞고 있는가. 다음 주 출간되는 계간 문예전문지 '세계의 문학'(민음사 펴냄) 봄호는 특집으로 꾸민 '누가 문학을 읽는가'를 통해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진단했다. 결론은 '소설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소설의 위기'라는 것.

먼저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는 '2000년대의 한국소설 독자Ⅱ'라는 기고문을 통해 "독자들은 즐기기 위해 또는 뭔가 도움을 받기 위해 책(소설)을 읽는데" 한국소설의 주류를 이루는 작품들은 "여전히 민족적ㆍ국가적인 측면에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천 교수는 "1990년 대 들어 소설의 사회적 기능이 전세대와 크게 달라지고 문학잡지와 평론의 사회적 위상이 급격히 낮아졌다"며 이에 따라 "문학 박사학위를 가진 '엘리트 독자'조차 (정통문학과 같은) '현장의 소설'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 교수는 이어 "내면성의 문학과 리얼리즘의 근대소설 전통이 빈사 지경으로 독자를 잃어버린 데 반해 탈근대의 상황에서도 대중적 낭만주의는 자신의 형태를 변형해 유연하게 이어가고 있다"며 그 대표적인 예로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예로 들었다.

천 교수는 "이 작품이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평단의 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주류 비평이 가진 형식주의 지향성과 윤리적 둔감성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며 공지영의 인기와 평단의 냉대 사이의 거리는 바로 현재 한국문학과 독자들 사이의 거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소설이 국내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원초적 민족주의를 들이대는 일은 유치하다"며 오히려 이를 계기로 "'왜 한국소설을 읽어야하는가'라는 점을 깊이 생각해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통계로 본 소설 독자'라는 기고문을 통해 "소설에 대한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줄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소설 시장의 판매 현황을 볼 때 소설은 여전히 힘이 세다"고 주장했다.

백 연구원은 한국출판연구소가 작년 9월 한달 동안 국내 성인 남녀 1천명, 초ㆍ중ㆍ고 학생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6 국민독서실태' 조사를 꼼꼼하게 분석한 뒤 "청소년들의 소설 선호도는 4년 전과 거의 다를 바 없으며 성인독자층의 소설 선호도 조사에서도 소설은 보편적으로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장르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어 "출판시장 점유율 측면에서도 소설은 건실한 것으로 나타났고 문화콘텐츠산업의 기반으로서 소설의 범용성과 부가가치가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되고 있다"며 '소설의 위기'를 '한국소설의 위기'로 진단했다.

아울러 "판매량 상위권에 외국소설이 많다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한다는 나라에서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며 "일본 소설이 인기를 끄는 현상도 궁극적으로는 '일본'이 아니라 '소설'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는 징표"라고 설명했다.

백 연구원은 끝으로 "지금 단계는 소설의 엔터테인먼트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일종의 조정국면"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며 "이제 독자의 기대에 엇박자를 치는 한국 소설의 시장 응전력과 작가 양성 시스템을 자성해야한다"고 지적했다.

js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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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생각도 있고 저런 생각도 있어야겠지만 문제는 저런 논의들이 십년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른 게 없다는 거. 결국 '팔리는' 문학에 대한 진지한 점검과 변화에 대한 촉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련의 고스트라이터 논란과 신춘문예 당선자의 야설알바 고백이 위기의식을 한층 부추긴 걸 수도 있겠고.

공지영의 전작들이 잘 팔린 이유에 대해선 나름의 정황들에 근거해서 이해가 가나(페미니즘, 방송캠페인 등등)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어째서 시대와 공명할 수 있었는지는 저도 잘 모를 일입니다만. 암튼 '팔리는 문학'과 관련해서, 두 개의 영역을 돌아다녀봤습니다.

 

주말동안 판타지소설쪽을 좀 파고들어가봤는데, 소위 우리나라에서 양판소라 불리는 것들은 그 소비층에서조차도 혀를 찰 정도의 상태긴 합니다.... 온라인게임과 대여점이라는 전국민적인 일상에 기반을 확고하게 두게 되었고 그럭저럭 대중소설의 한 영역을 차지하게 된 그쪽 업계는 철저하게 편집의 방향성이 잡혀있더군요. 극소수의 작가군을 제외하면 수익구조가 오로지 대여점에서밖에 나지 않는 탓에 전국대여점주 연합인 오비디오와 같은 대여점 소비권에서의 입김이 엄청 쎄며(아예 반품게시판이 따로 있습니다), 그에 따른 노골적으로 패턴화된 캐릭터와 수사의 억제(성당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데엔 '장엄하다' 한마디면 됩니다), 그리고 공장과 맞먹는 제작속도(얼추 한 달에 네 권 정도?)가 공통된 특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보면 옛적의 양산형 무협소설들이 가지고 있던 딜레마 그대로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살펴보다보니 대중 지향의 글쓰시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하나 수확이 있긴 했습니다. 이건 도스또예쁘스끼적 금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바로 '묘사를 줄여라.' 이게 생각해보면 딱 초보작가들의 딜레마죠. 아 이 정도 썼는데 독자들은 이해할까, 과연 이정도로 독자에게 완벽하게 내 세계를 알릴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해봤자, 독자 입장에선 아 전나 기네 얼른 끝내지 뭐이렇게 줄줄이야 몰라 넘겨, 이런 쪽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친절한 독법으로 골아프면 넘겨읽어, 이랬지만요.

재밌게 읽었던 국내산 판타지소설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일단 [퇴마록]을 억지로 읽다가 세계편에서 결국 관둬버린 경험이 최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즈나이트]는 군대서 훈련 나갔을 때 야영지에서 15분에 한권씩 독파한 기억이 있고.... [드래곤라자]는 군병원에 있을 때 꽤 즐겁게 읽었었습니다. 제대로 된 작가 대접을 받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명인 전민희의 [룬의 아이들]은 읽다가 말았고. 그외엔 기억이 틔미하군요.

암튼 장르라든지 소재면에서도 그렇거니와, 소비층 또한 마찬가지로 지독하게 고착되었기에, 사실 우리나라에서 판타지소설이라고 이름 붙히는 것 자체가 대단히 제한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됐죠. 언젠가는 곪아터지겠지만, 어쩌면 그게 굉장히 오랜 시간 뒤일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판타지소설 소비의 주력이 온라인게임과 이어져있는 현실에서, 그래서 게임의 대리만족체인 기능만 가진 소설시장인 상태에서, 그쪽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엔 힘든 일이기 때문이죠. 적어도 이런 상황이 게임태생의 판타지소설만이 아닌 전체 판타지문학계 퀄리티의 점진적 축소지향을 지속시켜주는 역할을 어느 정도 담당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자면, 장르문학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상황의 타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귀여니 원작의 영화가 개봉이 좌초됐다는 얘기를 보게 됐습니다. 이건 한국 대중문학의 어떤 과거형이겠군요. 그러니 예전에 정성일이 귀여니 옹호론을 썼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 옹호론은 제게 있어선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을 텍스트로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습니다. 귀여니문학의 적자들은 지금은 연예인 팬덤의 팬픽 속으로 들어가버렸고, 그녀의 소비자들은 그녀보다는 좀 나은 일본작가들의 책을 선택하게 됐죠. 아마도 정성일은 귀여니를 읽어냄에 있어서 실수를 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만화와 대중가요, 수목드라마의 영역이며 소위 세대차적인 소비-패러디 패턴을 보여주는 흔한 양산형의 하나였건만 고전주의자인 정성일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되었든 귀여니의 문학은 세대의 대표가 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그녀에게 가해진 시기심 섞인 비판은 로또부자에게 가해지는 질투만큼이나 가혹한 것이었습니다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기 때문에 비판도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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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7-02-27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대중이 쓰면 대중 소설, 김진명이 일본어 교재 쓰면 진명 일본어, 이현세가 연구소를 세우면 현'세'연…

hallonin 2007-02-2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마 답글을 달기가 뭐해서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