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맺는 글




 안녕하세요. 학도입니다.

 후기에서 여러분들을 뵙는 건 처음이네요.


 

 우선은 이 이야기를 끝마칠 때까지 공감으로 또 댓글로 저에게 힘을 주신 모든 분들, 묵묵히 제 이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로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



 선우, 보이더, 슬비, 미애, 건우(선우 오빠), 루어, 헤일로, 그 외 모든 ‘너에게’ 등장인물들과 함께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이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알려지지 않은 채로 허공에 사라졌겠죠. 하지만 당신이 읽어주셨기에 그들이 확실히 존재할 수 있었고, 또 어떤 감정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아니면 어정쩡한 것이든.



 ‘너에게 시리즈(너에게와 너에게, 더)’를 쓰면서 저에게 있는 부족함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장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신중하게,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하며 써야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만 더 생각을 깊이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 글이 여러분들에게 좀 더 받아들여지기 쉬웠을 텐데.. 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에게는 정말로 고개 숙여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힘들여 읽으신 이 글이 정말로 여러분들에게 힘이 되고 아주 별 볼 일 없는 행복이라도 가져다 줬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나중에 ‘너에게’의 못 다한 이야기나 아직 공개하지 못한 등장인물들의 그림들을 추가해 나갈 예정이니 기대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너에게 시리즈’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



 


차기작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언젠가 장편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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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더完. 우리들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루어를 쓰러뜨리고 난 뒤, 우리들은 각자의 삶을 충분히 맛보고 있는 중이야. 다들 루어가 남기고 간 상처들이 아직 다 아물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 상처가 깨끗이 낫게 될 그 날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어. 


 슬비는 그 날이 지나간 며칠 동안은 몸이 허약해졌어. 일종의 컨디션 난조지. 외상은 없었지만 그때 그 마법 공간에서 얻은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포감이 그녀를 짓눌렀나봐. 수업 시간에도 계속 졸리다고 그러고,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에는 매일 잠만 잤지. 하지만 괜찮아. 내가 그때마다 그녀를 위해서 빵이나 밥 종류를 사다 줬으니까. 그녀는 그럴 때마다 정말 고맙다고 나에게 몇 번이나 말했고.
 ....... 나는 이 귀여운 리본 소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정말 적구나, 라고 그때 깨달았다니까? 


 

 솔직히 슬비가 그 버건디에 끌려간 건 나 때문이잖아. 그래서 난 그녀에게 일부러 더 말을 많이 하고 진심으로 그녀를 도와주려고 노력했어. ‘요즘 힘이 없어 보이던데 괜찮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도와줄게.’ 나는 이런 말들을 그녀에게 던졌었지. 슬비는 그 말들을 듣고 정말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인 듯 웃으면서 ‘그 말이면 됐어. 그 말로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으니까!’라고 나에게 말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있는 나는 최고의 행운아일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다행이도, 그 시간이 지나고 슬비는 차츰차츰 건강을 회복하고 평소처럼 활기차게 지내고 있어. 요즘 나에게 ‘나중에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의류회사를 차릴 테니까! 너도 어른이 되면 내 옷 사러 와!! 넌 내 최고의 친구니까 할인 정도는 해줄 수 있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들어 외워버렸지. 나는 오늘도 그 소리를 들으면서 만약 그 가게에 가게 된다면 이런 스타일의 옷을 사고 싶다! 라는 것을 상상해. 그리고 그건 언젠가 현실이 될 거라는 것을 믿고 있지. 누가 뭐래도 슬비의 일이니까 말이야. 



 

 다음은 미애.
 요즘 미애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많아졌어. 그때 그 시간이 지난 이후, 그러니까 네가 내 곁을 떠난 이후로 더욱 더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게 미애야. 이건 사족이지만 우리가 버건디를 빠져나오고 나서 우리를 찾은 것도 미애야. 참. 우리가 있던 무너진 빵집 건물을 어떻게 찾은 건지, 신기하다니까.  ‘어린 아이 3명이 우는 것을 꾹 참던 광경.’ 미애는 우리가 마법 공간을 빠져나온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설명은 정말 정확했지. 슬비도 보이더도 나도 서로 상처를 숨기고 있었으니까. 


 미애는 그런 우리들의 곁에 계속 남아서 자신의 이야기들을 풀어냈어.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라든지 옷이라든지 먹거리라든지. 우리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부어줄 양 말했지. 버건디를 빠져나온 다음 우리들이 빠르게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애 때문이야. 미애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정말, 잔뜩 눌러 앉은 이 세상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야. 난 그런 미애를 이렇게 부르고 싶어. 간호사, 뒤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간호사.



 그리고,
 보이더.


 ... 아마 내 친구들 중에서 제일로 상처를 많이 받은 녀석이 보이더일거야.
 보이더는 우리들에게 자기의 상처를 다 드러내지 않아. 평소에는 우리들을 넓으신 아량으로 감싸 안는 누님 같은 모습이야. 자기 상처보다 우리들의 상처들을 잘 보고 그 상처들을 보듬어 줘.
 하지만 난 알고 있어. 매일 매일 쌓여가는 보이더의 눈물을. 학교 수업 중에 안경으로 전해져 오는 눈물의 색을.
 그건 아마 버건디의 눈물이겠지.
 그 눈물은 내가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진할 거야. 아마도 나보다 더 많은 고민과 원망과 후회가 담겨있을 거야. 나는 그 눈물의 깊이를 죽어도 측량하지 못하겠지.
 그 떨리는 어깨에 짊어진 사랑의 무게를 난 진심으로 ‘아는 것’이 불가능할 거야. 아마 강산이 변하고 우주가 개편된다고 해도, 내가 죽는다 해도. 

  하지만 지금 보이더는 행복해. 무엇보다 지금의 보이더에게는 루어가 없어. 보이더에게 터무니없는 상처를 짊어지게 했던 루어가. 지금의 보이더에겐 우리들이 있을 뿐이지. 변함없이 겉멋만 들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우리들.
 그렇지만 이런 우리들이라도 보이더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 보이더를 계속 지켜보며 힘을 보탤 수 있어. 우리들은 보이더가 진심으로 웃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힘을 내고 있어. 요즘은 쉬는 날에 4명이서 같이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거나 예쁜 옷을 사러가는 일이 많아. 그 때의 보이더를 흘긋 보면 정말로 행복한 듯이 웃고 있어서 난 정말로 안심하곤 해.

 

 ... 야.
 보이더 곁에, 우리들 곁에, 너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 말 나온 김에 물어볼게. 넌 어떻게 지내? 넌 지금쯤 어딜 여행하고 있냐? 그 쪽의 하늘색은 어떤 색이야? 설마 벌써 지치지는 않았겠지?



 그런 건 됐고 내 얘기나 들려주라고?



 ........ 나는 잘 지내. 걱정할 필요 따윈 없어
 괜찮아.





*





 .... 그래. 루어를 쓰러뜨린 직후의 상황에 한 번 더 되돌아가볼까? 


 

 그 때 미애가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는 둘로 나눠졌어. 미애와 슬비는 편의점에서 요기가 될 만한 것을 사고 우리들은 루어를 처리해서 기숙동에서 보기로 했어.
 무너진 빵집에서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인형이 되어버린(... 하아.) 루어를 옮겨서, 사실은 너... 의 워먼덱스가 아닌 루어의 워먼덱스였던 시계에 눕혀주기로 결정했지.
 그 시계가 버려진 영화관의 분실물 센터에서 겨우 시계를 찾았지. 아, 그 영화관 여직원에게는 이 사람들은 요즘 잘 나가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둘러댔어. 아아, 정말 위험했지! 하지만 여직원이 정말 순수해서 다행이었어. 



 

 워먼덱스에 루어가 빨려 들어간 후에 우리는 영화관을 나와 한동안 그 근방을 멍하니 둘러보았더랬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걸음이 느린 아이를 둔 엄마의 잔소리. 아직 이 지상에 있고 싶다고 발버둥 치던 해. 본연의 색을 점점 숨기고 바래져가는 나뭇잎. 저 밑에서 우리를 계속 쳐다보던 개미 몇 마리. 


 갑자기 옆에서 우는 소리가 작게, 아주 작게 들렸어. 


 돌아보니 보이더가 애써 울음을 참고 있더라고. 온갖 슬픈 감정을 꾸겨 넣어 가지고선, 그래도 내 앞이라고 참고 있더라고.
 난 말했어. 


 “왜 참고 있어?”
 “에?”
 “왜, 참고, 있냐고.”
 “....” 


 보이더는 입을 다물었어. 보이더는 눈코입을 잔뜩 찌푸린 채로 날 봤어. 왜 그렇게 날 봤을까? 내 눈에 뭐가 묻었을까? 아냐아냐. 아마 내 이마에 뭐가 묻어서 그걸 쳐다보고 있는 거겠지. 안 그러면 보이더가 그렇게 얼굴을 찡그려서 유심히 볼 리가 없잖아?




 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네가 그렇게 울음을 참고 있는데, 내가 울어버리면 안 되잖아?” 


 하지만 이 초능력자에게는 안 통하네. 


 그 말이 던져지자마자 내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나는 느껴 버렸어.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을 네가 가득 채웠지. 어쩌면 너와 함께 걸었을 지도 모르는 이 거리, 어쩌면 아직도 네가 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시계. 그 속에 숨겨진 .. 어떠한 가능성들.


 너를 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 순간들. 



 보이더와 나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어. 우리가 놓쳐버렸던 영혼들을 위해. 우리가 구해지 못했던 영혼들을 위해 울고 또 울었어. 이미 다 끝나버린 건데, 우리는 아직도 그 과거 어딘가에 끌려가고 있는 느낌이 났어. 그 영혼의 얼굴들이 우리 앞에서 웃음 짓고 있네. 그 웃음이 보일 때 마다 우리는.. 더욱 더 소리를 높여 울부짖었지.
 그렇게 계속 울다가 우리가 학교에 안 와서 걱정이 된 슬비와 미애가 찾아와서 그들과 함께 학교로 갔었던 걸 기억해. 그때 잠시 살펴본 미애와 슬비의 얼굴에도 눈물자국이 남아있었어.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눈물 자국이. 



 

*





 이것은 우리가 헤매던 시절의 이야기야.
 우리가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리의 피와 눈물이 묻은 과거는 우리를 꽤 장시간 속박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속박은 잘 풀리지 않아.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지는 것도 있지. 그 아픔에 못 이겨서 결국엔 시들어버리는 꽃들도 있어. 


 뭐, 이런 겉멋 잔뜩 든 소리를 하는 나도 결국은 과거의 쇠사슬에 아파하는 사람에 불과해. 난 아직도 헤매고 있어. 어떤 것이 좋은 것이고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 잘 분별하지 못해. 그저 쇠사슬 때문에 생긴 상처에서 피를 흘리며 휘청휘청 길을 걸을 뿐이지. 네가 봤다면 정말로 꼴사납다며 비웃음 날렸을 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앞을 보며 걷고 있어. 


 내가 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유쾌한 녀석들, 나처럼 쇠사슬에 몸이 칭칭 감기고 피를 흘리면서도 웃으면서 걸어주는 친구들과 내 등을 살짝 쿵 밀어주는 오빠, 그리고 네가 있기 때문이야.



 너에게 전하고픈 얘기가 있어.


 미안.
 난 널 구하지는 못했어.
 그렇다면 적어도, 네가 남긴 부탁을 곱씹으며 살아가야겠지?



 난 정말 괜찮아. 네가 그 말을 나에게 들려주었기에 난 지금 친구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시뻘건 피를 흘리며 휘청 휘청거려도 그 말을 붙드면서 버티고 있어.

 그러니 이렇게 자주 나에게 오지 않아도 돼. 이제는 충분히 나 혼자서 걸을 수 있어. 겨울이 겨우 지나가고 봄이 온 거야. 너도 이제는 너의 길을 가봐. 너의 세상은, 무한이 이어져 있는 걸 알잖아? 


 언젠가 네가 지쳐서 나에게 올 때쯤엔 그때는 웃으면서 그간 지낸 일들을 나누면 좋겠네.
 그럼 잘 가. 몸 조심 하고
 안녕.





-



후아, 완결!!

다음 주에 후기로 찾아올께요!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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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더27. 집착의 버건디(4)



 


 “....... 휴우.”
 눈물이 다시 덧나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정말, 겨우 참았다. 



 

 “한번만 선우에게 손 대봐. 그 멋스러운 대갈통에 헤드 샷을 넣어주지.”

 보이더는 핏방울이 잔뜩 맺힌 목소리로 말했다. 수십 명의 사이보그들을 혼자서 다 처치하느라 몸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었지만 아직도 이글거리는 눈의 살기로는 금방이라도 루어를 죽이고 남았다. 


 

 “어머?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드시네~ 괜찮아? 달링?”
 그렇게 말하는 루어를 보이더는 다시 한 번 째려보고는 나를 바라봤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웃었다. 최대한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근육들을 구부려보았지만, 잘 안되었다. 


 그 때 또 들려오는 바람 소리. 루어의 검은 깃털 검이 나를 향해 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워, 워, 워먼덱스, 방패!!!’이라고 소리쳤다. 내가 끼고 있는 무테안경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더니 잠시 후 내 손에는 커다랗고 동그란 방패가 들려있었다.
 에, 그 주문이 맞았구나.
 “오호. 너 워먼덱스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구나? 개발자로서 이거 기쁜 일인데?”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다.

 워먼덱스가 변형된 방패로 루어의 팔을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 루어의 다리를 발로 찼다. 루어의 중심이 흐트러진 틈을 타 재빨리 일어섰다.
 그리고 넘어지면서 놓쳐버린 총을 들었다. 


 

 ㅡ 보이더. 쟤 불사신이지?
 “그렇댄다.”
 ㅡ 그리고 여긴 나가면 상처가 회복되는 마법의 공간이고.
 “그렇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ㅡ 그럼 지금 저 놈을 죽이면 육체는 빈껍데기만 남는 건가? 상처만 회복시켜주잖아. 루어의 영혼은 없어지는 거지?
 “뭐, 그렇지.”
 ㅡ 보이더, 여기서 나가자.
 “.... 알았어.”
 우리는 이 세상의 루어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둘이서 총을 그녀에게 발사했다.
 '탕, 탕, 탕!'
 총에서 검은 연막과 하얀 광선이 나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루어의 심장을 뚫지는 못했다. 



 “하아. 둘이서 무슨 대화를 즐겁게 하시나? 질투심 생기게.”
 루어는 손에서 새까만 깃털을 마구 날렸다. 우리는 그 깃털들을 다 맞춰 없앴다. 루어와 우리 사이에 뜨거운 불꽃의 막이 둘러졌다.
 “너희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 한번 보자. 어디 끝까지 해보자구!”
 루어는 전보다 더 많은 깃털들을 우리에게 날려 보냈다. 햇빛의 열에 달구어진 공기가 무참히 찢겨나가는 소리가 났다. 어떤 깃털들은 바로 내 앞쪽에서 폭발해서는 나에게 뜨거운 모래를 튀겼다. 몸 상태가 나은 나보다는 보이더가 더 걱정이 되어 그 쪽을 보았더니, 그 피투성이 몸을 가누면서도 거의 모든 깃털을 쏘아 터트리고 있었다. 대단했다.
 아! 이러는 사이에 또 날아오는 깃털이 많아졌다. 



 “선우, 괜찮아?”
 “너나 신경 써!! 지금 나보다 네가 더 위험한 상태잖아.”
 “헤헤...”
 보이더는 실실 웃어 보이더니 갑자기 뭔갈 발견한 듯 나에게 소리쳤다.
 “선우! 깃털 또 더 많아졌어!”
 “알고 있어!”
 나는 깃털들을 쏘고 또 쏘았다. 하지만 깃털들은 계속 내 근처에 떨어져서는 내 다리와 발을 뜨겁게 만들었다. 하아, 끝이 없네. 이렇게 해가지고는 여기서 나가기는커녕 말라 죽을 판이야.... 


 그렇게 점차 집중력을 잃어갈 때쯤이었다. 갑자기 보이더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선우!! 바로, 눈 앞!!!!” 나는 그 소리에 놀라 바로 그 깃털을 발견하고는 몸을 숙여 피했다. 그리고 다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는 씨익- 지었다. 

 


 

 예전보다 힘이 없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 달려 붙어 있는 그 귀여운 목소리.

 이제야 안심할 수 있다.
 나를 구해준 그 목소리, 정말로 그리웠다고!

 

 “리본 소녀!!”
 “슬비,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지금 당장 도와주고... 싶지만 난 이것밖에 못 하겠네..”
 뭔 소리야. 지금 내 목숨을 네가 구했잖아! 그것이 보잘 것 없는 게 아냐!(몸도 성한데.) 슬비에게 마음속으로 대꾸했다.
 슬비가 무사한 것을 보고는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고 빨리 기숙사로 가고 싶어졌다. 문득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빛났다. 

 정면 돌파를 감행해야겠다. 지금 상태로는 루어를 상처 입힐 수 없다. 내가 상처를 입더라도, 그 방법밖에 없다. 




 

 나는 워먼덱스를 장검으로 변형시키고 곧장 달려가기 시작했다. 검은 깃털들이 내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상관없었다. 총으로 쏘면 되니까. 안경을 벗은 탓인지 깃털의 형체가 흐릿하지만 괜찮다. 형태만 분별하면 되니까.
 미처 쏘지 못한 검은 깃털이 내 몸 여기 곳곳에 맞아 터진다. 화약 냄새. 온몸이 상처에 삐걱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난 달렸다. 루어가 바로 앞에 있는 것 같다. 



 “선우!!”
 보이더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루어의 비명도 들린다. 달링! 이거 놔라니까. 죽어도 다알링에게 죽었지 쟤 손엔 죽고 싶지 않아! 시끄러. 선우 빨리!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보이더도 상처투성이다. 아마 다가오는 과정에서 깃털에 맞았겠지.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슈욱-!’
 그리고 루어의 배를 베었다. 



 루어의 상처와 입에서 피가 쏟아진다.
 절대 다른 것으로 대처 불가능한 사람들의 내일을 모조리 뺏어간,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 뼈저린 절망을 안겨주려 했던 그 피가.
 루어는 자기의 상처를 보고는 웃었다. 마치 안에 머금고 있는 새까만 어둠이 밖으로 고개를 내민 끔찍한 웃음이었다. 



 

 “흐흐흐흐으으으으... 하하하.. 하하.. 히히히.. 끄끄끄끅끅끅끅!! 후하하하하하!!! 헤헤헤헤헤.... 쿠하하하하하하하하!!!!!”
 “......” 



 

 얘는 미쳤다. 아니 애초부터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쳤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흐.. 이런 끔찍한 절망을 내게 안겨줘? 마지막 내 숨결을 끊는 것은 다알링 뿐인데.”
 “아. 그거 미안하게 됐수다.”
 루어는 나에게 웃으면서 혀를 날름거렸다. 징그럽게.
 “.. 그럼, 나도 이 아름다운 절망을 너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안 그래?”
 루어는 그러면서 슬비에게로 날아갔다. 루어의 손에는 검은 깃털로 만든 칼이 쥐어져있었다. 



 “힉....!”
 순식간에, 슬비의 목에 그 칼을 대면서 루어는 말했다. 슬비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  


 “너도 나와 같은 절망을 느껴봐 봐! 눈깔 더럽게 사나운.. 찌질ㅇ...”



 

 “그만.” “그만.”
 
 나와 보이더는 동시에 루어를 향해서 레이저와 칼을 박아 넣었다.
 루어에게 말을 건네 봤자 안 통할 것을 알기에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다시 흘러내리는 피. 


 “보이더! 선우!”
 “... 하하하. 하하하. 흐흐...”
 루어는 우리를 보며 기분 나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지친 듯이 보이더에게 눈을 마주쳤다. 이제껏 그녀에게서 보아왔던 그 기분 나쁜 색깔들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됐다.

 왠지 슬프면서도 기뻐 보여. 


 “보이더.”
 보이더는 색깔들을 완전히 잃어버린 루어의 눈동자를 줄곧 바라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제 못 보는 거지?”
 “영원히.”
 그 대답을 듣고 루어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다시는 보지 말자고... 보이더 디르 픽 메르타니.”
 루어는 그런 보이더를 보더니 특유의 미소를 짓고서 숨이 끊어졌다.
 모래 바닥에 루어는 드디어 모든 집착을 버리고서는 쓰러졌다.
  


 


 


 나와 보이더와 슬비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보이더. 슬비.”
 “응.”
 “엉.”
 “다 끝났지?”
 “드디어.”
 “그래. 겨우 끝냈네.” 



 

 보이더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모래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모래바닥은, 신기하게도 뜨겁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안경을 꼈다. 이제야 잘 보인다.
 “둘 다 정말, 정말! 고생했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제일 고생했어. 우리들은 별로 고생한 게 없는 걸.”
 “그래. 리본소녀. 나 때문에 네가....”
 슬비는 그 말들을 듣고 웃었다. 사막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었다. 


 

 “밖에 나가면 뭐 할래?”
 사막의 모래가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일단 뭐 좀 먹자.”
 “그래! 리본 소녀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까. 저번에 선우가 끓여준 우동 사 먹자.”
 사막의 하늘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 너 그 말 몇 번하는 지 아냐?”
 “그래도 먹고 싶은 건 먹고 싶은 거야.”
 “헤헤헤! 좋아. 그거 먹으러 가자! 그리고 나중에 예쁜 옷도 사는 거야!”
 우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막의 모든 것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 검붉은 해도 눈을 감았다. 



 길고 긴 집착의 버건디가 드디어 막을 내리고, 우리는 아무런 색도 머금지 않은 투명한 우리들의 일상에 던져졌다. 




 


-

 


 


최종 보스 레이드 대성공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에게 돌을, 부디 돌을 던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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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더26. 집착의 버건디(3)




 

 헤일로는 그 주먹으로 다시 한 번 나를 향해 공격을 하려고 했지만, 보이더의 총이 헤일로의 손을 저지했다. 한발, 두발, 세발, 네발에 헤일로는 사막 바닥을 뒹굴었고 구를 때마다 철가루가 날렸다.
 “선우! 괜찮아?”
 걱정스럽게 묻는 보이더의 눈에는 다시 분홍빛의 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난 그걸 보고 안심했다.
 다행이다.


 ‘짝, 짝, 짝, 짝!’
 “훌륭한 팀워크!”
 루어는 몸을 일으키면서 박수를 쳤다. 뭘 잘했다고 박수를 치는 거지?
 나는 루어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루어를 기절시키고 한시바삐 슬비를 구해야 된다. 이렇게 우물쭈물 할 때가 아니다. 나는 루어에게 총을 들이대고 쏘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헤일로가 나를 딱 막아섰다. 그의 진분홍색 눈동자가 빛난 것 같았다.
 잠시 동안의 정적. 그리고 뺨에 느껴지는 아픔.
 나는 그대로 또 넘어졌다. 하지만 또 다시 일어났다.
 일어나서 바로 총을 잡고 루어에게 다가갔지만, 헤일로가 또 내 앞길을 막아섰다. 루어는 당황하는 나를 비웃으며 네이비색 눈동자를 나에게 맞췄다.
 ..... 징그러! 하지 마!! 
 “꼬마 아가씨♡ 이 듬직한 총각을 쓰러뜨려 봐요.”
 “........”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선우!”
 보이더가 나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풋.’
 경멸스런 그 웃음소리.


 “정말 너는 바보구나~ 하하하. 헤드폰으로 가짜 감정을 외우고 있을 뿐인 빈껍데기 사이보그에게 반해에가지고 말야아-! 아무것도 풋, 보답 받을 수 없는 주제에 풋, 그래도 사랑한다고 매달리는 꼴이라니! 푸하하하하하!”
 “..........”
 “선우....”
 보이더는 걱정되는 듯이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난 괜찮다. 저 녀석의 궤변이 어쨌든 이제 신경도 안 쓴다.

 ㅡ 보이더. 들려? 난 괜찮으니까 빨리 슬비 구해. 


 나는 보이더에게 내 생각을 집어넣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슬비를 구하는 것이다. 
 “그 녀석의 눈에 건 매력의 핫핑크에 완전히 놀아나가지고는! 완전 꼴사납네에? 그 녀석에게 네 얘기 많이 들었어~ 완전 웃겨죽는 줄 알았다니까아!!”
 “..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넌 천하! 아니, 우주에서 제일가는 바보야! 네 자칭 파트너하고 아주 쌍벽을 이루는구만!”
 나는 루어의 말에 적절히 반응해가면서 보이더를 관찰했다. 보이더는 내 생각을 읽은 듯 천천히 모래사막을 질러 슬비를 확보했다.
 좋았어!
 “그래. 난 사이보그에게 넘어간 천하의 바보 놈이야.”
 “호오, 이렇게 내 의견을 찬성해주다니 정말 의외인데?”
 “뭐.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안 그래?”
 “......”


 루어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슬비를 데려가는 보이더의 기척을 느낀 듯(이런, 들켰나!) 루어는 한 손으로 검은 깃털을 만들어가지고는 보이더에게 던졌다. 보이더는 그걸 보지 않고 들고 있던 총을 쐈다. 검은 깃털은 보이더와 루어 사이에서 불꽃을 내뿜으며 폭발했다.
 “호오. 그럼 이건 어때, 달링?”
 루어는 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여기까지 우리를 몰아넣었던 사이보그들이 슬비를 지키고 있는 보이더를 둘러쌌다.
 쟤들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보이더!!”
 “놀랐어? 내가 만든 올마이티 사이보그는 투명해지는 것이 가능하거든. 물론 그 외의 기능도 있긴 하지만.”
 나는 루어의 말을 흘려듣고 보이더와 슬비가 있는 곳으로 곧장 가려고 했지만 헤일로가 내 앞길을 막아섰다. 


 “어머, 넌 얘하고 싸워야지. 어딜 도망가니?” 



 나보고 헤일로랑 싸워라고? 그 말인 즉은 나보고 죽으라는 말인가?
 루어의 말 한마디에 눈앞이 어두워 졌다.
 휙! 헤일로가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나는 그걸 피하려고 하다가 사막에 넘어졌다. 치이이익, 등에 팬으로 달궈지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뜨거워!
 헤일로가 바로 나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을 단검으로 변형시키더니 나의 목에 대려고 했다. 나는 그런 헤일로의 얼굴에 필사적으로 주먹을 꽂아 넣었다. 가슴이 아려왔지만 어쩔 수 없다.




 ..... 이제 와서 말하는 건 쓸모없는 짓이겠지만,
 지금 너에게 어떻게 해서든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차피 너에게 죽을 거라면 이 말 만은 전하고 죽고 싶다.




 “헤일로. 내가 너를 사랑한 건 정말 그 마법 때문일 지도 몰라.”
 헤일로는 내 말을 듣지도 않은 채 내 목을 움켜잡았다. 숨 쉬기가 힘들어 졌다.
 “컥!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가, 짜, 일수도 있어...!!!”
 헤일로가 단검을 내 목을 향하여 겨누었다.
 ..... 사실, 무섭다. 정말 무섭다. 나는 여기서 죽기 싫다. 나는 여기서 죽기 싫다. 지금이라도 도망가고 싶다. 



 하지만.
 “하지만! 널 사랑했던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아! 앞으로도 그걸 안고 갈 거야, 영원히. 그러니까.....”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설령 이 외침이 너에게 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말만은 하고 싶었다. 


 “정말 사랑했었다고오!!! 바보야!” 


 소리쳤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퍼엉!’


 무언가가 단검에 꽂히는 소리가 났다.



 이상하게도 목에는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내 볼에서 뭔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헤일로..?”
 당황해서 헤일로의 단검을 봤다. 헤일로의 단검은 나의 피를 묻히고 내 얼굴 바로 옆에 꽂혀있었다.
 헤일로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까까지 느껴지던 살기(殺氣)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진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을. 물론 사실은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이 그저 실수때문이라 반론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실수 따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사이보그니까.
 그러니 이것은 확실히 기적이다.

 “헤일로, 돌아온 거지? 맞지?”
 떨리는 목소리로 헤일로에게 물었다. 너 돌아온 거 맞지? 너 내가 알던 헤일로 맞지? 하지만 우리의 헤일로는 대답 따위 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다.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 사이보그의 몸에서는 진한 금속 냄새가 났다. 뭔가가 불에 탄 냄새도 느껴졌다.
 설마.
 나는 순간적으로 헤일로의 배를 봤다. 헤일로의 배는 동그랗게 구멍이 나있었고, 그 구멍에서부터 매운 연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뭐야. 빨리 안 죽이고 뭐하는 거야~? 네가 선우를 순식간에 죽였으면 이런 꼴은 안 났잖아? 앙?” 


 저 멀리서 루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막은 뜨거웠고,
 그 뜨거운 사막 안 겨우 연명하고 있는 내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헤일로는 자기 배에 생긴 상처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기의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왼손으로 그의 빨간 헤드폰을 목에서 빼서는 나에게 씌워주었다.
 MP3에 연결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빨간 헤드폰에서 헤일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선우.
 “....”
 ㅡ 이때까지 정말 고마웠어.
 “....”
 ㅡ 꼭 여기에서 나가서 내 몫까지 살아줘.
 “.. 응!”
 ㅡ 미안. 




 헤드폰에 남아있던 헤일로의 목소리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메시지가 끝남과 동시에 사랑스러웠던 그 기계 소년은 옆으로 천천히 쓰러지며 폭발했다.
 폭발하기 전 기계 소년이 살짝 비춰주었던 미소가, 내 보잘 것 없는 시야를 덮어주고는 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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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를 새로 고침 중.)
 


 ..... 모래폭풍이 일어났다. 뜨거운 것과 모래와 헤일로의 신체 파편이 온데 섞여 나의 몸에 침투해 들어왔다. 몸과 마음이 타버려 사라질 것 같았다. 아팠다. 고통스러웠다. 한시바삐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슈욱-!’
 ... 아픔에만 마음을 쏟은 탓인지, 갑작스럽게 귀에 들어온 바람소리에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여흥은 충분히 즐기셨는지요? 순정 소녀.”
 앞을 보니 루어가 깃털로 된 칼을 들고 나의 심장을 찌르려고 하고 있었다.
 “너는 내가 직접 죽여줄게. 암, 그래야지. 그래야 달링이 날 바라봐 줄 수 있지. 그래야 황홀하기 그지없는 S급 절망의 오오라를 그 아름다운 몸에서 뿜겠지. 나랑 같은 괴물이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나와 달링밖에 없는 희망의 혹성에서, 나랑 같이 사는 거야. 두 괴물의 파라다이스에서 말이지. 너만! 너만 죽으면 말이야, 천하의 인간쓰레기 같은 나라도 그 사람에게 사랑 받을 수 있어!”
 루어의 눈동자는 사람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완전히 괴물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딴 소리를 지껄이면서 루어는 나에게 단검을 찌르려고 했다. 그녀의 혀가 날름거렸다.

 

 죽고 싶지 않다. 지금 내 생명을 하늘에 기꺼이 헌납하고 싶지가 않다. 아직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내 친구들과 꿈과 일상이 날...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가능성이 나에게 손짓하고 있다. 난 가야된다. 주저하면서도 가야한다.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 

 .... 정말, 죽고 싶지 않다.


 ‘휘익!’
 이런 나의 중얼거림과는 상관없이, 루어의 칼이 크게 허공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탕!’


 아.
 그 한 줄기 빛 같은 총성. 루어는 그 하얀색 광선에 손을 맞았다. 루어는 손을 좀먹어가는 자그마한 핏방울에 조소를 흘렸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다알-링?“
 나는 루어의 뒤를 봤다.
 루어의 뒤에 믿음직스럽지 못한 그림자가 한 개.
 표정이 썩은 피투성이 잠옷차림 히어로 보이더 디르 픽 메르타니가 총을 들고 겨우 서 있었다.
 “칫, 잘못 맞췄네.”


-


부연 설명




유전자 MP3 : 어떤 사람의 유전자를 이 기계에 넣고 귀에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꽂으면 귀를 통해 유전자가 뇌로 전달되어 그 유전자의 주인과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의 유전자도 가능.


올마이티 사이보그 : 사람의 모든 장기를 철로 만든 환상의 사이보그. 웬만한 기술 없이는 만들 수 없다. 모든 장기를 철로 만들었지만 특수한 처리를 하면 마치 살같은 보드라움을 얻을 수 있다, 그 때문에 스파이 활동에 투입 되는 로봇이다.
양 손은 단검으로 언제든 변할 수 있고, 투명화 기능도 있다.


€ 매력의 핫핑크
- 인물 특정 마법. 눈을 맞춘 상대방을 본 사람마다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걸린 사람은 마법에 걸린 자를 볼 때마다 언제나, 시도때도 없이 볼이 빨개진다.


-


허울뿐인 감정이라도 소중히 간직해, 이제는 그것이 가짜가 아닌 진실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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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더25. 집착의 버건디(2)


- 약 수위 욕 주의



 

 으아아아, 정말 우리에게 무슨 원수라도 졌냐? 내 기구한 운명에 하이킥을 날리고 싶었지만, 슬비를 위해 입을 꾹 다물고 이를 갈며 내 다리에 힘을 공급했다. 


 “선우. 헉... 빨리, 헉.. 총 꺼내!”
 “헥... 총? 없어!”
 “워먼덱스에서 꺼내면 되잖아! 바보!”
 “헉... 맞네.”

 재빨리 워먼덱스에서 총을 꺼냈다.
 “자, 일단 막는 데까지 막아보자.”
 “오케이!” 


 우리는 바로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보이더는 항상 허벅지 춤에 장비하고 있는 총을 꺼냈다. 그리고 사이보그들에게 총을 쐈다. 하얀 광선이 붉은 눈의 사이보그들을  박살낼 때마다, 사막의 하늘에는 철가루가 휘날렸다.
 나는, 겁에 질려서 겨우 제 앞가림만 했다.
 “우아아.... 정말 무섭게 생겼다. 꺼져!”
 ‘탕! 탕! 탕!
 연기가 휘날림과 동시에 사이보그가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 뒤에 또 다른 사이보그가 나를 향해 뛰어 올랐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제발!!
 하지만 그 사이보그는 나의 겉옷을 물고 넘어뜨렸다. 사이보그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어이 어이 어이, 스톱!
 “이런 짐승!”
 (..... 사이보그는 감정이 없지만..)
 나는 겨우 총으로 그 사이보그를 기절시켰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 도망쳐서 일단 그들과의 거리를 넓힌 다음에 총을 쏘기 시작했다. 잘 안 맞아서 고생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명중률이 높아졌다.
 보이더는 그걸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어-이! 이제 됐어. 도망치자.”
 “도망? 왜!”
 “얘들 너무 수가 많아. 우리가 상대하기엔 벅차! 이 사람들하고 싸우는 건 무리야. 어느 정도 정리했으니까 도망가자고!”
 “알았어!”
 빨리 납득하고 우린 도망가기 시작했다. 뭐, 사이보그들과 거리는 벌려놨으니 당분간은 괜찮겠지.
 우리는 계속 달렸다.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이서 작전을 나눌 시간 따위는 없었다. 사이보그들은 정말 끈질겨서 우리를 지구 끝까지 쫒아올 기세였다. 정말 징그러웠다. 우리를 좀 포기해!
 달리다 보니 언젠가부터 사이보그들의 발소리가 멈춘 거 같았다. 이제야 우리는 숨을 몰아쉬었다. 정말 끈질긴 녀석들이네. 마음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그 무식한 사이보그들에게 소몰이 당해서 여기에 왔잖아. 거기다가 그 사이보그들은 불시에 사라졌어. 마치 짜고 친 것 같이.



 “이제 다 쉬었어?” 


 순간 우리들은 흠칫했다. 너무나도 섬뜩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리라.

 “이 목소리는...”
 

 “설마, 사이보그들을 이용해 우리들을 몰아넣은 거야? 루어.” 


 “하이~ 달링. 그 말씀대로야~”
 루어는 보이더를 보며 말했다.
 루어의 바로 뒤에는 검은 깃털로 된 의자에 기절한 슬비가 앉혀져 있었다. 젠장, 이러면 슬비가 어떤 상탠지를 우리가 알 수 없잖아! 


 (어떻게 보면 우리가 수고를 던 것일 수도 있다. 덕분에 우리는 슬비와 이렇게 마주할 수 있으니까.) 


 “오랜만이야!”
 “그려. 겁나게 오랜만이네.”
 차가운 눈빛으로 루어를 봤다.
 “어이, 좀 따뜻하게 대해주면 안 돼?”
 “무리. 그것보다 슬비를 얼른 내놔.” 


 “돌려줄까? 아이~ 근데 얘가 얼마나 귀여운지 돌려주기가 싫어. 평생 내 것으로 해서 인형의 집에 놔두고 돌봐줄까?” 


 루어는 조금 뒤로 가서 슬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어의 그림자가 걷히고 드디어 감춰진 슬비의 모습이 보였다. 


 슬비의 상태는,
 …….
 처참했다. 배에 있는 큰 상처를 시작으로 꽤 자잘한 상처들이 많았고 잘 못 먹었는지 학교에서 볼 때보다 많이 말라있었다. 


 “리본 소녀..!!” 


 “………….” 


 ‘슥.’
 “선우?”

 루어의 눈앞으로 전진해 그녀에게 총을 겨눴다. 

 내 눈은, 반쯤 풀려있었다. 

 “선우!”

 “죽어.”
 “어머♡ 무서워라.”
 “........”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지 마~ 여긴 어차피 가상의 공간이야. 슬비는 어차피 밖으로 나가면 상처 하나 없어.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  그냥 죽어.
 “어머~ 너는 날 죽이지 못해요. 나도 죽지 못해서 여기에 있을 뿐인 걸.”
 “....”

 “사실 난 너에게서 보이더만 채가면 돼~”
 “보, 이더를?”
 “그래. 달링을 나에게 넘겨 주면 다 끝나는 일이라고? 달링을 넘겨주면 나도 네 친구를 넘겨줄게!"

 "......."


 비겁한 놈.

 사람의 탈을 쓴 악마다, 그녀는. 남의 친구를 갖고 노는 악질이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그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일생동안 고향별에서 배척당한 불길한 마법사, 불사신인 내가! 친구 하나쯤 가져도 되는 거잖아?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죽을 만큼 미움 받더라도, 친한 친구를 만든다는 건 용서 받을 수 있는 행위인 거 맞지?”
 “......”
 “그래서 만들었어~ 워먼덱스를. 보이더랑 둘이서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 그래서 카르텔을 멸망시켰어. 보이더랑 단 둘이 있으려고! 그리고 워먼덱스를 달링의 바보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주었지. 언젠가 이 별에 큰 폭파가 일어난다고 예언자 행세를 하면서 말이야. 그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결국엔 워먼덱스를 받더라고?”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이더를 바라봤다. 이미 보이더의 눈에는 항상 흐르던 분홍색 은하수가 사라져있었다.


 “..... 그,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우리별을 멸망시켰어?”
 “잠시만 다알-링? 지금 내 탓으로 달링의 별이 멸망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럼 누가 우리별을 멸망시킨 건데! 말해 봐. 누가 멸망시킨 거냐고!!”
 보이더가 울부짖었다. 마치 길을 잃은 아이가 우는 것처럼. 루어는 그런 보이더를 보면서 웃은 다음에 네이비 색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네 별을 멸망시킨 건 너야.”


 “..... 나?” 

 “그래. 보이더 디르 픽 메르타니, .”

 “......”

 “생각해 봐. 달링이 없었더라면 내가 달링에게 매달리지 않았을 거야. 달링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내가 나를 닮은 초능력자 찾기에 매달리지 않고 그냥 움츠린 채로 평생을 살고 있었겠지.”

 “....”

 보이더의 눈이 빛을 잃어갔다.


 “하지만 날 조금이라도 닮은 네가 있었기에 난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너와 단 둘이서 이 세상을 살아갈 계획을 짠 거야!”

 절망적인 말.


 

 그 말을 들은 보이더의 손이, 다리가 떨려왔다. 금방이라도 무릎이 땅에 닿을 것 같다.

 안 돼.

 “! 달링의 가족을 죽이고, 별을 파괴한 장본인은! 엄밀히 말하자면 보, , 더 너어라안 말.....”


 퍼억!’

 나는 재빨리 루어의 왼뺨을 주먹으로 쳐서 때려 눕혔다. 루어의 왼뺨이 벌겋게 물들었다.


 “이 미친년이 무슨 소리를 쳐 지껄이고 있는 거야? 지금!!”

 “..... 선우..?”


 “지금 네가 한말 그대로 내가 되돌려줄게. 루어 퀸비, 보이더의 별을 멸망시킨 건 너야.”
 나는, 쓰러져있는 루어의 면상에 다시 총을 들이밀었다.


 “보이더의 잘못이 아니라고. 이 쓰레기만도 못한 여자.” 



 루어는 그런 나를 보고는 상큼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많이 성장했네? 나에게 이렇게 굴 줄도 알고.”
 ‘딱!’ 


 “그럼, 얘한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한번 지껄여봐.”

 루어가 손가락을 튕기자 갑자기 허리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콰탕!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들고 있던 총도 놓쳐버렸다. 내 허리에는 피가 새어나오는 느낌이 들었고 내 눈은 하얗게 물드는 듯 했다.

 ... 나는 이 아픔을 안다.

 “헤일로..”

 내 허리에 주먹을 찔러 넣은 헤일로는 고통스러운 눈빛을 한 나를 보고도 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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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우주적 스토커 망상장애 먼치킨 공순이 최종보스 루어 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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