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타셔. 여기서 조금 밖에 안 머물 거여.”
“아이, 쫌만 기다려주라고요. 아저씨!”
“... 누가 아저씨래.”
‘타다닥.’
아직 몸에 익숙지 않은 새 교복을 입은 그 여학생은 입속엔 텁텁한 땅콩 샌드, 한손엔 우유를 들고 나의 조그마한 공간에 들어온다.
나는 차장, 너는 중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풋풋한 여학생.
여기는 나의 버스다.
“아저씨, 세움 중학교 가죠?”
“가지. 이 버스는 노선이 따로 필요 없는 버스여.”
“아. 다행이다.”
세움 중학교는 여기서 30분 거리.
멀다면 멀고, 짧다면 짧은 거리다.
“저기 아저씨, 돈 안 받아요?”
여학생이 천 이백 원을 나에게 내밀었다.
“돈 필요 없다. 가져가라.”
“돈이 필요 없어요??”
“어.”
“그럼 아저씨는 어떻게 사는데요? 돈도 안 벌면서.”
“그냥 살아.”
“..... 이상한 아저씨네.”
여학생은 순식간에 땅콩 샌드와 우유를 다 먹고,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서 음악을 듣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소녀세상의 ‘타이거 하트’ 요즘은 저 그룹 이름이면 남녀노소 없이 아주 좋아 죽는다.
“............”
“............”
시간만이 우리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그렇게 해서 몇 분 지났을까.
“...... 아저씨.”
여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 생각해보니까 여기 이상해.”
“왜?”
“여기 사람이 원래 이렇게 없어요?”
“내 버스 인기 없다.”
“아니, 버스는 사람들에게 꽤 유용한 교통수단이잖아요? 이렇게 손님이 없을 리가 없는데요.”
“애들은 그런 거 몰라도 돼.”
“왜요? 혹시 아저씨가 나를 납치하는 걸지도 모르잖아요.”
“나 납치 같은 거 안 한다.”
그리고 나는 여학생을 바라본다. 진실한 눈빛으로.
“믿어도 돼요?”
“응.”
여학생은 한숨을 내 쉰다.
“알았어요. 믿을께요.”
“...... 고맙다. 날 믿어줘서.”
납치 같은 것은 하지도 않는다.
그야 나는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살아있는 존재니까.
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드나드는 버스의 차장이다.
“그래도 의심스러운 게 너무 많아.”
여학생이 입을 내민다.
“예를 들면 뭐?”
“음.... 노선이 없다는 거?”
“아. 뭐. 여기는 특별한 버스니까.”
“그렇구나.”
여학생은 순순히 납득한다. 아마 여기가 돈도 안 받는 유별난 버스니까 그 외에 이상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나보다. 애초부터 이상한 버스였어. 그러니까 노선이 없을 수도 있지. 여학생은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 짓는다.
“저어, 아저씨.”
“왜.”
“사실은요. 나 고민 있어요.”
“뭔 고민.”
여학생은 나에게 말하려다가 그만 두고 그냥 웃어버린다.
“... 하하. 사실은 고민 없어요.”
“거짓말하고 있네.”
나는 앞 거울에 비친 여학생을 보며 말했다. 여학생은 처음으로 본 나의 무서운 눈빛이 무서운지 고개를 떨궜다.
“그런 눈빛 하지 말아요.”
“하하, 미안. 그렇지만 너 숨기고 있는 거 알아.”
“왠지 말하기가 싫어지,”
“정 그럼 말하지 말든가.”
일부러 소리에 힘을 줘서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여학생은 나를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이래. 이 사람 정말 기분 나쁘게 스리.
“........”
“지금 말하지 않으면 기회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솨아아- 퍼지는 바람소리. 어딘가로 달려가는 소방차 소리. 그 외 온갖 자연의 소리가 버스 안에 뛰어들었다.
“기분 나빠. 아저씨.”
여학생은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겨우 참고 있다.
“미안.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별로 악의는 없었어.”
“그래도 나빠.”
여학생은 나를 얄밉다는 듯 째려보았다 어쩔 수 없어. 이게 천성적인 내 성질이라.
“있잖아요. 나쁜 아저씨.”
“왜.”
“고민.. 말해도 돼요? 지금 말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 같아.”
“말해봐. 잘 들어줄게.”
여학생이 그 말을 듣자 여태까지 참아왔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것 같다. 갑자기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거울을 보니 여학생이 다리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 거리고 있었다. 홀로서기 하는 아기 새의 울음이 온 버스 안을 메웠다. 나는 그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야야, 고민도 말하기 전에 울어버리면 어쩌자고 그러냐.
얼마 후 여학생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야, 너 고민 말하기도 전에 울어버리면 어쩌냐.”
“...... 왠지 죄송하네요. 내가 말한다고 해놓고.”
“그런 거 죄송 안 해도 돼.”
“아, 네!”
여학생은 눈물을 쓱, 닦아내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은 저 이 도시 사람 아니에요.”
“그래?”
“엄마아빠가 절 여기 기숙 중학교로 보냈어요. 사실 전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여기로 와 버렸어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그랬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 그래도 이건 엄마 아빠가 날 위해서 내린 거니까.. 이게 아마 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거예요.”
으구, 착한 것.
“그럼 너는 어디서 왔는데?”
“이 도시에서 쭉 남쪽으로 가면 보이는 곳에서 왔어요.”
“그기는 시설이 좋아?”
“여기보다는 안 좋아요. 솔직히 까놓으면 후졌죠. 영화관도 없어, 유명한 프랜차이즈도 없어, 우리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문화시설이라는 것이 있기나 해.”
그리고 여학생은 쿡쿡 웃었다.
“그래도 저에게는 소중한 곳이었어요. 엄마아빠가 있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귀여운 남동생도 있고, 만날 때마다 저랑 같이 신나게 노는 사촌들하고 친구들도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그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밝게 빛났죠.”
“그랴?”
“네. 정말로, 정말로 소중한 곳이었어요.”
“그렇구나.”
여학생은 몇 마디 되지도 않은 나의 말을 곱씹는 듯 했다.
“아저씨.”
“왜.”
“사실요... 저 이 도시에 오는 게 두려웠어요. 그리고 지금도, 너무나 두려워요.”
“왜 그러는데?”
여학생이 두려워하는 이유야 알지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나 처음이잖아요, 여기 오는 거. 엄마아빠 없이 혼자... 그것도 3년! 물론 기숙사 방에서 쭉 나 혼자 자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여학생은 애써 강한 척을 하고 있었다.
“방학 때 그 도시에 갈 거니까 니가 조금만 참아라고 하면 뭐, 할 말은 없어요. 그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 방학이라는 것이 겨우 한 달이라고요. 여름, 겨울, 봄까지 합쳐서 12개월 중에 2개월 반!! 그 나머지 달들을 나 혼자서 어떻게 버티냐고요!”
여학생은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외침이 버스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약했다.
“얘야, 내가 네 사정을 잘 모르지만.”
“..... 네.”
“여기서는 더 이상 참지 마라.”
여학생은 내 말을 듣고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얼굴이 빨개져서는 또 다시 다리에 얼굴을 묻고는 울었다. 이번엔 전보다 더 큰 울음 소리였다.
으허허허헝... 싫어! 싫어! 싫다구! 떨어지기 싫어! 외로워! 안 가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가기 싫다고!! 명서야, 서연아, 서영아! 엄마아빠...!!! 보고 싶어!!! 가지마! 여학생의 눈에는 괴로운 감정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걸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로 됐겠지. 내가 그녀에게 더 이상 해 줄 수 없는 것은 없다. 다음은 그녀가 스스로 일어설 차례다.
여학생이 울기를 그치고 가로수와 건물을 각각 세 개씩 통과하자 대리석 교문이 보였다. 교문의 왼쪽에는 멋스럽게 ‘세움 중학교’라고 적혀진 명패가 있었다.
“자, 다 왔다.”
“벌써요? 시간 빨리 가네.”
“빨리 현실로 가. 너는 계속 살아야지.”
“..... 아저씨 무슨 소리에요?”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가.”
“아, 잠깐만요. 아저.. 씨.”
“그냥 가!!”
나는 여학생을 밀어내듯이 소리쳤다. 여학생은 그 여파로 화들짝 놀랐는지, 서둘러 버스를 내렸다. 치익-하고 버스의 문이 닫히고 또 다시 나는 혼자가 되어 버스를 운전한다.
*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들으면서, 세움 중학교에 처음으로 등교하듯이 나는 학교로 간다.
분명 나는 걸어서 등교를 했다. 내 이마에 흐르는 땀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30분을 걸어서 그 만큼의 피로를 느껴야할 몸이 평소보다 가볍다. 이 상태라면 평소에는 못 할 등교 직후 운동장 5바퀴 돌기도 할 수 있을 법하다.
더군다나 등교 전 머릿속에 쌓여있던 고민거리가 어느새 싹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이상하다. 나 기숙사에서 일어난 후엔 울고 싶은데도 울지를 못해서 정말 기분 나빴는데. 도대체 내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뭐, 지금은 상관없어. 어차피 또 내 기분이 지 멋대로 바뀐 거겠지. 열네 살 꽃다운 소녀의 마음은 변덕쟁이니까!
나는 오늘 있었던 신기한 현상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폰에서 반복재생 되는 타이거 하트를 들으면서 교실로 들어갔다.
*
이별은, 남겨진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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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 행운을 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