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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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살아있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을 신뢰할 수 있다. 


남편과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사서, 내가 먼저 읽은 책이라서, 남편에게 읽었는지 물었다. 

나는, 성희롱, 성폭력이 나쁜 일이고, 가깝고 아는 사람에게서 일어난다는 면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부수는 무서운 일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어찌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성희롱,에는 더욱 입장을 정리할 수가 없다. 

가끔, 여자에게 '조심하라'고 할 게 아니라 남자에게 '하지 말라'고 해야 한다는 말도, '나의 불안을 네가 책임져라'라는 말처럼 들린다. '조심하라'라는 말은 억압처럼 들리지만, 듣고 있는 사람이 여성인데, 그럼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싶은 거다.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요새는 그저, 전시할 뿐이기는 하지. 데이트폭력과 여성살해들을. 


책은, 스스로가 약한 존재-물리적으로-임을 자각하고 있는 여자들이 느끼는 불안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화자는 여자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모호하거나 뭐라고 부르기 애매한 수준이다. 친구가 공격당한 호숫가를 친구의 남자친구와 함께 다시 가고 있다. 가면서, 친구의 남자친구가 덩치가 너무 커서 무섭고, 친구의 말들이 친구의 가해자가 친구의 남자친구임을 드러내지 않았나, 상황들을 계속 곱씹는다.[호수] 결혼할 남자가 사 둔 시골의 집을 찾아가다 차가 쳐박힌다. 시골의 집이 너무 외져서 마음에 들지 않고, 길을 잃고 들어간 촌동네는 공연히 괴괴하고, 남자의 어떤 행동은 무시무시하다.[] 

또 어떤 이야기가 있었더라. 여자의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일들을 꺼내어, 불안을 직조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지친다. 그럴 수 있다. 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육감이라고 부를 만한 불안이 커진다면 달아나야 한다. 그러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연쇄살인마라도 된 것처럼 상상하는 것은 좋지 않다. 소설이 끝까지 어떤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여성의 입장에서 불안에 이입하게만 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나는, 그저 이렇게 불안하면 결혼을 때려치워야지, 그게 싫으면 말을 해야지, 이런 식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남자들은 이입,을 할 수 있을까, 이입,을 했다고 해서, 여자들의 불안,을 안다고 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겁을 집어먹기 시작하면, 뭐가 무서울지는 나도 모르는데.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불안을 따라가지만, 하고 싶은 말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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