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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 : 앙꼬 없는 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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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인류가 같이 모여 살지 않았더라면
애초부터 혼자 따로따로 살고 있었더라면
법도 없고
정의도 없고
친구도 없고
고독도 없고
사랑도 몰랐겠지

 

 

그리고 자기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믿었겠지
염치도 없게

 

 


맛있게 드세요.

From. 레스토랑 셰디 총 㕑房長(주방장)
비스무리 셰디 바르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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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 : 욕망의 초콜릿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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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에게 준 여자 아이는 잠에서 깨자마자 ○○○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품에서 작은 상자를 ○○○에게 주었다.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건 아주 적은 양의 초콜릿 가루.
 상자 속의 내용을 확인한 ○○○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그것을 밍밍한 우유에 섞어 마셨다. 초콜릿맛은 별로 나지 않았지만 ○○○은 우유에 조금뿐이지만 초콜릿 맛이라도 있는 것이 어디냐며 만족했다. 그로부터 여자 아이는 신으로부터 우유가 배달되어 오는 때에 ○○○에 초콜릿 가루를 주었고, ○○○는 그 가루를 우유에 섞어 마셨다.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된 ○○○는 그때에 세상이 이제야 자기에게 친절하게 변한 것 같다고 회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는 좀 더 진한 초콜릿 우유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자기랑 같이 사는 여자 아이에게 초콜릿 가루를 좀 더 줄 수 없냐고 말을 했다. 하지만 여자 아이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금은 안 된다고 말을 했다. ○○○가 여자 아이에게 왜 안되냐고 말하자 여자 아이는 ○○○를 진정시키고 '언젠가 내가 주는 상자에 들어있는 초콜렛 가루가 많아질 거야.'라고 ○○○에게 말했다. ○○○는 그 말을 믿고 열심히 신으로부터 오는 우유를 마시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얼마 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는 여자 아이에게서 받는 초콜릿 가루가 늘어났다는 걸 눈치챘다. 양이 많아진 초콜릿 가루를 넣어 마시는 우유는 ○○○로 하여금 세상의 시간을 잊어버리게 해주었다. 그 달콤하고 쌉싸름한 욕망의 맛. ○○○는 그 맛을 맛보면 맛볼수록 더 진한 초콜릿 우유가 너무 마시고 싶어졌다.
 "더! 더 달콤한 맛을 나에게 줘! 세상 아무도 느끼지 못한 맛!"

 

 


 ○○○는 그 때부터 여자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는 그 때마다 할 수 없지라는 표정을 짓고는 초콜릿 가루를 이전보다 더 많이 넣은 상자를 ○○○에게 주었다. ○○○는 그 초콜릿 우유를 마시고는 그 맛에 취해서 하루를 살았다. 더, 나에게 그 맛을 줘! ○○○는 신의 선물인 여자 아이에게 너를 보낸 신에게 우유를 좀 빨리 보내달라고 해달라며 때리고, 초콜릿 가루가 모자라다고 이것밖에 못 주냐고 해서 때리고, 왜 내 방에서 멍하니 있냐고 때렸다. 그때마다 여자 아이에겐 하나 둘씩 상처가 생겼지만 여자 아이는 상처에는 생각을 쓰지 않고, 그저 ○○○를 향해 쓴 웃음만을 지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는 오늘도 변함없이 여자 아이를 협박하려고 했다. 빨리 그 욕망의 맛을 보고 싶었다. 하늘을 나는 듯한 그 맛.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듯한 그 황홀한 맛을 기대했다. 그리고 그 여자 아이를 협박하러 손을 든 순간에 그 애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 같은 그저 투명한 방. 밖에는 나무가 보이고 하늘이 보이고 들판이 보였다. 밑을 내려보면 개미들이 줄을 지어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여느 때랑 다름이 없는데 그 여자 아이만 없었다. 하얀 원피스에 분홍 리본을 단 아이.
 그녀가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언젠가 이어짐)

 

 

 

체하지 않게 천천히, 드세요.

 

From. 레스토랑 셰디 총 㕑房長(주방장)
비스무리 셰디 바르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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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더 11. 보이더(2) 

 

 

 

 카르텔과 스마냐의 싸움. 아니, 일방적인 침략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지. 스마냐의 여왕이 우리별을 침략했다. 우리별의 군이, 전차가 적에게 포격을 가해도 스마냐 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그들은 다 로봇인 듯했고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듯 했다. 마치 몸 상태가 안 좋을 때에 나오는 그런 피색 눈을 해가지고서는 카르텔 군인들을 닥치는 대로 피륙하고 있었다.


 우리별은 십오일 만에 별 전체를 여행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다. 그 말은 다른 카르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르텔에 살고 있는 사람들 서로가 전부다 친한 사이이거나 안면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번쯤 만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이,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던 카르텔의 사람들이

 말라비틀어진 꽃처럼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 아프다. 괴롭다. 눈앞이 검게 물들고 있다. 그 때에 내 마음의 반 이상은 부서졌다. 서로 농담 까먹기를 하던, 함께 손에 손을 잡으며 이 거친 세상 잘 살아보자고 말했던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었다. 죽을 이유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 사람들이 무슨 큰 잘못들을 저질렀다고.

 이런, 절망적인 피를..

 .... 도대체 왜.

 

 연구소의 깨진 창문 속에 숨어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입에서는 실성한 웃음이 계속 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구소 안에 있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울고 있었다. 그들을 구할 수 없다. 난 그들을 구할 수 없다. 죽어가는 카르텔의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정말 돌아버린 듯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보이더, 조금만 와 볼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연구소 뒷문에 서서 나에게 말하신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을 그치고는 조용히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뒤따랐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뒤뜰에 가시고는 그 쪽에 있는 큰 느티나무 쪽으로 나를 인도했다. 그 뒤에는 지금껏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별무늬가 인상적인 창고가 있었다. 그 방은 내 어릴 적부터 있었는데 항상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저기 안에 과연 무엇이 들어있어서 자물쇠로 꽁꽁 잠겨있는 것일까 생각하는 것이 내 어릴 적 중요한 일과였다.

 엄청나게 많은 돈? 아니면 매우 중요한 식물들의 샘플? 그것도 아니면 혹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일지도 몰라!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별이 멸망해 가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왜 이 방을? 할아버지는 품에서 창고의 열쇠 같은 것을 꺼내더니 창고를 여셨다. 창고에는 커다란 캡슐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캡슐을 보자마자 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게, 이곳에 있는 거야. 이 귀한 것이 왜.

  연구소에 한쪽 귀퉁이에 있는 전자 잡지에서 이것의 정보를 읽은 적이 있다. 전설로만 전해져 온다는 이민기계. 자기보호, 학습, 생존, 원주민과의 공생 등이 100% 보장된다고 하는 환상의 이민 기계.


 그 캡슐의 이름은 Ł-ŊÆΓㅡ워먼덱스.

 이 별에서 완벽히 탈출할 수 있는 동아줄이었다.

 이걸 타고 가면 넌 살 수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말했다.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눈물이 흘렀다. 내 시야가 완전히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 내가 왜....”

 온 힘을 다해 뱉어낸 말이 그 말이었다. 왜 날 살리려 하는 거야. 예전에도, 지금도, 왜 바보 같은 짓만 하는 건데. 어이가 없었다. 왜 당신들이 살려는 생각은 안하는 거야.

 “꼭 살아다오. 넌 앞으로 살날이 많잖니?”

 “행선지는 지구로 맞춰 놨다. 거기 가서 너 먹고 싶은 거 실컷 먹어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타지 않을 거다. 절대로 타지 않을 거다. 난 당신들의 명령을 거스르겠어. 당신들과 함께 죽으면 죽었지, 절대 혼자서 살 수는 없다!

 그때 뒤에서 폭발음이 나고 연구소가 무너져 내렸다. 앞마당의 나무들은 다 쓰러져 있거나 불이 옮겨 타고 있었고, 분홍색의 돔도 깨져 재가 된 하늘만이 우리들을 감싸고 있었다.

 스마냐의 여왕은 친히 우리 연구소에 등장하여 우리들을 보고 있었다. 그 여왕님이 짓고 있는 미소는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내 몸을 꿰뚫었다. 내 몸에 있는 장기들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여왕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 네가 여기에...?” 할아버지가 분노에 들끓는 목소리로 여왕에게 말했다.

 뭐야? 할아버지하고 할머니하고 아는 사이?


 “, 이제 너희들만 남았다.”

 여왕은 말했다. 여왕의 눈에서 자란 검은 날개가 빛을 발하고 그와 동시에 작은 날개들이 우리들에게 날아왔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로 뛰어갔다.

 내 몸 곳곳에 검은 날개가 박혔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 온 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피가 흘러넘쳤다. 고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져왔다. 아팠다. 너무나 아팠다.

 하지만 이런 것쯤은 전쟁 중에 죽은 우리별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이더!!”

 할아버지와 할머닌 울부짖듯이 내 이름을 불렀다. 스마냐의 여왕은 계속해서 검은 깃털을 날렸다. 난 계속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지켰다. 당신들을 지키겠어. 그리고 저 워먼덱스에 당신들이 타는 거야! 어딘가 뒤틀려 있는 나보다는 착해빠진 당신들이 사는 게 더 좋아. 나는 여기서 죽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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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 : 하루 세 잔 밍밍한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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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모른 채 '뭔지는 몰라도 일단 살고 봐야지'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이 세상에 던져진 ○○○는, 아무도 눈길 한번 안 주는 투명한 방 안에 떨어졌다. 아무리 주먹과 발로 쳐도 부서지지 않는 자신의 둥지 속에서 ○○○가 꼭 해야되는 일은 신으로부터 일정한 시간에 배달되는 밍밍한 우유를 마시는 것 밖에는 없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인 줄 알았던 ○○○. 하지만 계속 밍밍한 우유를 마시는 일만이 가득찬 하루하루를 지내고 나니 어느새 ○○○는 우유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재미 없는 세상에 화가 난 ○○○는 신이 준 그 우유를 자신의 방에 놀러온 △△△에 뿌리기도 하고 아예 방 안에 우유를 쏟아 부어서 방 안을 썩은 우유로 채우기도 했다.
 ○○○의 악행에 신은 혀를 찼다. 에잉, 저런 못나고 가여운 것을 봤나. 자신의 아픔을 다른 곳에도 덮어 씌우려고 하다니 정말 기특한 점 하나 없는 창조물이다. 그래서 신은 ○○○에게 벌을 내렸다. 신이 친히 배달한 천둥에 맞은 ○○○는 그 따가움을 몸에 익혔다. 아프다. 이거 보통 아픈 게 아니야. 알았어요! 신~ 안할께요. 안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는 신에게 조금 불만 있는 투로 말했다. 신은 그 대답이 영 탐탁치 않았지만 그래도 지켜보기로 했다. 누가 뭐래도 내가 만든 내 자식이니. 신은 ○○○을 마지막으로 째려보다가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는 그 뒤에도 계속해서 밍밍한 우유를 계속 마셨다. ○○○는 조금이라도 밍밍한 우유를 맛있게 마시려고, 우유를 마실 때 다른 음식들을 상상하며 마셨다. 이번엔 포도 맛, 이번엔 초코맛, 이번엔 바나나맛.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마셔나갔다. 그러나 밍밍한 우유는 아무리 머릿속으로 세뇌를 해봐도 ○○○이 좋아하는 포도맛, 초코맛, 바나나맛이 전혀 나질 않아서 결국 다 토해버렸다. 왜 나는 밍밍한 우유를 먹는 걸까. 왜 나는 밍밍한 우유를 좀 더 색다른 맛 우유로 만들 수 없는 것일까. ○○○는 울었다. 이런 일을 시킬 거면 왜 신은 날 만들었는지, 왜 여기 보내서 이런 기분만 느끼게 하는 건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는 자신의 처지가 불쌍했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지. ○○○는 눈물을 닦고 다시 밍밍한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나도 여러가지 맛 우유를 만들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이젠 아무 맛도 나질 않는 우유를 계속 마셨다. 그렇게 아무 반항도 일으키지 않고 계속 우유를 마시니 ○○○는 어느샌가 옆에 자기 또래 비슷한 여자 아이가 잠들어 있는 걸 알고 있었다.
 신의 선물이었다.

 

 

 


(다음에 이어짐)

 

 

 

맛있게 드세요. 처음으로 코스 요리에 도전해봤습니다.

 

From. 레스토랑 셰디 총 㕑房長
주방장 셰디 바르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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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더10. 보이더(1)​

 

 

 

 

 디르 · 데라벨 식물 연구소는 분홍색 돔 안에 있는 지상낙원이었다.

 카르텔 성의 하늘은 막 구겨진 종이처럼 칙칙하고 하늘색이라고는 코빼기하나 안 보였지만, 그 분홍색의 아늑한 연구소에 들어가기만 하면 돔의 천장에 펼쳐져 있는ㅡ비록 인공으로 만든 것이지만ㅡ예전 모습 그대로의 쨍한 하늘색을 볼 수가 있었다. 어릴 적의 나는 연구소 방문객이 없으면 그 쨍하고 밝은 하늘만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고 할아버지는 말했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연구소에 들어가면 바로 펼쳐지던 초록의 향연. 이름 모를 풀꽃들, 나무들, 졸졸 흐르던 시냇물. 그 속에서 날 부르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걱정스런 목소리. 지금은 내 마음속에서만 생생하게 떠오르는 영상들, 지금은 잃어버린 영상들.

 디르 · 데라벨 식물 연구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자기들은 보지 못한 별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함이겠지. 어릴 적의 나는 그 사람들에게 얼굴 내 보이는 것이 싫어서 연구소 깊숙이 있는 침실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혹시나 이곳에도 사람이 올까봐 떨고 있었다.

 

 난, 특정범위 내에 있는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지구에 도착한 지금은 이런 능력에 익숙해져서 내가 필요한 생각만 내 머릿속에 남기고, 나에게 해가 될, 이른바 찌꺼기 생각들은 그냥 넘겨버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때는 그게 되지 않았다.

 그땐 나에게 오는 나쁜 생각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
 헤엥~ 연구소가 의외로 작네. 이래가지고 식물 연구가 제대로 되려나? 저 지식은 나도 아는 건데. 왜 자기들만이 아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거야? 저 식물 좀 징그러! 별거 없잖아? 왜 우리가 식물을 잘 돌보아야 되는 거지? 지금도 살기가 편한데. 이런 연구소 왜 세웠을까? 우리가 이런 걸 알 필요가 있는 거야?
 여과 없이 들리던 나의 가족들과 연구소에 대한 험담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그 칙칙한 하늘 아래 있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맡겨져서 자라온 나에게는 그 험담들을 듣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겨우 8살 밖에 되지 못한 내가 그 사람들과 싸울 수도 없었기에, 그 사람들이 가고 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괜히 분풀이를 했다.

 “왜 그 사람들에게 화 내지 않았어? 바보들이야? 그 사람들이 우리 연구소를 얕보고 있었어. 그걸 왜 잠자코 바라봐. 왜 당하고만 있냐고! 이러다가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더 욕먹을 지도 모른다니까?”
 그땐 내가 철이 없었다.

 할머니는 그런 나의 말을 들으며 할아버지와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곤 돈가스 향 향수를 뿌리며 말했다.
 “보이더, 네 말이 맞을 수 있어.”
 창문 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 보였다.

 “하지만, 세상엔 말야. 그래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 이 식물 연구를 후원해주는 사람들도 많단다. 안 그러면 이 연구소를 여기에 세울 수도 없고, 국가에서 지원 받는 연구가 될 수가 있었겠니? 없지. 그러니까 보이더. 세상에는 물론 우리를 비웃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많아.”
 할머니가 옳았다.
 그 후 난 조금씩 조금씩 침실을 나와서 사람들에게 나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연구소에 오는 사람들은 갑자기 연구소에서 나타난 조그마한 인간을 보고 호기심을 비쳐왔다. 물론 내 머릿속에 나에 대한 험담이 올 땐 어찌할 줄 모르고 울어버렸지만 그때는 할아버지가 나를 안아서 사랑한다는 생각들을 많이 넣어주시곤 했다. 그런 일이 쌓이고 쌓여 난 점점 그런 일에 익숙해져 갔다.
 내 나이 20살. 겨우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외의 사람들과 대화를 술술 나눌 수 있게 됐다.


 역시 할머니의 말씀은 옳아서, 뭐, 식물 연구에 별 관심 없고 필요성조차 못 느끼는 사람도 많았지만, 대개는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았다. 연구소가 있는 돔에만 펼쳐진 초록의 향연을 연구소 바깥에도 재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그럴 때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말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를 돕고 싶어서 난 식물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그 이유만으로 식물의 공부를 했었는데 어떤 책에서 지구라는 먼 행성에서는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있다는 것을 읽고 그것에 흥미를 느꼈다. 대개 카르텔 성에서 식물이라 하면 관상용이나 산소 공급용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있다니. 나로서도 깜짝 놀랐다. 우리들은 향기로 배를 채우는데, 지구인들은 입으로 그걸 먹으면서 배를 채우네? 죽기 전에 그 식물들을 보고 싶어졌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그런 식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두 분은 우리도 그 식물들에 대해서는 연구 중이라고, 하지만 언젠가는 카르텔 성 전체에 그 식물들을 심을 수 있을 거라며 눈을 반짝거렸다. 나도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더 공부하겠다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웃어보였다.

그로부터 반년 후에, 디스트럭션 쿰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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