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머릿 속에 계속 남는 영화들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프레스티지]다. 일단은 재밌다. 두시간이 넘어가는 상영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프레스티지]는 반전영화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는 반전을 착각하고픈 이들에게 바치는 재치있는 조롱이다.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한 수많은 샤말라니스트(반전주의자)들의 아우성은 사뿐히 무시할만 하다. 사실 반전이란 요소 자체가 미끼로 쓰인 영화기 때문에, 언제고저제고 반전 터질 때만을 기다리느니 진중하게 이 영화의 유쾌한 장난과 영화 곳곳에서 보여주는 세세한 사려깊음에 즐거워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작인 [메멘토]는 시간유희를 빼버리면 전형적인 필름느와르였고 [인썸니아]는 말그대로 정극스릴러였다. [프레스티지]는 흡사 그 두 작품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다. 교차되는 화자를 통해 제시되는 불완전한 기억과 그를 통한 속고속임은 [메멘토]를, 두 사람을 축으로 한 갈등과 끝에 다다르려 하는 브레이크 풀린 의지는 [인썸니아]가 떠오른다. 그를 바탕으로 반전의 재기발랄함 대신 인간의 욕망과 디지털 딜레마를 중후하게 파고들어간 [프레스티지]에서 내가 매혹된 부분은 두 부분이었다.

하나는 영화가 보여주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잔인한 풍경화다. [프레스티지]의 비밀은 이미 오프닝에서 나오는 노인의 설명, 보여주고, 숨기지만, 돌려보낸다 에서 끝나 있었다. 정말로 충격적인 것은 프레스티지가 실은 그리 대단치도 않은 트릭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매번 자신을 죽여야 했던 엔지어의 잔혹한 딜레마와 직면하는 순간이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보든과 엔지어가 서로에게 보여주는 주고받는 증오의 정서는 [인썸니아]의 노곤함 직전에 영원히 머무르는 시간대 같다.

두번째는 이 영화가 아날로그 시대를 배경으로 디지털적 환상극을 창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그러나 테슬라의 전설적인 일화들을 생각해보자면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원본과 복제의 딜레마라는, 거의 고전에 가깝게 된 문제 속에서 엔지어는 한계를 초월한다. 그 깨어진 한계란 거리의 한계이기도 했으며(그로 인해 극장이라는 가상공간은 엄청나게 확장되버린다) 인간적인 것의 한계이기도 했다. 누가 죽게 될지 모를 불안에서 계속 쇼를 진행해야 했던 엔지어의 마지막 말은 그 자신이 빠진 지옥도의 프로세스를 알려준다. 이미 돌아오지 않게 된 것에서, '프레스티지'의 법칙은 무시당한 것이었기에 이 게임의 패자는 정해져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룰을 깨버린 이에겐 관객의 비난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보드리야르가 극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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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연' 보드리야르 서거에 부쳐 
 
2007-03-08 오전 10:06:12     
 
 
  
 
10년 전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과 벨기에의 물리학자 장 브리크몽은 <지적 사기>라는 책을 통해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장 보드리야르, 쥘리야 크리스테바, 자크 라캉, 질 들뢰즈, 펠릭스 카타리 등이 집중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통칭되는 프랑스 철학은 겉치레와 수사, 현학을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지적인 사기라는 독설을 퍼부었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상대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철학의 개념을 오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프랑스 철학자들은 "과학의 단선적 객관성을 잣대로 인문학을 바라보려는 과학주의자들의 시각이야말로 또 다른 권위주의"라고 반박했다. 이렇게 해서 촉발된 것이 이른바 '과학전쟁'이다. 당시 소칼과 브리크몽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지식인의 비굴함과 나태는 우리시대의 올림픽 종목이 돼버렸다"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현대 프랑스 철학을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지난 3월 6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자크 라캉(81년 사망), 질 들뢰즈(95년 사망), 자크 데리다(2004년 사망)에 이어 현대 프랑스 철학의 또 하나의 큰 별이 진 것이다. 프랑스 최고권위의 일간지 르 몽드와 지식인들이 즐겨보는 리베라시옹은 3월 7일자 1면 톱기사로 보드리야르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보드리야르의 비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섹스, 언어, 기호, 상품, 전쟁 등 그 어떤 것도 이 사회학자의 역설적인 분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리베라시옹은 보드리야르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렸다.
 
1929년 7월 20일 랭스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했고 브레히트나 맑스의 번역자이기도 했던 보드리야르는 1966년 파리 10대학 낭테르의 강단에 서면서 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러 학위들을 고려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65년 사회학만이 유일하게 개방적인 학문이었다."사회학을 선택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박사논문이자 첫 번째 저작인 <사물의 체계(1968)>와 1970년에 출간한 <소비의 사회>는 그를 일약 대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현대인의 일상을 소비라는 측면에서 해부한 보드리야르는 현대인들이 물건의 본연의 기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세와 권위, 즉 기호를 소비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얻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에서는 독창적인 분석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실재가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뮐라시옹(Simulation)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시뮐라크르(Simulacre)'인데,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사와 복제에 의한 가상실재, 즉 시뮐라크르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라는 그의 독특한 분석과 이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흐름을 이끌었고 미디어와 예술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일상생활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81)의 제자로 초기에는 맑시즘을 신봉했으나 1973년 <생산의 거울>이라는 책을 통해 맑시즘과 결별하고 구조주의와 기호학에 관심을 쏟았으며 그 뒤 줄곧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회이론을 전개해 왔다. <상징적 교환과 죽음>(1976), <푸코 잊기>(1977),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 아래서>(1978), <유혹에 대하여>(1979),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 <차가운 기억들 1,2,3>(1987~95), <아메리카>(1986), <악의 투명성>(1990), <완전범죄>(1994), <이타성의 형태들>(1994) 등 50편에 이르는 저작을 남겼고 그의 책의 한국에서도 20여 권이 번역되었다.
 
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1991년 걸프전 당시에도 지성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걸프전이 한창일 때 그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사일이 정확히 투하돼 목표물이 파괴되는 장면은 실제 아주 무섭고 비참한 것이지만 안방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 속 가상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토모던 현실 속에서는 일상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모사된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 한국을 방한했던 보드리야르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제실험은 자연현실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시뮐라시옹의 극단적 사례"라고 주장했고, "문화와 예술, 행동양식에서 기호를 통한 현실의 재현을 가리켰던 근대의 시뮐라시옹과 달리 현대의 시뮐라시옹은 급격한 변화와 전이, 도약을 통해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가상현실로 넘어간다"고 설명하며 '극단적 현실 청산에 대한 두려운 전망'을 언급한 바 있다.
   
 
"소비는 일종의 신화이자 현대사회 스스로에 대한 표현이며 (…) 충만한 자기예언적인 담론이고 (…) 총체적인 해석체계이자 사회가 스스로를 극도로 향유하는 거울이며, 예견을 통해서 사회가 스스로 성찰하는 유토피아이다."
 
소비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통찰력을 담은 <소비의 사회>는 그의 학문적 입지를 단숨에 다져놓았다. 이 책의 서문에서 리딩대학교 토크빌연구소 메이어 교수는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뒤르카임의 <사회분업론>,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과 같은 책의 대열에 자리 잡고 있다"고 격찬했다. 모더니티에 대한 분석, 현대사회의 작동기제와 이면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우리시대 지성의 폭을 크게 넓혀놓았고, 무한한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열었다.
 
'참여하지 않는 지식인', '유토피아적 망상가'라는 그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장 보드리야르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통찰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류의 지적 자산을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간 빈 공간에 그가 우려한 바와 같이 지식인의 무기력과 나태함이 자리잡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때문에 그가 떠난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최연구/기획위원·프랑스 마르느 라 발레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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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이 5년만 더 참았으면, 저런 말은 못했을 듯 싶다. 단순히 [매트릭스]와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된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미디어와 기술에 대한 가장 예리한 통찰자로서 그는 일찌감치 현대인들의 일상과 가장 결부되는 화두의 제시자였으며 그렇기에 스스로가 자명한 현대인이었고 끊임없이 '포스트모던'(이 단어의 장난질 같은 속성은 잠시 제쳐두자)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통 속에 든 뇌인 이상, 그가 세상에 내놓은 목소리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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