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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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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분다
별볼 일 없는 태풍이 분다
조금만 있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태풍

 

 

날려 올라가 들려 올라가
나라는 존재가 통째로
주변에 붙잡을 것도 하나도 없어
벽도, 기둥도
하다못해 바닷 바람에 힘없이 날릴 지푸라기도
나의 세계엔 아무것도,

 

 

이 태풍이 끝나면 나는 어디에서 눈을 뜰까
나는 내가 원래 있었던 곳에서 눈을 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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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게 드세요

From. 레스토랑 셰디 총 주방장
비스무리 셰디 바르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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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더4. 구경(1)

 

 

 


 난 너를 사랑해! 단지 그뿐야. 근데 이제 와서 헤어진다니 무슨 소리야? 시끄러. 넌 날 잘 모르잖아! 나랑 만나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적이 있어? 너는 네 입맛에 맞는 나를 사랑한 것뿐이잖아. 날 인정해주지 않았잖아.

 만화책 종이 냄새가 내 코끝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종이 냄새 자욱을 따라서 올려다본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러 끝까지 쳐다보지 못했다. 문득 그 속에 헤일로의 그 눈동자가 아른거린 것 같아서 다시 쳐다보니 헤일로의 눈동자가 있던 자리엔 햇빛만이 공허하게 비치고 있었다.

 

 요즘 읽는 만화책이 대체로 이런 종류다. 십대부터 이십대 중반 남녀의 달콤한 러브 스토리. 제목도 그대라는 사람, 외톨이와 까칠이가 만나면? 나 같은 걸 사랑해 버린 왕자님 등등, 유치하지만 희망찬 이야기들이 내 삶을 가득히 채우고 남았다. 1학년부터 모아온 참고서보다도 더 많이.

 헤일로와 만나고 나서 매일 이런 책들만 산다.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지나치는 서점에 들러 맘에 끌리는 러브 코미디 만화만 보이면 그만 사버린다. 그런 만화들을 사서 기숙동에 들어오는 길엔 온 간판이 다 이상하게 변해있더랬다. 김씨의 사랑, 원조 사랑의 홍삼, 앨리스 웨딩숍. 눈을 비벼도 그 환영은 씻어지질 않았다.

 보이더에게 그걸 말하니까 콩깍지 제대로 씌워졌다면서, 벌써 상사병 말기라고 나에게 말했다. 난 피식거렸다. 그럼 어떡하라고,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그렇게 보이더도 알만큼 망상에 찌들어가지고 온갖 러브러브 만화들을 다 섭렵하면서, 정작 헤일로 본인만 보면 온몸이 다 빨개져가지고서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나는 확실히 상사병 말기였다.

 

 만화 보기를 그만하고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오후의 햇볕을 쬐었다. 온몸이 따끈따끈해지는 느낌이 좋다. 그냥 이대로 한 10분만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 그저 이 따뜻한 시간을 박제한 채로, 소중한 사람들과 그것을 구경하며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한명이 빈 것 같다.

 - 보이더.

 ㅡ ?

 - 왠지 이상해.

 ㅡ 무슨 부분이?

 - 몰라. 왠지 이상해. 내 몸의 어느 부분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ㅡ .. 병원 가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고객님.

 - 아냐!! 그런 느낌이 든다고. 보이더, 혹시 헤일로 좀 찾아봐줄 수 있어?

 ㅡ 헤일로? 알았어.

 보이더는 대답을 하고는 워먼덱스의 여기저기를 누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보이더의 목소리가 들렸다.

 ㅡ 선우.

 - ?

 ㅡ , 레이더 달렸냐?

 - 아닌데?

 ㅡ 헤일로 어딘가로 나갔어. 워먼덱스 화상통화기능으로 연결해봤는데 거기에 없더라.

 ...... 이 녀석.

 나는 오후의 햇볕을 깨뜨리고 곧 나갈 채비를 한 후에 방을 박차고 나왔다. 아마 지금이면 멀리는 못 갔을 거다. 방학동안만 일하시는 행정실 오빠야가 나를 놀란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마 내 얼굴이 누굴 잡아먹을 듯한 얼굴이라서 그랬겠지.

 ㅡ ! 무슨 수로 걔를 찾는다고.

 - 몰라. 일단 나가보면 무슨 수가 있겠지.

 보이더에게는 대충 대답하고 곧장 달려 나가 신호등 있는 데까지 다다랐다. 초록 불을 기다리는 동안 숨을 몰아쉬고, 초록불이 되자 곧바로 튀어 나갔다. 너무 빨리 튀어나갔는지 하마터면 차와 부딪칠 뻔도 했다. 신호등 도로를 건너서 백화점을 통과하고 있으니 보이더가 말을 걸어왔다.

 ㅡ 선우.

 - .

 ㅡ 헤일로 위치 알았어. 서림 문고야.

 - 거기? 거기는 왜?

 ㅡ 몰라. 자기가 가고 싶었으니까 간 거 아닐까?

 - 그래? 근데 넌 그걸 어떻게 빨리 알았어?

 ㅡ , 그야 뭐, 워먼덱스 기능에 주인 찾기 기능도 있으니까..

 워먼덱스라는 건 뭐든지 가능한 기계인가보다. 그런 것도 알 수도 있고. 나도 하나 사고 싶어지네.

 곧바로 서림 문고 쪽으로 달려갔다. 내 생애 최고 속력을 오늘 갱신하겠다는 기세로 달려갔다. 얼마 안 가서 그렇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건물에 도착했다. 서림 문고였다. 들어가서 헤일로라고 크게 부르고 싶었지만, 그에게 더 이상 얼굴 빨개지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그냥 유리창 너머로 그를 봤다.

 헤일로는 책 읽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보는 지(되도록이면 로맨스 쪽이면 좋겠다), 그는 간이 의자에 움직이지도 않고 새하얀 책을 봤다. 서점 한 구석에 박혀있는 검은 빛의 보석은 그렇게 그 책을 유심히 보다가 30분이 지나서 서점 직원에게 인사하고는 서림 문고를 나갔다. 내가 그 밖에 있다는 것을 눈치도 못 챈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헤일로를 따라갔다.

 헤일로가 그 다음 들린 곳은 마트였다. 그것도 내가 보이더에게 우동을 만들어 주려고 갔던 그 대명 라이프 플러스였다. 헤일로는 거기서 이곳저곳을 그저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 나는 그를 놓칠까봐 노심초사하며 헤일로를 뒤따라갔다. 헤일로를 놓치면 안 된다. 그를 따라 다녀야 한다. 이 넓은 도시에서 길 잃어버리면 다시 돌아오기도 그렇잖아.

 마트에서도 떠돌기만 한 헤일로는 또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걷기만 하던 헤일로의 발걸음이 은행 나뭇길에서 멈췄다. 순수한 노란 색만이 헤일로의 눈에 가득 담겼다. 감탄에 젖은 헤일로의 옆모습은 정말로 예뻤다. 헤일로는 은행잎을 두 눈에 담고, 나는 헤일로의 옆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헤일로는 그 상태로 7분을 그 상태로 있었으며 나도 그랬다. 영원 같은 7분이었다.

 

 

 헤일로는 이제야 기숙동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헤일로를 뒤 따라가면서 보이더와 나는 수다를 떨었다. 나도 처음에 모니터에서 저 은행나무들을 봤을 때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어. 애초에 내 행성에서는 저런 나무들은 사진에서만 봤지, 실물을 본적은 없어서 말이야. 정말? 우리는 너무 흔해서. 씁쓸하고도 단 이야기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그 사이 헤일로는 우리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매일 보는 쌓아올려진 벽돌들이 오늘은 웬일인지 힘 있게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헤일로는 그 문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나도 뒤따라가려고 했다. 근데 그 때에 들리는 발자국 소리. 방학 때는 별 볼일 없는 따분한 이 학교에 누가? 나는 그 얼굴을 확인하고서는 지례 겁을 먹었다. 그리고는 가까운 나무에 몸을 숨겼다.

 왜 지금 이 때에 그녀가 나타나는 거지? 왜 헤일로에게 오는 거야? 헤일로를 해치려고 나타난 거야? 아니 너는 나만 노리면 되는 거잖아. 차라리 나를 공격해. 나 갖고는 성에 안 차?

 헤일로의 앞에는 군청색의 목도리를 두른 차미애가 땅을 쳐다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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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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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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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설의 캐릭터는
작가의 그럴듯한 분신이거나
작가의 그럴듯한 안티테제이거나
작가의 그럴듯한 분신의, 그럴 듯한 안티테제중 하나다
아님 말고



 

맛있게 드세요.


From. 셰디 레스토랑 부 주방장
인듯 푸르트왈 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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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 : 잘 구워진 추로스 옆에 다 타버린 추로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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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만화 영화 속 너를 닮고 싶다


 

넌 귀엽고
춤도 잘 추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알고
모든 사람을 웃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너는 참 밝은 아이야

 

 


태양 같이 밝은 너를 보다가 문득
내 자신이 초라해져 보였다

 


난 너와 같이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을까

만져줄 수 있을까

치유할 수 있을까

 


슬프지만
아마 난,
죽을 그 순간까지도 너처럼 되지는 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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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드십시오.

From. 셰디 레스토랑 총 주방장
비스무리 셰디 바르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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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더3. 겨울 방학의 어느 날(3)

 

 

 


 나와 그가 내려오자 그는 나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졌다. 역시 너무나 가까이서 사람을 보는 것은 그도 무리인 듯했다. 보이더가 그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 넌 누구니? 너도 혹시 디스트럭션 쿰바가 일어나서 도망쳐 나온 거야?”

 “아니야. 난 그 전쟁에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난 일 년 전에 별이 폭발해버리는 바람에 여기 온 거야.”

 “.. 그래?”

 보이더와 그가 대화를 하고 있는 중에 난 그의 모습만을 보고 있었다. 새까만 머리에 붉은 헤드폰, 자주색 눈. 걸쳐 입은 옷은 그런 그의 이목구비와 잘 어울렸다. 언젠가 슬비가 말했던 것처럼 자기와 어울리는 옷을 입는 사람이 제일 멋있는 것 같다.

 “, 자기소개를 안 했네. 나는 헤일로 벨사다 킷 니쿱힐이라고 해. 좀 이상한 이름이지?”

 뭐, 보이더도 그런 식의 이름이니까 꽤 익숙하긴 하다만.

 “그리고 지구에서 1광년 떨어진 미그레시 성에서 왔어... 1년 전에 멸망해버렸지만.”

 “..... 그렇구나.”

 왠지 이 아이들하고 있으면 이 지구에 있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나는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왜 별들은 사라지는 걸까? 그게 어쩔 수 없는 신의 판결이라고 해도, 그게 운명이라고 해도, 왜 이런 어린 사람들이 슬프고도 무거운 운명을 짊어지는 건데.

 헤일로는 조금 슬픈 듯이 울상을 짓다가 다시 표정을 바꿔서 나에게 웃어보였다. 나는 그 웃음을 보자 얼굴이 또 빨개져서 헤일로를 잘 보지 못했다. 그저 아까처럼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을 들었다.

 

 

 “있잖아, 부탁이 있는데.”

 “.... .”

 “, 미그레시 성에서 살았던 음파 인간이야. 음파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이지. 그래서 이 헤드폰만 가지고 있으면 밥걱정은 없어.”

 “.”

 “사실 나 여기 지구에서 살고 싶거든. 나 여기 시계에서 살게 해주면 안 되겠니? 워먼덱스도 있으니까 너에게 부담은 안 될 거야.”

​ 너도 그 워먼덱스라는 거 있구나.

 ㅡ 선우, 어떻게 할래? 어차피 헤일로는 달리 갈 곳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그 시계에서 살게 해주면 안 돼?”

     - 나도 그 생각에 동감이야, 보이더.

 


 “알았어. 살게 해 줄게.”

 “정말?”

 헤일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 너 같은 사람을 그냥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너 혼자 살기는 외롭잖아.”

 헤일로는 금방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이 되어서는 그대로 나에게 안겼다. 와락, 헤일로의 감촉은 따뜻했다. 나는 얼굴의 불이 그대로 귀까지 번져가지고는 꼼짝 못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나 정말 네가 안 받아주면 흑,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이야! .”

 “...... 이거 풀어줘. 나 괴롭거든?”

 “, 미안! 갑자기 흥분해서 안아버렸네.”

 “... 너 스킨십이 너무 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니.....”

 나는 헤일로가 포옹을 풀고 나서도 얼굴과 귀의 불이 꺼지지 않아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정말! 맘대로 얼굴하고 귀에 붉은 색 크레용 칠하는 게 아냐!

 “..... 야,  헤일로 벨사다 킷 니쿱힐.”

 “?”

 “손 대봐.”

 “?”

 헤일로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작은 손 위에 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사이에 검고 붉은 빛이 우리 둘을 감싸고 사라졌다. 이걸로 헤일로와의 계약은 완료됐겠지. 몇 개월만 기다리면 헤일로는 이 지구에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헤일로는 나와 계약을 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벌써 계약을?”

 “.”

 “나하고?”

 “.”

 “내가 방법을 안 가르쳐줬는데?”

 “, 저기 있는 보이더하고 계약해본 적이 있으니까 말야.”

 “, 그래서 그렇게 빨리...”

 

 ​헤일로는 나에게 감탄했다. 나는 여전히 헤일로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보이더는.... 헤일로가 조금 부럽지 않을까? 나하고 만나자마자 계약한 헤일로가. 슬쩍 보이더의 얼굴을 눈치 보듯 살펴보았다. 보이더는 잘 되었다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 상관없어 보여서 다행이다.


 “오오, 바로 계약했다. 나는 좀 늦게 계약해 주던데. 다행이네.”

 헤일로는 보이더에게 웃어보였다.

 “고마워. 나도 이렇게 빨리 계약할 줄 몰랐는데. 계약을 경험해본 사람 집에 와서 운 좋게 됐네.”

 “그러네. 이제 괜찮으니까 푹 자둬. 방금 도착했으니까 잠 올 거 아냐?”

 “... , 미안. 너희들 이름 물어보는 거 깜빡했다. 이름 좀 물어봐도 돼?”

 “난 보이더 디르 픽 메카트니라고 해. 간단하게 보이더라고 불러줘. 출신 성은 카르텔 성이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 박선우야. 잘 부탁해.”

 보이더는 자신 있게 말하는데, 나는 헤일로의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말하고 있다. 부끄럽다.

 

 “아, 저, 그... 있잖아. 선우.. 라고 불러주면 안 될까?”

 “보이더랑 선우. 알았어! 나는 그냥 헤일로라고 불러주면 돼, 알겠지?”

 “!”

 “.. .”

 “그러면 나 일단 시계에 들어가서 좀 잘게. 나 너무 잠 온다.”

 “.”

 헤일로는 또 한 번 웃고는 엄마가 주신 시계에 들어가 버렸다. 검고 붉은 빛과 함께.

    

 ​헤일로가 시계로 들어가고 보이더도 안경 속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 난 침대에 누워서 헤일로를 생각했다. 그건 헤일로가 나에게 눈을 맞추고 나서 생긴 본성이었다. 그의 생각은 내가 온 힘을 다해 억눌러도, 금세 원래 모양으로 원상복귀가 되었다.

 헤일로가 지니는 색들이 이루던 조화. 검은 머리, 붉은 헤드폰, 하얀 피부, 그 자줏빛 눈동자. 딱 한번 마주 쳤을 때에 보았던, 지금도 천장에 아른거리는 그 색깔들의 잔상. 하나도 밖으로 삐져나온 것이 없는 완벽한 하나의 남자가 그 곳에 있었다. 내 마음을 통째로 휘어잡은 남자. 헤일로. 나는 그의 이름을 한 글자씩 발음했다. 한 글자씩 발음할 때마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채워졌다.

 ㅡ 후후후, 선우.

 - ?

 ㅡ 너 있잖아.

 - 왜에....

 ㅡ 헤일로 좋아하지?

 헉! 정곡을 찔렸다. 하긴 나 엄청 티났겠지.

 - 역시 들켰어? 헤헤, 어쩔 수 없네. 그래. 한 눈에 반해버렸어.

 ㅡ 오오오? 이거, 이거. 박선우씨가 원래 이렇게 솔직했나요?

 - 그렇지만 너에게는 감출 것도 없잖아? 그리고 이게 어쩔 수 없는 내 느낌이고.

 ㅡ 그래?

 - .



 보이더는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나에게 말했다.

 ㅡ 선우.

 - ?

 ㅡ , 조금 바뀐 거 같다?

 - 그럴 수도 있겠지.

 지금은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표출할 뿐이야. 솔직하게.


 ㅡ ....... 네가 부럽다.

 “.. ?”

 정말 놀랐다. 내가 보이더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보이더의 목소리는 슬픔이 꽉꽉 채워져 있는 것 같아서 고마워, 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 왜 내가 부럽다고 생각한 거야?

 ㅡ 그냥. 나도 느낀 걸 표현했을 뿐이야.

 보이더는 작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녀의 조금은 슬픈 듯한 목소리가 날 슬프게 했다.

 보이더, 너를 아프게 하는 그 가시는 대체 뭐야? 왜 아직도 그것은 너를 찌르고 있는 거야? 아직도 너에게 더 아프게 할 것이 남은 거야?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 가시를 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안경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헤일로의 기숙동 604호 방문 사건으로 들떴던 시간들은 노을빛 석양을 향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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