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무원 남자

 

 

 

 

 


 "어디 가쇼?"
 "카페 리스타요. 근데 그 카페까지 가나요?"
 남자는 머리를 긁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갑디다."
 "네? 거기까지 정말 가져요?"
 "그럼."
 네가 마음을 잘 먹는다면 말이야.
 남자는 이 버스에 의문을 표하며 버스에 올라타 제일 뒷자리에 앉았다. 남자의 손에는 어떤 그림책이 들려있었다.
 흠, 카페 리스타인가. 꽤 시간이 많이 걸리겠는데?

 

 

 "기사님. 돈 받으세요."
 "안 받아."
 "에.. 기사님 그럼 뭐 먹고 사세요?"
 "걍 굶고 산다."
 "기사님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요."


 남자는 책에서 눈길을 돌리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자세히 보니 남자의 책표지에는 공주와 왕자가 그려져 있었다.
 "많이들 그래."

 "근데요. 그런 것 치곤 살 많이 찌셨네요.“
 남자는 씩 웃었다.
 '하아.'
 "그 발언은 자네가 처음일세."
 "그래요? 하하~"

 남자는 또 웃었다.
 남자는 공허했다.

 

 

 

 

 그건 그렇고, 왜 내 버스엔 이런 녀석들만 오는건데.
 왜 내 버스는 이런 녀석들 전용 버스가 된거지.
 슬프잖아.

 

 


 그 후로 남자는 운전하는 나에게 한마디 말도 걸지 않고 그 그림책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어떠한 말도 섞이지 않은 이 버스는 너무나 조용해서 한기가 돌았고, 버스는 달리고 있는 동안 점점 녹이 슬어갔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사람의 온갖 슬픔을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우중충한 나무의 색깔. 버스에서 내려 발을 내딛으면 금방이라도 어둠속으로 꺼질 것 같은 언덕. 여기에는 해와 달도 비치지 않았다. 그저 온갖 불나방들이 들러붙은 난쟁이 가로등만이 희미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 풍경. 정말로 이 풍경을 품고 남자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뭐. 아무 말도 입에 내지 않는 것도 꽤 이해가 가구마. 그는 이 풍경을 끌어안고 살기에도 벅찬 거겠지.

 외로움 많은 버스 기사와 겨우 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남자는 서로 말이 없다. 그저 자기의 일에 충실할 뿐이다. 나는 운전하고 그는 책을 읽고, 나는 계속 운전하고, 그는 책을 계속 읽고.
 뭐, 나중에 조만간 화학반응이 나타나겠지. 일시적이긴 하지만.

 

 

 

 

 ..... 한 1년 쯤 지난 것 같다.

 남자는 아직도 제일 뒤쪽 자리에 앉아서 내용이 정해진 그림책을 계속 반복해 읽기만 한다.
 여전히 나도 운전 중이다.
 버스 밖의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카페 리스타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기사님?”
 남자의 목소리를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왜?”
 “배 안고프세요?”
 힘없이 묻는다.


 “난 괜찮아. 내 걱정하지 말고 니 걱정이나 하셔.”
 “아하하.”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기사님. 난 괜찮으니까.”
 “그려?”
 “네.”
 “그거 다행이네.”
 영혼 없는 소리였다.

 

 

 하아, 정말 오래 죽치고 앉아있는 손놈이네. 빨리 내가 카페 리스타에 도착하게 해주라고!
 물론 나에게는 널 먼저 일으킬 권리 따위는 없지만.(이렇게 열병 걸려서 오는 손님이 제일 가슴 아픈 손님 중에 하나다.)
 신이 아니니까.

 

 

 남자는 이윽고 나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읽고 있던 책에 다시 집중한다. 하지만 저번만큼 잘 집중이 되지 않는 지 책을 눈 가까이 당겨서 보고 있다.
 나는 씨익 웃었다. 이제야 기미가 보인 것 같았다.
 드디어 때가 왔다는 뜻이다.
 떡밥을 던져볼까.

 

 

 “이봐.”
 “왜요?”
 “네 얘기 좀 들려주지 않을래?”
 “내 얘기요?”
 “어.”
 일부러 똥 씹은 표정을 하면서 남자에게 말했다.


 “너 여기서 죽치고 앉아있을 셈이냐.”
 “에? 전 딱히..”

 

 

 어쭈?

 

 

 “너 여기 온 지 일년이다.”
 “.... 그래요?”
 남자는 슬픈 듯이 말한다.

 

 “오늘이 딱 여기 온 지 일주일이라 생각했는데.”

 “..... 시간 개념 어따 팔아먹은 거냐?”
 “싫어요, 지금은. 건들이기 싫어요.”

 남자는 말했다.

 

 “알았어. 네 얘기는 듣지 않을게.”
 “... 그거 다행이네요.”
 남자의 목소리는 꽤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럼 네 얘기 말고, 니 여자 친구 얘기 좀 들려줄래?”
 “네? 제 여자 친구요?”
 거울에 남자의 눈이 동그래진 것을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는 웃었다.
 “없어요. 지금은.”

 “전 여자 친구 말이야.”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 전 여자 친구요?”
 “응.”

 남자의 목소리는 점차 어두워져 갔다.

 

 

 “너와 그녀는 어떻게 만났지?”
 “......”

 

 “아. 그 표정은 네 상처를 건드렸단 소리? 미안.”
 “사과가 너무 형편없네요. 기사님.”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지금은 하고 싶지 않아요.”

 “.. 하아. 내가 듣고 싶어서 하는 말이야. 1년이나 여기 있는데 오디오도 없고, 책도 없고, 내가 다 심심해.”

 “아. 그러세요? 그런데 남의 전 여자 친구를 굳이 왜.”

 

 “나 여자에게 관심 많으니까.”

 


 “아, 네... 그러세요?”
 남자는 입을 다물고 나를 노려봤다. 완전히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뭐, 할 수 없죠.”
 하지만 이내 그 표정을 바꾸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걔와는.... 대학생 때 카페 리스타에서 처음 미팅으로 만났어요. 저는 사진과, 그 애는 영어교육과.”
 “아. 그래?”
 “네.”

 

 남자는 나의 환해진 목소리에 웃음을 지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 끌렸어요. 그 미팅이 끝나고도 개인적으로 연락처를 건네고 같이 예쁜 사진 같은 것도 같이 나누고, 만약 둘이 시간이 있다면 대학생활 상담 같은 것도 했었어요. 저의 모난 부분을 잘 보듬어 주는 그녀가 좋아서 제가 먼저 고백해 그렇게 커플이 됐어요.”
 “그래?”
 남자는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역시 남자가 흥분하기에는 여자 얘기가 최고다.
 ... 특별한 인연의 여자.

 

 

 “우리는 서로 취미도 같았어요!! 저는 뭐 사진과고, 어렸을 때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어요. 그 애도 사진을 좋아하고 예쁜 구도나 포즈 같은 걸 잘 알고 있더라고요! 음, 걔가 그림도 엄청 잘 그렸어요. 예전에 걔가 저를 그려준 적이 있는데 정말 저랑 똑같이 그렸다니까요!”
 “.... 그렇구나.”
 “우리는 싸우는 일도 있었지만 그렇게 길게 이어지진 않았어요. 음, 대부분은 제가 잘못해서 싸우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화를 내다가도... 나를 이해해 줬어요.”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 그렇게 5년을 사랑했어요. 아니 저는 지금도.”
 남자는 자신의 추억이 담긴 그림책을 꼭 쥐었다. 그녀와의 추억이 듬뿍 담긴 앨범을. 견디기 힘든 건지, 남자는 말을 할수록 표정이 일그러져 갔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그녀가..”

 “그만.”

 그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리하는 건 아까 그 이야기로 충분해.”

 

 

 “..... 그래요? 기사님이 먼저 시작하자고 해놓고서는. 병 주고 약 주고에요?”

 “그건 조금 미안하다만.”

 남자는 나의 쓴 웃음에 자기도 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기사님과 이야기 하는 동안에는 그녀의 이야기를 해도 꽤 즐겁더라고요. 사실 더 빨리 말할 걸, 이라고 지금 후회하고 있어요.”

 


 “네 마음의 준비가 다 돼야지 그것도 가능해. 뭐, 나야 기다릴 수밖에 없잖아.. 난 신이 아니거든.”

 그저 너의 슬픔을 같이 맛볼 수밖에 없지.

 남자는 웃었다. 여기 온 이후로 아주 활짝. 그 새벽 일출 같은 웃음을 시작으로 이제야 버스 밖의 철옹성 같은 슬픈 밤거리가 밝아왔다.


 “어이, 너.”
 “...... 네.”
 “이제야 카페 리스타가 있는 거리에 도착했어.”
 “........”

 “준비됐어? 앞에 한번 보라고.”
 “... 네.”
 남자는 쑥스러운 듯 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봐.”
 “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더 이상 앨범을 보지 않고 밝아진 자신의 마음 속 풍경을 보고 있었다. 아까보다는 좀 더 나아진 자신의 모습. 그 자체를.
 아득히 저 멀리서 카페 리스타의 파릇파릇한 풀색 차양이 보인다.


 “다 왔다. 이제 가봐.”
 “네!”
 남자는 성큼 성큼 제일 뒷자리에서 걸어 나와 카페 리스타 앞에 있는 표지판 앞에 섰다. 그리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빨리 가라. 빨리. 너는 열심히 살아야지. 아직 넌 젊어.
 어디 한번 너만의 색깔로 하루하루를 덧칠해봐.

 

 “가라.”
 나는 외쳤다.

 “네~~ 다시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남자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 여기 안 오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좋지만, 뭐 네가 방황한다면 받아줄 의향은 있어.

 


 잘 가.
 그리고 이 버스에서 다시는 널 볼 일이 없길.

 

 

 문을 닫고 이별 버스는 출발했다. 한번 녹슬었던 버스는, 그런 적이 없었던 듯이 새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

 

 

 

 


 이별은, 남겨진 자의 몫이다.

 

 

 

 


----

 

차장 : 리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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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리 타셔. 여기서 조금 밖에 안 머물 거여.”
 “아이, 쫌만 기다려주라고요. 아저씨!”
 “... 누가 아저씨래.”
 ‘타다닥.’
 아직 몸에 익숙지 않은 새 교복을 입은 그 여학생은 입속엔 텁텁한 땅콩 샌드, 한손엔 우유를 들고 나의 조그마한 공간에 들어온다.
 나는 차장, 너는 중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풋풋한 여학생.
 여기는 나의 버스다. 


 

 “아저씨, 세움 중학교 가죠?”
 “가지. 이 버스는 노선이 따로 필요 없는 버스여.”
 “아. 다행이다.”
 세움 중학교는 여기서 30분 거리.
 멀다면 멀고, 짧다면 짧은 거리다. 


 

 “저기 아저씨, 돈 안 받아요?”
 여학생이 천 이백 원을 나에게 내밀었다.
 “돈 필요 없다. 가져가라.”
 “돈이 필요 없어요??”
 “어.”
 “그럼 아저씨는 어떻게 사는데요? 돈도 안 벌면서.”
 “그냥 살아.”
 “..... 이상한 아저씨네.”
 여학생은 순식간에 땅콩 샌드와 우유를 다 먹고, 핸드폰과 이어폰을 꺼내서 음악을 듣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소녀세상의 ‘타이거 하트’ 요즘은 저 그룹 이름이면 남녀노소 없이 아주 좋아 죽는다. 


 

 “............”
 “............”
 시간만이 우리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그렇게 해서 몇 분 지났을까. 

 “...... 아저씨.”
 여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왜.”
 “.. 생각해보니까 여기 이상해.”
 “왜?”
 “여기 사람이 원래 이렇게 없어요?”
 “내 버스 인기 없다.”
 “아니, 버스는 사람들에게 꽤 유용한 교통수단이잖아요? 이렇게 손님이 없을 리가 없는데요.”
 “애들은 그런 거 몰라도 돼.”
 “왜요? 혹시 아저씨가 나를 납치하는 걸지도 모르잖아요.” 

 “나 납치 같은 거 안 한다.”
 그리고 나는 여학생을 바라본다. 진실한 눈빛으로.
 “믿어도 돼요?”
 “응.”
 여학생은 한숨을 내 쉰다.
 “알았어요. 믿을께요.”
 “...... 고맙다. 날 믿어줘서.”

 납치 같은 것은 하지도 않는다.
 그야 나는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살아있는 존재니까. 

 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드나드는 버스의 차장이다.


 

 “그래도 의심스러운 게 너무 많아.”
 여학생이 입을 내민다.
 “예를 들면 뭐?”
 “음.... 노선이 없다는 거?”
 “아. 뭐. 여기는 특별한 버스니까.”
 “그렇구나.”
 여학생은 순순히 납득한다. 아마 여기가 돈도 안 받는 유별난 버스니까 그 외에 이상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나보다. 애초부터 이상한 버스였어. 그러니까 노선이 없을 수도 있지. 여학생은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 짓는다.


 

 “저어, 아저씨.”
 “왜.”
 “사실은요. 나 고민 있어요.”
 “뭔 고민.”
 여학생은 나에게 말하려다가 그만 두고 그냥 웃어버린다.
 “... 하하. 사실은 고민 없어요.”
 “거짓말하고 있네.”

 나는 앞 거울에 비친 여학생을 보며 말했다. 여학생은 처음으로 본 나의 무서운 눈빛이 무서운지 고개를 떨궜다. 


 

 “그런 눈빛 하지 말아요.”
 “하하, 미안. 그렇지만 너 숨기고 있는 거 알아.”
 “왠지 말하기가 싫어지,”
 “정 그럼 말하지 말든가.”
 일부러 소리에 힘을 줘서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여학생은 나를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이래. 이 사람 정말 기분 나쁘게 스리.
 “........”
 “지금 말하지 않으면 기회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솨아아- 퍼지는 바람소리. 어딘가로 달려가는 소방차 소리. 그 외 온갖 자연의 소리가 버스 안에 뛰어들었다. 


 “기분 나빠. 아저씨.”
 여학생은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겨우 참고 있다.
 “미안.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별로 악의는 없었어.”
 “그래도 나빠.” 

 여학생은 나를 얄밉다는 듯 째려보았다 어쩔 수 없어. 이게 천성적인 내 성질이라. 


 “있잖아요. 나쁜 아저씨.”
 “왜.”
 “고민.. 말해도 돼요? 지금 말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거 같아.”
 “말해봐. 잘 들어줄게.” 


 

 여학생이 그 말을 듣자 여태까지 참아왔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것 같다. 갑자기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거울을 보니 여학생이 다리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 거리고 있었다. 홀로서기 하는 아기 새의 울음이 온 버스 안을 메웠다. 나는 그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야야, 고민도 말하기 전에 울어버리면 어쩌자고 그러냐. 

 얼마 후 여학생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야, 너 고민 말하기도 전에 울어버리면 어쩌냐.”
 “...... 왠지 죄송하네요. 내가 말한다고 해놓고.”
 “그런 거 죄송 안 해도 돼.”
 “아, 네!”
 여학생은 눈물을 쓱, 닦아내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은 저 이 도시 사람 아니에요.”
 “그래?”
 “엄마아빠가 절 여기 기숙 중학교로 보냈어요. 사실 전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었는데, 어쩔 수 없이 여기로 와 버렸어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 그랬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 그래도 이건 엄마 아빠가 날 위해서 내린 거니까.. 이게 아마 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거예요.”
 으구, 착한 것. 

 “그럼 너는 어디서 왔는데?”
 “이 도시에서 쭉 남쪽으로 가면 보이는 곳에서 왔어요.”
 “그기는 시설이 좋아?”
 “여기보다는 안 좋아요. 솔직히 까놓으면 후졌죠. 영화관도 없어, 유명한 프랜차이즈도 없어, 우리들이 신나게 놀 수 있는 문화시설이라는 것이 있기나 해.”
 그리고 여학생은 쿡쿡 웃었다. 

 “그래도 저에게는 소중한 곳이었어요. 엄마아빠가 있고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귀여운 남동생도 있고, 만날 때마다 저랑 같이 신나게 노는 사촌들하고 친구들도 그곳에 있었으니까요. 그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밝게 빛났죠.”
 “그랴?”
 “네. 정말로, 정말로 소중한 곳이었어요.”

 “그렇구나.”
 여학생은 몇 마디 되지도 않은 나의 말을 곱씹는 듯 했다. 

 “아저씨.”
 “왜.”
 “사실요... 저 이 도시에 오는 게 두려웠어요. 그리고 지금도, 너무나 두려워요.”
 “왜 그러는데?”
 여학생이 두려워하는 이유야 알지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나 처음이잖아요, 여기 오는 거. 엄마아빠 없이 혼자... 그것도 3년! 물론 기숙사 방에서 쭉 나 혼자 자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여학생은 애써 강한 척을 하고 있었다. 


 

 “방학 때 그 도시에 갈 거니까 니가 조금만 참아라고 하면 뭐, 할 말은 없어요. 그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 방학이라는 것이 겨우 한 달이라고요. 여름, 겨울, 봄까지 합쳐서 12개월 중에 2개월 반!! 그 나머지 달들을 나 혼자서 어떻게 버티냐고요!”
 여학생은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외침이 버스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약했다. 


 

 “얘야, 내가 네 사정을 잘 모르지만.”
 “..... 네.”
 “여기서는 더 이상 참지 마라.”
 여학생은 내 말을 듣고는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얼굴이 빨개져서는 또 다시 다리에 얼굴을 묻고는 울었다. 이번엔 전보다 더 큰 울음 소리였다.
 으허허허헝... 싫어! 싫어! 싫다구! 떨어지기 싫어! 외로워! 안 가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가기 싫다고!! 명서야, 서연아, 서영아! 엄마아빠...!!! 보고 싶어!!! 가지마! 여학생의 눈에는 괴로운 감정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걸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그걸로 됐겠지. 내가 그녀에게 더 이상 해 줄 수 없는 것은 없다. 다음은 그녀가 스스로 일어설 차례다. 

 여학생이 울기를 그치고 가로수와 건물을 각각 세 개씩 통과하자 대리석 교문이 보였다. 교문의 왼쪽에는 멋스럽게 ‘세움 중학교’라고 적혀진 명패가 있었다.
 “자, 다 왔다.”
 “벌써요? 시간 빨리 가네.”
 “빨리 현실로 가. 너는 계속 살아야지.”
 “..... 아저씨 무슨 소리에요?”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가.”
 “아, 잠깐만요. 아저.. 씨.”
 “그냥 가!!”
 나는 여학생을 밀어내듯이 소리쳤다. 여학생은 그 여파로 화들짝 놀랐는지, 서둘러 버스를 내렸다. 치익-하고 버스의 문이 닫히고 또 다시 나는 혼자가 되어 버스를 운전한다.



 



*




 이어폰을 꼽고 노래를 들으면서, 세움 중학교에 처음으로 등교하듯이 나는 학교로 간다.
 분명 나는 걸어서 등교를 했다. 내 이마에 흐르는 땀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30분을 걸어서 그 만큼의 피로를 느껴야할 몸이 평소보다 가볍다. 이 상태라면 평소에는 못 할 등교 직후 운동장 5바퀴 돌기도 할 수 있을 법하다.
 더군다나 등교 전 머릿속에 쌓여있던 고민거리가 어느새 싹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이상하다. 나 기숙사에서 일어난 후엔 울고 싶은데도 울지를 못해서 정말 기분 나빴는데. 도대체 내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뭐, 지금은 상관없어. 어차피 또 내 기분이 지 멋대로 바뀐 거겠지. 열네 살 꽃다운 소녀의 마음은 변덕쟁이니까!
 나는 오늘 있었던 신기한 현상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폰에서 반복재생 되는 타이거 하트를 들으면서 교실로 들어갔다.



 


*

 


 이별은, 남겨진 자의 몫이다.




 


-




차장 : 행운을 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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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언제나 남겨진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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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에 대하여>

운행 시간 : 마음 내키는 때. 천천히. 그러나 너무 느리지는 않게

<이별 버스에 대하여>

차장이랑 승객이랑 천천히 이야기하는 소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
진부한 이야기. 하지만 재미가 있을지도..

<차장에 대하여>

인간이 생각할 때부터 운행을 시작해온 베테랑 운전사
사고 걱정은 일단 접어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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