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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BGM의 중요성






 “박사님, 들리세요? 그 랩글 찾았어요.”

 ‘그래? 그러면 계속해서 처리를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왠지 저기 저 많은 나무 뒤에서 소리가 난 것 같았지만 모른 척했다.


 “피오, 가자!”

 “그래.”


 우리들은 흐트러진 후드를 바로 잡고 바로 전투자세로 바꿨다.

 우와, 두목 랩글 세 명이라니 완전 빡세잖아. 살짝 불안감도 들었지만 나는 일부러 입 꼬리를 올렸다.

 좋아. 이제 다 적응했어. 와 봐!

 

 ‘슈슈슈-슝’


 나를 휘감으려 따라오는 사슬들을 피하며 그 랩글들에게 천천히 따라갔다.

 랩글들의 후드 뒤편에 있는 서슬 퍼런 파란색이 나를 집어 삼키려고 아우성을 쳤다. 사슬들의 공격은 더욱 더 심해져서 눈밭을 뒤엎어 버렸다.


 ‘네가 쉴 곳은 이제 없어.’ ‘ 산산이 부서졌어.’ 듣기 싫었다. 후드로 막은 귀에 손을 더했다. 나는 그놈의 입에 에너지탄을 먹였다.

 에너지탄을 먹은 그 녀석은 그 맛에 감동했는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유언 획득 – 21 : 하지만 여기 있으면, 안전해]

 좋아. 노란 종이 하나 획득.


 나는 피오 쪽을 되돌아보았다. 피오 쪽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촉수를 요리조리 피하는 것이 꽤나 절도가 있었다.

 역시 게임 선배군.


 순간, 그 랩글이 움직였다. 후드 안쪽이 노란 그 랩글이었다. 그 랩글은 피오가 또 다른 랩글과 교전 중인 틈을 이용해 공격해왔다.

 드리우는 어둠과 같이 곧게 뻗어가는 촉수.

 나는 눈밭에 소용돌이를 그리며 에너지탄을 날렸다.

 


 “박사님, 들리세요? 그 랩글 찾았어요.”

 ‘그래? 그러면 계속해서 처리를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왠지 저기 저 많은 나무 뒤에서 소리가 난 것 같았지만 모른 척했다.


 “피오, 가자!”

 “그래.”


 우리들은 흐트러진 후드를 바로 잡고 바로 전투자세로 바꿨다.

 우와, 두목 랩글 세 명이라니 완전 빡세잖아. 살짝 불안감도 들었지만 나는 일부러 입 꼬리를 올렸다.

 좋아. 이제 다 적응했어. 와 봐!

 

 ‘슈슈슈-슝’


 나를 휘감으려 따라오는 사슬들을 피하며 그 랩글들에게 천천히 따라갔다.

 랩글들의 후드 뒤편에 있는 서슬 퍼런 파란색이 나를 집어 삼키려고 아우성을 쳤다. 사슬들의 공격은 더욱 더 심해져서 눈밭을 뒤엎어 버렸다.


 ‘네가 쉴 곳은 이제 없어.’ ‘ 산산이 부서졌어.’ 듣기 싫었다. 후드로 막은 귀에 손을 더했다. 나는 그놈의 입에 에너지탄을 먹였다.

 에너지탄을 먹은 그 녀석은 그 맛에 감동했는지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유언 획득 – 21 : 하지만 여기 있으면, 안전해]

 좋아. 노란 종이 하나 획득.


 나는 피오 쪽을 되돌아보았다. 피오 쪽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촉수를 요리조리 피하는 것이 꽤나 절도가 있었다.

 역시 게임 선배군.


 순간, 그 랩글이 움직였다. 후드 안쪽이 노란 그 랩글이었다. 그 랩글은 피오가 또 다른 랩글과 교전 중인 틈을 이용해 공격해왔다.

 드리우는 어둠과 같이 곧게 뻗어가는 촉수.

 나는 눈밭에 소용돌이를 그리며 에너지탄을 날렸다.

 

 ‘슉!’


 하지만 그 랩글은 자기 주위에 노란 보호막을 치고는 나를 향해 우레를 내렸다. 그리고 에너지탄은 보호막에 튕겨서 다른 랩글에 명중했다.

 ‘그’ 랩글이 나를 노린 덕분에 피오는 살았다. 다, 다행이다.


 [유언 획득 – 20 : 너만 힘든 건 아냐. 다들 힘들어. 그러니 넌 참아야 돼. 계속]

 [현재까지 누적 랩글 경험치는 280입니다]

 

 “으으······.  형 괜찮아?”

 “괜, 괜찮아. 어떻게든 뭐..”

 

 우레를 맞았는데 별로 찌릿찌릿한 느낌도 안 들고 그냥 온 몸이 저린 느낌만 들었다,

 뭐지, 난 후드만 입고 있었는데.

 피오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이를 갈았다. 안되겠어. 안에서 용암 끊는 소리가 났다.

 보기 드물게 매서운 눈초리를 한 동생은 가시가 잔뜩 박힌 에너지탄을 냅다 내 쪽으로 날렸다. “형 받아!” 

 히익!

 

 “야! 뭐야!”

 “미안, 하여튼 받아봐!”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위로 들어 올려서 에너지탄을 발사했다.

 하얀 눈사람이 쏘아 올린 작은 에너지탄은, 순식간에 그 크기를 불리며 가시공 에너지탄과 만나서, 마침내···

 

 ‘쿵, 콰지직!’


 커다란 눈사람이 되어 랩글을 깔아뭉갰답니다. 

 

 “오, 와아아아. 쩐다. 이걸 지금 우리 손으로 발사한 거야?”

 “잠시만, 온다.”

 갑자기 한기가 들었다.

 그 랩글이 내 목을 노리고 손을 뻗고 있었다.


 ‘꽈악!’

 “커헉! 끄으··· 무슨 손힘이 이렇게 세?”


 그 커다란 눈사람을 얼굴로 들이 받았는데, 아직도?

 나는 그 랩글의 손을 잡고,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쳐보았다. 옆에서 피오가 날린 검은색 에너지탄은 아쉽게도 그 랩글에게 맞지 않았다.

 

 ‘큐비츠! 엄마, 아빠. 내가 왜 이런 모습이 된 거야? 말 좀 해줘! 내 가까이에 있잖아.’

 “끄으으..”

 ‘왜! 왜! 왜! 항상 곁에 있으면서!’

  

 숨이 점점 부족해졌다. 하늘이 노랗게 되었다. 빨라지는 고동. 심장이 산소를 원하고 있다.

 이것은 가상? 현실?

 왜 이렇게 감촉이 리얼한 거야.


 퍽!

 갑자기 울려 퍼진, 살과 쇠가 맞닿는 소리에 나는 랩글의 주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헉, 헉······. 헉······. 후아. 사, 살았다.”


 나는 갑자기 울려 퍼진 소리의 근원에 눈길이 멈췄다. 흰색, 검정색, 노란색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밝은 남색.

 큐비츠가 두 손에 쇠 국자를 꼭 지고 서있었다.


 “야, 네가 여길 어떻게!”

 “오빠, 오빠지? 역시 오빠 맞지?”

 ‘큐비츠.’

 “이 사람 때리지 마. 좀 성질 못된 놈이지만 그래도 때리지 마! 응?”

 

 누가 성질 못됐대? 


 ‘말리지 마! 이제 난 거기로 못 돌아가! 어차피 나쁜 사람은 누가 뭐래도 나쁜 놈이야!’


 그 랩글은 이를 갈며 사슬을, 검은 살기를 두른 촉수를 마구 날렸다. 우리들이 검고 하얀 에너지탄을 날려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방해하는 녀석은 전부 날려버릴 거야. 방해하는 녀석은 전부! 너조차도!’

 ‘크아아아-!’ 


 그 랩글은 마치 자포자기한 듯이 울부짖더니. 그리고는 손을 뻗어 자기 동생 큐비츠의 목덜미에 손을 대었다.

 안 돼. 아무리 그래도!

 나는 순간적으로 큐비츠를 막아서고 에너지탄을 먹이려 했다. 그리고 내 에너지탄과 랩글의 손이 맞닿으려고 하는 순간.


 ‘콰지지직!’


 갑자기 하늘에서 우레가 내리더니 랩글이 쓰러졌다. 

 

 “휴우, 늦지 않았네? 다행이야.”

 “자네들이 쓰러질까 조마조마 했네.”


 박사와 메리가 하얀 백의를 펄럭이며 팔을 교차시키고 있었다.



 

 “큐비츠! 그렇게 나가면 어떡하니. 걱정했잖아!”

 “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큐비츠는 쇠 국자를 마치 엄마 손 마냥 꼭 붙잡고 있었다. 눈에는 눈물을 매달고, 

 원목냄새가 빵 냄새와 함께 손을 잡고 블루스를 추는 가게 ‘밀브랫’에서 초록색의 남자는, 네모난 턱에 손을 괴고, 눈을 대각선으로 세워가며 화를 내고 있었다.

 

 “큐앤에이씨, 하나밖에 없는 딸을 이렇게 위험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정말이지 참, 심장 쫄깃하더군요. 다시 그 참극을 겪는 줄 알았습니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그 때 일을 또 떠올리게 해드려서.”

 

 콧방귀를 끼는 큐앤에이씨를 앞에 두고, 박사와 메리는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큐앤에이씨는 그런 박사와 메리를 보고 손을 내저었다.


 “아아, 고개 드십시오. 그렇게 까진 안 하셔도 됩니다. 어쨌든 제 딸도 무사하지 않습니까?”

 “고맙습니다.”

 “모든 건 이 녀석이 멋대로 벌인 짓이지요. 안그러냐, 큐비츠?”

 “그렇지만! 그 랩글 진짜 오빠를 닮았다고······.”

 “그래, 그래. 얘기는 천천히 들을 테니. 다음부터는 그렇게 막 위험하게, 막 어디 밖에 나가는 거 아니다?”

 “네. 명심할게요.” 


 큐앤에이는 큐비츠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하얀 손은, 육안으로 볼 때에도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 괴로우실지도 모르겠지만 벤저민 군이 사라지기 전까지, 벤저민 군이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혹시 말씀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 그건······.”


 큐앤에이씨는 조금 슬픈 표정을 하더니, 가게 출입구에 걸려있는 커다란 액자에 걸려있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큐비츠, 큐앤에이씨, 벤저민, 그리고 그들을 뒤에서 안고 있는 의문의 여성.

 

 “아내가 죽고 나서, 벤저민은 조금 풀죽어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저희들에게 숨기는 것도 많아졌고요. 참 바보같이 밝은 아이였는데.”

 “네.”

 “그런데 어느샌가 벤저민은 저희에게서 멀어져갔어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벤저민이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도둑질도 하고요.”


 “아··· 어떤 것을 훔쳤다고 소문을 들으셨나요?”

 “뭐, 빵이나, 옷가지 종류입니다. 상점가에서 3명이서 조를 짜서 체계적으로 움직였다고 하더군요. 저는, 저는, 그 소문 믿지 않았습니다.”


 “벤저민 군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요. 정말 순수한 아이였거든요!”

 “오빠는 원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설령 한다고 해도 뭔가 사정이 있을 거에요. 그, 나쁜 사람들이 오빠를 끌어들였거나!”


 메리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큐비츠는 정말 자기가 항변하듯이 소리치며 외쳤다. 큰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고 더욱 더 반짝거렸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벤저민이 정말로 도둑질을 했다면, 벤저민이 길을 잘 못 들어선 것도 사실이지요.

 제가 후회하는 것은, 벤저민이 행방불명되기 전 왜 그 아이의 상처에 눈치를 채지 못했을까 입니다.”

 

 큐앤에이씨는 정말로 비통한 듯한 눈빛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 녀석의 부모면서, 결국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해주고. 그 애가 잘못된 길을 걷게 한 것은, 저일지도 모르겠군요.”


 큐앤에이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가게 출입구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은 그런 큐앤에이씨의 마음도 모른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때.

 내 목덜미가 갑자기 아파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목, 이··!”

 “지오군, 괜찮은가? 어디 아픈가?”


 “괜찮아요. 약간 따끔따끔할 뿐이에---”

 “괜찮은가? 혹시 몸이 아프다면 2층을-----”


 갑자기 빛을 발하는 목덜미의 손자국. 뭐야! 이거. 아까 그 랩글에게 공격당했을 때 생긴 건가?

 내 목에 새겨진 손자국은 엄청난 빛을 내뿜으며, 나를 둘러싼 모든 세계를 점차 하얗게 물들여갔다.

 그리고 얼마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보라색 하늘이 아니라, 물을 머금은 종이색 스케치북이었다.

 

 응?

 여긴?

 아무도 보이지 않는 세계. 피오도, 박사도, 메리도, 큐비츠도, 큐앤에이씨도.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어렴풋이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

 지금 이 스케치북에서 나를 보고 서있는 이 사람은 노란색의 망토로 몸을 감싼, 단발의 한 남자아이.

 

 “반가워.”


 그 말과 함께 어딘가에서 들려나오기 시작한 것은, 게임에서나 흘러나올 듯한 노래.

 칩튠과 바이올린이 구슬프게 울려퍼지는 게임의 BGM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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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er.go 랩글 경험치 280

player.po 랩글 경험치 300  




* 현재까지 모은 유언


20 : 너만 힘든 건 아냐. 다들 힘들어. 그러니 넌 참아야 돼. 계속

21 : 하지만 여기 있으면, 안전해

25 : 난 여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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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풍문으로 들었소.






 머리의 검은 리본을 단 그 소녀는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서는, 박사의 뒤에 숨어버렸다.

 

 “얘, 왜 이래요?”

 “낯을 많이 가리거든. 더군다나 요즘엔 이 타운에 어린애들도 별로 없으니까, 아마 피오군 외에 자기 또래를 보는 건 오랜만이라 그럴걸?”

 “큐비츠, 이러면 안 돼. 인사해야지. 응?”

 “······. 네.”


 큐비츠라 불린 소녀는 박사의 허리춤을 붙잡고는 몇 번의 눈 깜빡임 끝에 겨우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 큰 눈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 안녕? 지오라고 해.”

 “아, 아, 응.”

 

 큐비츠의 어깨가 움츠려들었다. 뭐야,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아닌데.


 “무슨 일인가? 큐비츠,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오고.”

 “아, 저 상담할게 있어서요! 오빠하고 랩글에 관한 거에요!”

 “랩글하고······ 자네 오빠?”

 “네!”


 큐비츠의 눈빛이 갑자기 사람 하나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변했다. 뭐야, 얘 무서워. 갑자기 눈빛이 확확 변해. 


 “큐비츠, 우선 1충 연구실에서 이야기 나눠보세. 진정 좀 하고.”

 

 박사는 흥분한 큐비츠를 진정시키고 1층 연구실로 들어갔다.

 우리의 트레이딩은 뭐, 쫑난 거지.


 메리가 큐비츠에게 만들어준 핫초코를 마시며 큐비츠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그녀는, 연구실 칠판에 그려진 랩글 그림을 보고 눈을 때지 못했다.


 “큐비츠. 큐비츠!”

 “아. 네?”

 “그래서, 그 랩글하고 오빠하고 관련된 일이라는 것은 무슨 일인가?”


 큐비츠는 한동안 멍한 상태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 안 믿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랩글 중에서 저희 오빠가 자주 하던 행동을 하는 애가 있어서.”

 “랩글 중에?”


 “네··· 이상하게 요즘 제가 오빠가 절 부르는 환청을 많이 들어요. 아마 제 방 서랍에서 예전 가족사진을 발견했을 때부터 들렸던 것 같아요.

 그 가족사진 책상 밑에 들어가 버려서 이제는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아마 엄마가 찾았겠죠?”

 

 큐비츠는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어떻게 해서 그 랩글하고 만나게 되었는가?”

 “사실은, 저 오빠가 행방불명된 뒤로 마을 밖에 종종 나간 적이 있었어요.”


 “랩글이 있는 바깥은 위험한데?”

 “환청이 들리고 난 후로, 아주 가끔 제 집 뒷마당에 한 랩글이 찾아와선 아무것도 안하고 돌아가요.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래서 그 이후로 종종 밖에 나가게 되었다고?”

 “네.”

 

 혹시라도 랩글이 오빠랑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3년 전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된 오빠 벤저민의 단서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큐비츠는 마을 밖 랩글을 관찰하고 다닌다 했다.

 맨몸으로.


 “위험하다니까! 그러다 너까지 없어지면 너희 부모님은 어쩌시려고?”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적어도 오빠가 왜 사라져야했는지 이유는 알고 싶었으니까.”

 “그렇군. 그러다가, 그 랩글을 만나게 된 건가?”

 “네. 어떻게 하다가, 제가 유난히 나무가 많은 깊은 곳까지 파고 들었는데 그때 제 집 뒷마당에 나타나던 랩글을 만난 거예요.”

 “큐비츠, 네 말로는 그 랩글이 너희 오빠랑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오빠 본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그걸 확신할 수가 있지?”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고 있었거든요. 그게 오빠의 버릇이에요.”

 “브이?”

 “그 상황에서 브이라니, 아마 완전히 미쳐버린 게 틀림없어요.”


 눈에 손가락을 가져가서는 옆으로 누운 브이 자를 만드는 것.

 기쁠 때에나 슬플 때에도 큐비츠의 오빠는 항상 그 제스처를 취했다고 했다.


 “손가락 브이 자로는 그 랩글이 자네 오빠와는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가 없지 않나?”

 “다른 랩글은 멍하니 걸어 다니거나 배시시 쪼개기만 한다구요! 아마 그 제스처를 취할 수 있는 건 그 랩글만의 특징일 거예요.”


 무릎을 내리친 큐비츠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 랩글에 가까이 갈 때마다 자꾸 저를 부르는 환청이 세지거든요.”


 큐비츠. 큐비츠. 큐비츠. 큐비츠. 큐비츠. 큐비츠. 큐비츠. 살려줘. 큐비츠. 큐비츠. 큐비츠. 큐비츠. 오지 마. 큐비츠. 

 공포였다.


 “음. 그 랩글이 모종의 이유로 자네의 오빠와 관계가 있는 건 맞는 것 같구나.”

 “도와주세요. 박사님. 어쩌면 저희 오빠를 찾을 수도 있잖아요. 네? 저 3년 동안 저희 아빠 힘들어하는 모습만 봤어요.”

 “.......”

 “진짜 조금이라도, 오빠를 볼 수만 있다면 상관없어요. 저희 아빠에게 오빠가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네? 제발요!”





 그래서 우리는 해가 산중턱에 걸쳐있는 바로 지금, 랩글과 열나게 싸우고 있다. 그것도 내가 처음 게임으로 떨어진 곳에서.


 이게 뭐야.

 

 “형, 어제 배운 거 기억나지? 잘 생각해서 싸워야 돼?”

 “알고는 있어! 흡수가 안돼서 그렇지!”


 어제 큐비츠를 돌려보낸 후 우리는 중단된 트레이닝을 무사히 완료했다.

 에너지탄을 어떻게 쏘는 지도, 바이오 리본의 능력치에는 뭐가 있는 지도, 다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갑자기 실전에 던져지게 되다니,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난 준비가 안됐다고!


 “형, 조심해! 조금만 방심하면 머릿속으로 환청이 들이닥치니까!”

 “알았어! 그러니까 말 좀 시키지 마!”

 

 ‘네가 미워! 우리가 전부 이렇게 된 건 너 때문이야.’

 ‘사라져! 제발 여기서 사라져!’

 ‘미워. 미워. 미워. 이 세상이 미워, 너도 미워, 지금 이런 말을 하는 내가 가장 미워.’

 

 랩글들의 합창이 시작되었다. 우와, 이거 머리 아파. 나는 최대한 그들의 합창을 무시하고 그 시끄러운 복부에 에너지탄을 박아 넣었다.

 하얀 눈밭 위에 하얀 종이쪽지가 휘날렸다. 칫, 노란색이 아니잖아. 그렇다면 별 의미가 없었다.


 ‘오지 마. 오지 마. 제발 나에게 오지 마!’

 ‘싫어. 아직 죽기 싫단 말이야.’

 ‘엄마, 아빠! 어디 있어? 나만 두고 가지 마!’ 

 

 [랩글 경험치가 120 증가. 현재 랩글 경험치는 총 120입니다.]


 후드를 써서 귀를 막아 봐도 고막을 뚫고 들어오는 녀석들을 에너지탄으로 처리했다. 바이오 리본의 시스템 보이스가 경쾌했다.


 됐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뭐, 너무 갑작스런 면도 있었지만, 이 정도는 봐줄 수 있다.

 무엇보다 에너지탄을 발사하는 손맛이 예술이었다. 

 

 “야, 이거 재밌네.”

 “그치? 나 처음에 이 에너지탄을 날릴 때의 손맛을 잊을 수 없다니까?”

 “그건 그렇고, 여긴 약한 애들 밖에 없나?”

 “그런 것 같네. 일단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우리들은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았다. 하얀 눈밭에 무수히 많은 하얀 종이가 눈처럼 녹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노란 종이는 보이지 않았다.

 

 ‘네가 미워! 우리가 전부 이렇게 된 건 너 때문이야.’

 ‘싫어. 아직 죽기 싫단 말이야.’

 ‘엄마, 아빠! 어디 있어? 나만 두고 가지 마!’ 


 “아, 놔. 복붙 진짜 싫어.”


 아까부터 똑같은 소리만 지껄이고 있는 애들에게 에너지탄을 꾸역꾸역 먹이고 있던 찰나에 곁에서 꽈당 소리가 났다.

 피오가 엉덩방아를 찧는 소리였다.

 

 “야, 뭐야. 너 벌써 쫄았냐? 벌써부터 쫄면 안 돼. 엔딩까지 갈 길이 멀다고.”

 “아니, 형. 저것 봐.”

 “뭐. 어디 있는데?”

 

 피오가 말없이 가리킨 곳은 연보라색의 하늘이 드디어 하얗게 표백되는 그 시점이었다. 

 그곳에 검은 인영(人影)이 여러 개.

 남들보다 커다란 그림자 두 개는 새디족의 우두머리 랩글의 것. 그리고 유난히 짙은 오라를 뿜어대는 그림자 한 개는······.


 ‘큐비츠. 큐비츠. 엄마. 아빠.’


 큐비츠가 말했던, 그 랩글이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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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설명은 SKIP해줘야 제맛이야. 안 그래?




 피오는 카페를 나온 다음, 나를 또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광장 위 하늘에 흐르는 무지개색 파티플래너가 예쁘진 않고 그냥 볼만했다.

 광장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베이지색의 한 건물이었다. 프리즘타운의 마을회관. 마을의 모든 서류 업무들은 이곳에 모인다고 해도 좋다.


 아마 무지개색 차양이 없었다면, 그리고 피오가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난 이 따분한 건물이 마을 회관인 줄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여기서 아마 형 카드 만들 수 있을 거야.”

 “카드?”

 “응. 있잖아. 현실에서 말하는 체크카드 같은 거. 프리즘타운에서는 그게 없으면 모든 서류 업무가 안 돼.”

 “그래?”


 마을 회관에 들어서며 피오는 말했다. 기관총으로 야구공을 쏘는 듯한 소리를 뒤로 하고, 피오는 나를 가장 안쪽 창구로 끌고 갔다. 그쪽이 카드 만드는 곳인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카드 만들려고 오셨어요?”

 “네. 여기 이 사람 카드요. 새 카드로요.”

 “여기 항목 적어주시고, 다 하시면 저에게 주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직원에게서 받은 서류를 쭉 훑어보고 일련의 항목들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이름. 나이. 성별. 생일. 가족관계. 그리고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

 

 “야. 여기 왜 좋아하는 것을 적어라 돼있냐?”

 “그거 여기의 복지 사업 중 하나인데 자신의 생일 때 자기가 좋아하는 게 배달되거든.”

 “좋아하는 거?”

 “응. 좋지 않아? 형 조금 있으면 생일이잖아.” 


 그렇긴 하다만은. 딱히 그렇게 특별히 좋아하는 건 없는데···. 뭐 적지?

 아. 퍽퍽한 에그타르트라도 적어놓지, 뭐.


 “넌 뭐 적었냐. 좋아하는 것에.”

 “아, 그거?” 


 나는 다 쓴 서류를 직원에게 내고 피오에게 물었다.


 “나는 후드레인저 실버!”

 “실버?”

 “좋잖아. 후드레인저 실버! 처음 변신했을 때에 완전 바이럴아크 씹어 먹었잖아. 걔가 스케이드보드를 타면 은색 회오리바람이, 막. 휘유우우우웅! 장난 아니었지.”


 후드레인저.

 남자 셋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사이보그 슈퍼히어로. 나와 피오가 옛날부터 좋아했던, 10년째 방송 중인 히어로 애니메이션이었다.

 처음에는 정의의 ‘정’자도 모르는 어린 사이보그들이 점차 인간의 사랑을 알아가고, 고난도 겪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갈라서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화해도 하며 훌륭한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였다.

 우리들은 그들의 이런 모습에 반했었고, 지금까지 응원해왔다. 

 근데, 피오가 좋아하는 게 후드레인저 실버였구나. 난 여태까지 핑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카드 만들려면 약간 시간 걸리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고유 번호를 만들어야 돼서요.”

 “네.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네요.”

 “네? 뭐가요?”

 “여기 있는 이 분 말고, 나이가 어린 사람 중에 프리즘타운에 등록하신 분이 한동안 없었거든요.”

 “그래요?”

 “다들 저 남쪽에 있는 어브타운으로 몰려가는 실정이라, 애들 보기가 어렵네요. 거기다가 우리 타운 밖에는 괴물들이 득실득실하고.”

 

 직원은 쓴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가다간 이 프리즘타운도 사라질 판이네요. 하하. 제 고향인데. 나는 그 웃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을회관을 나와서 연구소가 있는 상점가로 향했다. 투명유리 번쩍번쩍한 서점, 갖가지 옷을 팔고 있는 옷가게.

 순간 커다란 우유가 그려진 가게에서 한 소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눈을 돌렸다.

 

 연구소에 돌아오니, 박사와 메리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다네.”

 “다녀왔습니다. 아, 그리고 지오 형 카드도 만들어왔어요.”

 “아, 말 안 해도 하고 있었군. 사실 깜빡하고 있었는데.”

 “또 까먹으셨어요? 정말, 피오 아니면 어쩔 뻔했어요?”

 “아, 때리진 말아주게. 메리.”


 겉모습은 아직 어린 애인데, 속은 완전히 노인이구먼.


 “여하튼 두 사람 모두 수고했어! 우리 저녁 먹자. 그리고 쉰 다음에, 지오는 나중에 2층으로 와줄래? 훈련해야 될게 있어서.”

 “네. 근데 훈련이라뇨?”

 “바이오 리본에 기본적으로 달려있는 기능도 익히고, 에너지탄 연습도 해야 되니까.”

 “아! 그거라면 저도 도와줄게요.”

 “그래주겠나? 그러면 나야 고맙지.”

 

 박사와 메리가 준비한 저녁은 스테이크 샌드위치였다. 되게 맛있어보였다.

 다만 식빵이 내 손에서 색을 잃어가는 건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큼지막한 고기도, 식빵도, 메리가 준 바나나 우유도, 내 안에서 다 시들어버렸다. 피오가 나눠준 블루베리 파이도 내 안에서 다 시들어버렸다. 마치 내가 만지기만 해도 색을 빼앗아버리는 메두사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색을 빼앗기는 것은 생기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느꼈다. 마치 희미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처럼.

 뭐, 그렇다고 저녁이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



 2층의 계단을 올라가니 도착한 그곳은 설국이었다. 아니, 진짜. 벽도 바닥도, 시계도. 다 새하얀 세계였다. 창문도 없어서 더더욱 그랬다.

 뭐야. 여기는 도화지냐. 무슨 피아노 흑건(黑鍵)까지도 하얀 거냐. 원래는 검은 거잖아.


 아니 그건 그렇고, 왜 여기에 피아노가 있는 거냐고. 훈련장인데!

 

 “지오군, 피오군이 서있는 것처럼 저기 검은 박스 안에 서보게. 그리고 그곳에 서서 바이오 리본을 만져보게.”

 “네.”


 난 피오의 옆에 있는 네모난 검은 박스에 서서 바이오 리본의 하트 장식을 만졌다.


 [트레이딩 모드 작동]


 윤지오 – player.go

체력 10

공격력 1

방어력 2

인내력 10

랩글 경험치 0


 이게 스탯 창인가. 나 완전 약하네.

 나는 하얀 박스에 달린 엑스표시를 눌러서 박스를 껐다. 박스를 끄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3명의 랩글이었다.

 후드의 안쪽이 노란 랩글, 후드의 안쪽이 푸르스름한 랩글, 후드의 안쪽이 빨간 랩글.

 완전히 후드레인저였다. 핑크만 빼고.

 

 “이거 그냥 양산형 후드레인저잖아. 어우, 위화감 들어.”

 “우와, 저번에도 그랬지만 정말 쓰러뜨리기 싫다. 누가 이런 괴물을 만들었냐? 내 히어로들이 망쳐진 느낌이야······.”

 “내 말이.”

 

 ‘아아. 지오군, 들려? 지금부터 스탯에 대해서 설명을 할께.’

 “응? 메리? 메리 목소리가 왜 리본에서 나오는 거지?”

 “아, 바이오 리본엔 박사하고 메리하고의 통신기능도 있어서 그래. 전엔 나도 깜짝 놀랐었지.”


 ‘여기서 말하는 공격력은 에너지탄의 공격력을 말해. 에너지탄은 에너지탄을 쏘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속성과 공격력이 결정되어지지.‘

 “오.”


 ‘방어력은 말 안 해도 되겠지? 이 방어력이 높으면 아무리 상대가 공격해도 너에게 피해가 안 갈 거야.’

 “오.”


 ‘마지막으로 인내력. 

 이 인내력이 높으면 나보다 센 상대에게 공격을 받아도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으니까, 어떤 돌발 상황이 와도 괜찮을 거야.’

 “오.”

 

 아, 귀찮아. 귀에 안 들어와.

 

 ‘잠시만, 지오군. 내 얘기 흘려듣고 있지?’

 “네.”

 

 메리의 한숨 소리가 리본으로 전해져왔다.


 ‘어휴. 그래. 이해 못하는 건 알겠는데, 너 그러다 괴물에게 맞아 죽어도 난 모른다? 한 번뿐인 목숨을 소중히 해야지. 안 그래?’

 ‘화 좀 풀게. 메리. 뭐, 여긴 게임이지 않나. 게임이라고. 게임 오버 당해도 이어서 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설명은 누가 해도 지루한 법이지.

 나도 너무 긴 설명은 스킵 하는데.’

 ‘메타발언 그만하시죠? 진짜 때립니다?’

 ‘······. 때리지 말아주게. 메리님.’ 


 이 꽉 깨문 메리의 소리와 그걸 말리는 박사의 오들오들 떠는 목소리가 우스웠다. 참, 누가 상사고 누가 부하인지.


 ‘참고로 그 후드를 쓰고 있을 때에만 에너지탄이 나온다네. 후드와 바이오 리본이 연결되어 있거든. 그렇게 알게.’

 “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피오와 같이 저기 저 랩글을 처치해보게. 쉬울 거야.’


 나는 곧바로 전투자세를 취하고 앞에 있는 랩글 세 마리를 바라보았다.

 랩글 삼형제도 앞에 있는 우리들을 의식한 건지 기분 나쁘게 웃어 보였다. 


 “형, 내가 여기 이 랩글 맡을 테니까 형은 거기 있는 랩글들 부탁해.”

 “그래.”

 

 피오는 후드 안쪽이 빨간 랩글을 맡고 내가 나머지 랩글을 맡기로 했다.

 아. 드디어 에너지탄을 쏠 수 있게 되는구나. 나는 신이 너무 난 나머지, 검은 박스를 벗어나서 랩글을 쓰러뜨리려 했다.

 

 ‘벌컥’

 ‘타다다다!’


 그 순간, 연구실의 문이 열렸고 나무계단 특유의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박사님!”

 ‘!’

 “누, 누구신가?”

 “저에요! 큐비츠!”

 

 계단을 올라와서 박사님에게 말을 건 사람은 긴 포니테일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우유 상점 같은 곳에서 나를 쳐다보던 그 소녀였다. 


 뭐야. 이제 막 재밌어지려던 참이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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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탐구 소년단.rpg

3. 어서 와! 프리즘타운은 처음이지?





 "다녀왔습니다!"

 "아, 피오군. 다녀왔나?"

 "네. 빵하고 우유도 좀 얻어왔어요. 신상품이 들어왔대요. 한번 드셔보세요."


 갑자기 연구소 방의 문이 벌컥 열리며 피오가 들어왔다.


 "뭔데, 이 검은색 우유는?"

 "새로 얻은 숲의 열매로 만든 거래요. 또 이건 블루베리로 만든 파이구요."

 "블루베리? 그게 뭐지? 처음 듣는구나."

 "어떻게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저씨 말로는 자기 텃밭에서 기른 거래요."

 "흥미롭군. 나중에 한번 맛보지."


 "아. 피오군, 지오군이 같이 랩글 처치를 도와주기로 했어! 굉장하지?"

 그 말을 들은 피오는 서서히 눈이 커졌다.

 "진짜요?"

 "그럼. 방금, 바이오 리본을 건네준 참이네. 피오군. 나중에 지오군에게 에너지탄 사용 방법을 알려주지 않겠나? 마을 구경도 좀 시켜주고."


 "네. 안 그래도 형하고 이 프리즘타운을 한 바퀴 도려고 했는데! 잘 됐네요.」

 그리고 피오는 나에게 다가와 두 팔을 벌리고 꼭 껴안았다. 

 "형, 고마워. 이렇게 형이 도와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얘 보쇼?


 "그냥, 뭐. 어쩌다. 너 혼자 두기도 그렇잖아?"

 "에이, 부끄러워하기는! 속으로는 걱정 엄청 많이 하면서. (그렇게까지 많이는 안 하는데.) 이제는 같이 싸우는 거니까 형이 나를 지키고, 내가 형을 지키는 거야."

 "어? 어···. 어."

 "절대로 내 곁에 있어야 돼? 먼저 죽거나, 나 놔두고 가거나 그러면 안 돼?"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안 해."


 피오가 내 대답을 듣고는 내 허리에 더욱 더 밀착한 뒤에 볼을 부비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많이 고생을 한 모양인지 평소 하지도 않던 스킨십을 해대는 피오를 보며 나는 그저 그 작은 머리를 만져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피오는 내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보면서 살짝 나를 보고 웃고는, 갑자기 내 두 손을 잡아 끌었다.


 “형. 지금 빨리 가자!”

 “응. 어어······. 야, 잠깐만. 어디 가는데?”

 "아까 말했잖아? 마을 구경 한다고. 알고 있었으면서!"

 "그야, 알고 있었지만···."


 피오는 내 팔을 붙잡고 빠른 걸음으로 연구실을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박사님, 메리! 다녀올게요! 피오는 둘을 향해 연구실이 흔들릴 만큼 큰 소리로 말하고는 문을 나섰다.

 박사와 메리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뭐냐, 너. 이렇게 애교 많은 애였냐? 


 “피오. 음, 미안한데 조금만 떨어져주면 안될까?”

 “응?”

 “아주 조금이면 되니까 일단 팔짱은 풀어주라.”

 “그치이만! 좋은 걸 어떡하라고오. 진짜 형이 올 줄은 몰랐단 말이야아.”


 피오는 꽉 잡았던 내 손을 놓고, 이번엔 몸을 배배 꼬았다.

 그래. 피오야 너 게임에서 되게 고생한 건 알겠는데, 말 좀 늘려서 말하지 마.

 오글거려. 완전.


 “네네. 알았어요. 나중에 또 팔짱 해줄게.”


 나는 피오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허공을 걷는 듯한 피오의 발은, 프리즘타운의 무지개 표지판을 향해 달려갔다.



*


 

 게임이나 영화 속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는 것.

 최근에 생긴 꿈이었다.

 캔 속의 인간이 열어젖힌 슈퍼히어로의 세계라든가, 능력치만 보면 엄친녀인 버섯공주가 어째 매일 납치당하는 세계라던가.

 바보같이 착한 괴물만 있는 지하 세계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하품만 나오는 봄바람 찬란한 세계라던가.

 그런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다면 당장 들어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게임 세계에 들어올 줄이야.


 덕분에 나와 피오는 이 게임 세계에서 룰루랄라 즐겁게 놀고 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스칠 일도 거의 없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있다.

 내 꿈을 이룬 것도 모자라, 평소에 친해지고 싶었던 피오와 이렇게 둘이서 게임을 하게 되다니, 더할 나위 없었다.

 더할 나위 없었는데······.


 “······.”

 “······.”

 

 뭐냐, 이 침묵은.

 젠장. 지금이 기회란 말이다! 윤지오.

 너는 이렇게 황금 같은 시간을 시궁창에 내다버릴 작정이냐.


 “근데, 넌 왜 여기에 있냐? 맨날 가는 친구 집에 공부하러 간 게 아니었냐?”

 

 나는 겨우 피오에게 말을 걸었다. 


 “아, 오늘은 아니었어. 갑자기 게임이 너무 하고 싶어가지고 그냥 안 갔어. 어차피 엄마 아빠도 나 어디 가는지 모르잖아.”

 “하하. 그럴 때가 있어. 막 학원 그냥 째고 싶고, 그렇지?”

 “응. 뭐, 그렇지.”

 “그래. 그렇지.”

 

 ······.

 바람이 우리사이를 갈라놓으려 불어왔다.


 “어, 야! 근데 나 물어볼게 있어!”

 “어, 왜?”


 피오가 나를 보면서 화들짝 놀랬다.


 “랩글 있잖아. 걔가 죽으면 노란 종이를 떨어뜨린단 말이지?”

 “유언 말하는 거야?”

 “그걸 유언이라고 하는구나.”

 “응. 랩글은 죽으면 어떤 종이를 내뱉는데 그걸 유언이라고 해. 그 종이에는 랩글이 남기는 마지막 말이 적혀있어.”

 “근데 그게 왜 나오는 거래?”

 “나야 모르지. 하지만 드니팬 박사님 말로는 예전에 랩글이 마을을 습격했을 때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고 있대.”

 “오.”

 

 나는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랩글의 설정은 참신했지만, 랩글의 설정을 직접 입으로 전해 듣는 것은 지루했다.

 

 “랩글의 유언 중에선 종이가 노란색인 것이 있고, 종이가 하얀 것이 있는데 종이가 노란색인 것이 랩글의 우두머리야!”

 “그렇구나. 종이가 노란 게 우두머리란 말이지?”

 “응! 박사님과 메리는 그걸 모아서 랩글이 왜 생기는 지 조사하는 거래. 그럼 마을의 피해를 막을 수도 있으니까······.”


 아, 그리고 랩글은 이 바이오 리본에 깃든 에너지탄으로만 해치울 수 있는데, 이러쿵저러쿵. 재잘재잘······.

 하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피오의 설명충 모드. 어렸을 때부터의 버릇. 게임 설정이나 스토리 얘기만 나오면 사족을 못 썼지.

 뭐 꿈도 게임 기획자였으니까.


 나는 속사포로 말하는 피오를 옆에서 지켜보며 피오와 걸음을 맞췄다. 피오의 입에서 나오는 설명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차피 들어도 다 이해하지도 못했다.

 재미도 없었다.

 피오의 속사포 랩을 BGM으로 3절까지 듣고 나니 눈앞에 무지개 모양 표지판이 있었다.


 “피오, 다 왔어. 다 왔어!”  

 “에너지탄은 속성에 따라 상태이상 효과가 달라지지만 그 외에도 술사의 감정에 따라 위력과 능력치가 달라져··· 응? 벌써 다 왔어?”


 에효.


 “응. 다 왔어.”


 피오는 눈앞에 있는 무지개 모양 표지판을 보고는 내 앞에 서서 팔을 쭉 벌렸다.


 “어서 와. 내 성, 내 놀이터! 프리즘타운에!”

 “하아? 어떻게 여기가 네 놀이터라는 거야?”

 “내가 여기 항상 상주하고 있으니까 내 성이지. 뭐. 상점가도 많이 가지만.”

 “···아, 네.”

 

 피오는 혀를 내두르는 내 팔에 다시 엉겨 붙어서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가보자!”

 “저기? 어디···. 저기?”

 “응. 저기 쿠키 진짜 맛있다?”


 피오가 가리킨 것은 갈색 차양과 파란 테이블이 눈에 띄는 카페였다. 나는 피오의 등쌀에 떠밀려 그 카페의 문을 열었다. 

 카페에서 다시 나왔을 때 우리에 손에는 각각 버터쿠키와 커피가 쥐어져있었다. 피오는 카페에 널려진 쿠키를 고르느라 고생 좀 했다.

 

 “이 쿠키 꼭 형하고 같이 먹고 싶었어. 엄청 맛있거든.”

 “그렇게 맘에 들어?”

 “내가 제일 이 게임에 들어와서 먹은 게 이 쿠키였는데 되게 맛있었다니까?”


 피오는 쿠키를 한입 베어물고는 세상 모든 행복을 다 가진 표정을 지었다.

 나도 쿠키를 베어 먹으려는 순간, 쪼개진 쿠키의 파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야. 피오.”

 “왜?”

 “쿠키의 색이 빠져가고 있어. 이거 왜냐?”

 

 내 손에서 쿠키의 색이 빠져가 흑백으로 변하고 있던 것이다.


 “아, 그거? 처음에는 나도 그랬어. 신경 꺼. 나중에 에너지탄 강화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사라질 거야.”

 “진짜?”

 “응.”


 식겁했네. 나는 내 손 안에서 점차 색을 잃어가는 쿠키를 한 입에 털어놓은 다음, 커피를 마셨다.


 [버터쿠키와 커피세트 사용. 당신의 인내력이 5분간 3 증가합니다.]


 인내력? 박사가 말했던 능력치인가? 바이오 리본에 달려 있는 목소리가 말했다.

 

 “피오. 여기 쿠키 먹으면 버프 같은 게 걸려?”

 “아, 말을 안 해줬네. 여긴 쿠키나 커피 같은 걸로 자신의 능력치를 약간씩 올릴 수 있거든.”

 “그렇군.”


 나는 남은 커피를 다 마셨다. 맛은 꽤 있었다. 딱 매장 커피 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래서 좋은 그 맛.


 “맛있어?”

 “응. 먹을 만하네.”

 

 피오는 그런 나를 보고 생긋 웃어보였다. 환한 미소였다.

 

 “근데 있잖아.”

 “응?”

 “바이오 리본이 측정하는 능력치에는 다섯 개가 있는데···”

 “그만.”


 나는 재빨리 피오에게 눈짓을 주고 무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명은 그만! 피오는 그런 나를 째려보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빨리 와. 이런 설명도 이해 못하는 바보 형!”

 

 야. 누가 바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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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탐구 소년단.rpg

2. 니가 거기서 왜 나와?






 너, 뭐야? 네가 거기서 왜 나와? 너 오늘도 친구 집에서 공부하던 거 아니었어? 맨날 그랬잖아. 네가 왜 거기서 나오는 거야.
 나는 피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약간씩 얼굴 골격이 변형되었긴 했어도 내가 아는 동생 그대로였다.

 "형이 왜 여기에 있어?"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넌 왜 여기에 있냐?"
 "오오. 둘이 형제였군, 보기에는 전혀 안 닮았는데."

 "박사님! 이거 받으세요. 아까 랩글이 흘리고 갔어요."

 알이 큰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아까 그 시꺼먼 놈에게서 떨어진 노란 종이를 남자에게 건넸다.

 "흐음, 그건 아까 랩글이 흘리고 간 유언인가? 나중에 연구실에 가서 읽어보지. 우선 빨리 이 애 몸 좀 녹여주자고."

 "피오군 형이랬지? 이름이 뭐야?"
 "······ 윤지오입니다."

 "지오? 너도 피오만큼이나 이름이 독특하네?"
 "··· 하긴 좀 그렇긴 해요."
 "어쨌든 가자. 형. 춥겠다."

 피오가 내 손을 잡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달릴 때 맞는 바람이 얼마나 추운지 피오는 모르는 듯하다.
 경치는 순식간에 하얀 눈밭에서 색색의 무지개로. 입구를 둘러싼 낮은 벽 사이사이엔 희귀한 돌들이 박혀있었고, 마을 사람들의 옷은 가지각색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어떤 한 연구소였다.
 다른 건물들은 죄다 총천연색인데 이 건물만 새하얀 색이였다.

 피오는 날 데려다주곤 다른 약속이 먼저 잡혀있다며 가버렸다. 피오와 같이 왔던 두 사람은 피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박사라 불린 사람은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아까부터 오들오들 떨던 나를 연구소 안쪽으로 밀어놓고는 푹신한 소파에 앉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 이제 살겠다.
 소파 옆에는 둥근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엔 아까 봤던 노란 종이가 수북했다.

 "‘나 여기 있어.’라······. 성향은 새디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가 왕성한 랩글이 마을 바로 앞까지 찾아온 걸로 보아, 머지않아 이 마을이 저들에게 습격당할지도 모르겠군요."
 "자네 말이 맞아. 요새 이 프리즘타운에 노이즈 현상이 많은 것도 꽤 맘에 걸리는군. 어쩌면 이미 여기에 또 다시 랩글이 침투해 들어왔을 수도 있겠어."
 "상위 개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네요. 우리도 무언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겠네요."

 메리가 타준 따뜻한 우유를 마시며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대체 무슨 이야기인 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뭔데. 새디라든지, 랩글이라든지, 노이즈라든지.

 "아. 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은 좀 풀리나? 지오군."
 "네. 좀 풀렸어요."
 "아아. 다행이군. 하마터면 자네가 잡아먹히는 줄 알고 식겁했다네."

 "죄송한데 두 분 다 누구세요? 또 여긴 어디에요?"
 박사라 불린 사람은 내 말을 듣고는 겸연쩍게 웃었다.

 "아. 소개가 늦었네. 나는 이 ‘랩글 연구소’의 소장 드니팬 박사일세. 그냥 박사라고 불러주게나. 그리고 이쪽은 내 조수. 메리라고 한다네."
 "안녕? 메리라고 해. 난 주로 박사님이 조사하신 자료를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어."

 메리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말했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선글라스의 L과 R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네. 잘 부탁해요."

 박사와 메리가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얼떨결에 서로 악수를 하며 그들을 향해 물었다. 

 "그······. 저를 덮쳤던 사람? 그 사람은 누구에요?"
 "아 그 괴물은 랩글이라고 한단다."
 "랩글이요?"

 "그래, 랩글.
 아주 예전에, 갑자기 이 마을 부근에 나타나서는 마을 어린이들을 납치해 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괴물이지.
 예전에는 마을에도 피해를 끼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안전하단다. 아직까지는."

 박사는 연구실 정중앙에 있는 칠판을 뒤집었다.
 칠판에는 온갖 복잡한 설명들이 적혀있는 면이 나왔다. 가운데에는 전에 나를 덮친 랩글과 비슷한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고 한 명, 한 명 자세하게 설명이 돼있었다.

 "랩글은 세 종류가 있어.
 피아의 영향을 받는 피아족,
 제이드의 영향을 받는 가더족,
 새디의 영향을 받는 새디족.
 이중에 마을에 피해를 끼치는 건 주로 새디족이야. 아까 너를 덮친 랩글도 새디족이고. 걔들이 제일 사납고 무섭지."

 오른쪽 발을 잡고 있던 기분 나쁜 감촉이 되살아나 나는 몸서리쳤다. "하하. 엄청나게 싫었나보네." 메리는 나를 보면서 웃고는 칠판 옆 책장에서 얇은 책을 꺼냈다.
 붉은 표지의 책이었다.

 "이거 받아. 랩글에 대해서 박사님하고 내가 정리해 놓은 거야. 나중에 시간 날 때 읽어봐. 책에서 궁금한 거 있으면 나나 박사님에게 물어보고."
 "아. 고맙습니다."

 나는 간단하게 목례를 하고는 그 책을 쭉 훑어보았다. 뭐가 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랩글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확실한 듯했다.

 "지오군."
 "헛! 네?"
 갑자기 박사가 내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자네 혹시 내 일을 도와줄 수 있겠나?"
 "네?"
 무슨 소리야. 갑자기.

 "사실, 요새 랩글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서 말이지. 랩글을 처리하기가 너무 버거워졌어. 예전엔 나와 조수가 어떻게든 다 처리했었는데 이젠 그러기가 어려워."
 "네···"
 "마을에 퍼진 랩글 처리만 해준다면 보수는 후하게 주겠네.
 자네 동생인 피오가 랩글 처리를 도와주고는 있지만 아직 어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기 무기인 에너지탄에 익숙지 않아서 말이지.」"

 "피오도 박사님들을 도와주고 있나요?"
 "응. 근데 차마 혼자 보낼 순 없어서 지금까지 세 명이서 겨우겨우 랩글을 처리했지만 이젠 랩글이 마을 부근에도 자주 출몰할 정도로 불어나버려서 걱정이야.
 이대로라면 녀석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건 시간문제겠지?"

 메리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선글라스 너머 메리의 죽어버린 눈이 보이는 듯 했다.

 "자, 어때? 지오군. 한번 해보지 않겠나?"

 조심스럽게 묻는 박사의 말과 동시에 내 앞에 여태껏 보지 못했던 선택지가 떠올랐다.
 검은색 바탕에 하얀 글씨로 YES, NO. 
 나는 망설이지 않고 YES를 눌렀다.
 물론 눈밭에서 힘겹게 랩글과 싸울 피오가 걱정이었기도 했고, 거기다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내가 초능력 마을 보안관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완전 멋지잖아? 이런 즐거운 경험 또 없을 거다.
 어차피 게임이야. 마음껏 즐기자고! 안 그래도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는데.
 그리고 어차피 지금 그곳에 돌아가도, 우리들은.

 "네. 알겠어요."
 "좋아! 이렇게 수락해줘서 고맙네! 일단 그걸 주어야 되겠군. 메리. 바이오 리본 하나 있지? 가져오게."

 박사는 이미 그 말을 할 줄 예상했는지, 나의 대답을 듣자마자 의외로 앳된 얼굴을 반짝이며 메리에게 그 바이오 뭐시기를 가져오라 말했다.
 뭐야, 완전 반응 빠르네.
 
 메리는 책장 옆 컴퓨터 책상에 있던 작은 주머니를 열고 그 속에 들어있는 작은 공을 꺼냈다. 그러자 작은 공은 내 앞에 멈춰서더니 내가 입고 있던 흰색 후드에 붙어버렸다.
 검은색 리본에 하얀 하트장식. 피오 옷에 달려있었던 리본과도 비슷했다.

 [당신은 20칸 가방을 얻었다]
 [당신은 기술 <에너지탄>을 익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는 왠지 낯이 익었다.
 왠지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내가 발명한 발명품이라네.
 걸작이지··· 만 뭐, 자네도 알다시피 게임에서 허다하게 많이 나오는 거라네.
 자네 능력치도 알 수 있고, 현재 내가 얼마만큼 세졌는지 확인도 할 수 있고, 거기다가 에너지탄도 쓸 수 있게 해준다네."
 "··· 그런 거 여기서 말해버려도 돼요?"
 "어차피 여긴 우리 셋밖에 없잖나. 무튼. 이걸로 나중에 에너지탄을 더 강화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 그때가 되면 그 방법을 알려주겠네."

 나는 리본을 바라보았다.,
 지금 입고 있는 흰 후드와 대비되는 검정색 리본. 태어나서 처음 달아보는 리본이었기에 조금 오글거렸다.
 지금부터 내 게임 생활을 함께 할, 흰 후드에 검은색 리본.

 아니 뭐 다시 보니 꽤 심플하고 멋져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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