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더 12. 보이더(3)
검은 날개가 일으킨 폭발로 오른쪽 눈이 상처입고 몸 여기저기 입은 상처에 또 다른 상처가 덧 씌워진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괴로워. 하지 마. 험한 산곡 가운데에 튀어나와있는 나뭇가지에 걸려 겨우 버티고 있는 가엾은 의식을 달래며, 나는 눈앞이 흐릿한 채로 스마냐의 여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왕은 이런 내가 놀라운 듯이 한쪽 밖에 없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잠시 동안 여왕이 싱긋 웃어 보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이전에 날리던 작은 깃털보다 조금 더 큰 깃털을 만들어선 나에게 보여줬다.
“안 돼. 이제 그만 해! 그만 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를 지키려는 듯이 끌어안았다.
“어차피 어르신 두 분은 여기서 죽으시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 데? 순순히 어르신 말씀을 들어야지 왜 자기 혼자 그걸 거역해가지고 험한 꼴을 당하는 건지, 난 잘 모르겠네~”
“입 닥쳐. 넌 어차피 몰라도 돼.”
목소리가 떨려왔다.
“호오... 이 별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마음만 먹으면 너와 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조리 죽일 수 있는 나에게 대드는 거야? 처음 볼 때부터 넌 맘에 들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더욱 더 맘에 드는 걸?”
“닥쳐! 이 미친 여자!”
그녀는 나의 거친 말엔 동요하지 않는 듯, 그 비릿한 혀를 날름거렸다.
“너, 이름은?”
“...... 내가 너 따위에게 순순히 이름을 가르쳐 줄 착한 녀석으로 보였나 보지?”
“당연히 아뉘지~ 보이더.”
내, 이름을... 안다?? 나는 그녀가 내 이름을 아는 것에 놀라서는 그녀의 눈동자를 무심코 봐버렸다.
“아, 참고로 나는 스마냐의 여왕, 루어 퀸비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루어 퀸비라고 이름을 밝힌 스마냐의 여왕은 나의 눈동자에 네이비 색의 눈동자를 맞췄다. 갑자기눈앞에 있는 여왕이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파괴신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때까지 저 무시무시한 사람과 싸워왔단 말인가.
동공이 커졌고 내 온몸이 자동적으로 떨려왔다. 여왕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있던 나의 눈앞으로 여왕이 날린 마지막 검은 깃털이 보였다.
아. 난.........
“안 돼!!”
갑자기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둘. 언제나 봐왔던 길고 새하얀 실험복. 하얀 빛의 머리카락. 그 앞에 펼쳐지는 아름답고도 섬뜩한 불의 꽃.
천천히 쓰러지는 두 개의 그림자엔 피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넋 나간 사람처럼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성 잃은 짐승처럼 날뛰며 두 사람의 육체를 좀먹어가는 피, 붉은 강. 현실보다도 잔혹한 꿈을 꾸는 아이처럼 나는 그 곳에 겨우 존재하고 있었다.
눈물 따위는 나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나의 의식은 어딘가로 날아가고 나는 그저 기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자동차가 운전자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오토 버튼이 켜진 것 같이, 컴퓨터가 바이러스를 자동으로 없애고 상태를 원래대로 돌리는 것 같이.
필사적으로 난 루어 퀸비에게서 도망쳐 워먼덱스가 들어있는 창고로 도망쳤다. 웬일인지 루어 퀸비가 나를 공격해오지 않았다. 난 뒤를 돌아보질 않았지만 루어 퀸비가 이거 놔라면서 소리친 것으로 보았을 때, 아마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녀의 발목을 잡은 거겠지.
“살아라! 보이더!!! 슬퍼도 살아라! 끈질기게 살아남아라!”
피 끓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워먼덱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야! 기다려! 루어가 말했다. 안 들린다. 듣지 않을 거다. 안 들린다. 듣지 않는다.
워먼덱스의 문을 닫았다. 워먼덱스는 자기의 태내에 어리숙한 아이 한 명이 잉태되었다는 것을 알고서는 굉음을 내며 지구로 날아갔다.
‘조금만 기다려! 널 찾아서 꼭 내 옆에 두고 말테니까! 이쁜이~ 그때까지 넌 잘 살아야해. 정말 할아버님 말씀대로 꼭 끈질기게 살아야 돼?’
루어의 목소리다.
듣지 않는다. 넌 나에게 투명 인간이다.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최악의 미친 여자다.
워먼덱스에 준비된 매트릭스에 몸을 던졌다. 여기는 나의 방이다. 연구소에 마련된 포근한 나의 방. 나는 여느 때처럼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연구를 도와주고 바깥에 좀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았을 뿐이다. 너무 놀아서 그런 지, 이렇게 침대에 몸을 던지자마자 눈이 무거운 것일 뿐이다. 그래. 오늘은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날이었다.
그렇게 눈을 감자 그제야 내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역시, 이런 게........ 평범할 리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