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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평점 :
예전에 읽고 느낀 나의 불편함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다시 읽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읽다가 때려치웠다.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초반에는 해리엇,이 나같아서- 결혼해서 아들 둘, 딸 둘을 낳겠어,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불편했고, 벤이 태어난 다음에는 벤이라는 존재의 묘사가 허황해서 계속 읽기가 힘들었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을 읽으면서도 엄마가 그런 식으로 통제하지 않았어도 그런 짓을 저질렀겠는가, 싶었던 나는 원초적인 무엇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벤의 존재를 여전히 인정할 수가 없다.
심상정,의 난 네편이야,를 읽고 만난 황색노조-기업별 노조가 어쩔 수 없이 어용이 될 수밖에 없다며 어용노조와 같은 의미로 쓰는-란 표현을 만나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찾은 서양인의 '황색'이미지를 여기서도 만나고, 이 묘사는 황인종, 에 대한 혐오가 드러나는 것인가, 하는 연결에 또 불편해한다. 결국 끝까지 읽지 않기로 했다.
서양인의 믿음,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고-주토피아- 문명을 선, 야만을 악,으로 묘사하고,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호전적인 믿음들을 계속 보고 있는 기분이 되었다. 겨울왕국,을 보면서도, 만약 엘사가 폭주하지 않았다면, 과연 안나의 약혼녀는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이 되었을까 의심하는 나는 본성도 물론 있지만, 상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역시 벤에 대한 묘사는 허황하다고 거부하고 있다.
폭력에 반대하는 내 앞에서, '야, 지금 네 앞에서 네 가족이 맞고 있다고, 그런데도 폭력에 반대할 수 있어?'라고 극단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 같았다. 있어, 이미 있는데 어쩔 거냐고,라는 질문이 전제한 많은 것들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만,이라는 것이 악이 아니고, 나의 생명을 지키려는 노력이 항상 다른 존재의 생명을 빼앗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게 아닌데도, 그런 식으로 묘사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다른 사람들이 연결시킨 욕망에 대한 벌이라는 묘사 부분은 공감이 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식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공포의 존재,에 대한 묘사를 수용할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이, 문명시대의 여성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낳아라, 인가?
그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벤 같은 존재가 첫째가 아니라는 보장은?
이런 멍청한 질문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질문은 뭐고, 의미는 뭘까?
오락물,이니 질문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가? 그게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