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동 천자문 - 하늘의 섭리 땅의 도리
김성동 쓰고 지음 / 청년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저녁에 아이들과 국화차를 나눠 마신다. 핀란드의 휘게처럼, 이야기를 꽃피우고 싶었으나, 아이들은 티비를 보다가, 달려와 원샷하고 다시 티비 앞으로 간다. 

이게 고정된 시간이라서, 저녁마다, 이 책을 펼쳐서 여덟자씩 세 번 썼다. 천자문 앞에 자기 이름 석자를 박아넣은 이 책은, 두쪽에 걸쳐 저자가 붓으로 쓴 여덟자를 맨 위에 네 글자씩 펼쳐 넣고, 아래 두 쪽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펼쳐놓았다. 훈음은 그저 읽고, 세번씩 썼다. 처음 썼던 때처럼, 지금도 검을현누를황, 다음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끝까지 쓰기는 했다. '17년 7월에 시작해서, '18년 1월에 마쳤다. 

천자문이 어린이가 배우는 첫 글자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다. 

천지와 우주와 계절과 세계의 중심인 천자의 나라에 대한 말들이다. 다른 책들, 다른 이야기를 모른다면, 아예 모를 이야기들도 있다. 아이들의 배움이 빈 터에 쌓이는 것은 아니니, 첫 책으로 의문을 만들어놓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아래 두쪽에는  천자문의 여덟자와 연관되기도 상관없기도 한 이야기들이 씌여 있다. 가장 많이 남은 인상은, 천천히 스러지는 구한말 선비의 마지막이다. 자신이 천자문을 배울 때, 역사의 격랑 속에 가족사가 드러난다. 조선의 선비인 할아버지는, 앞세운 아들과 사라지는 나라와 단절되는 문화 속에서 손자를 가르치고 있다. 쓸쓸하고 황량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풍경들이다. 

거스를 수 없는 명을 받고 밤이 새도록 써내려간 천 글자의 이야기는 그런 풍경으로 내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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