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 네 편이야 - 세상을 바꾸는 이들과 함께해온 심상정 이야기
심상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11월
평점 :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입장은 '분업에 반대한다'는 거였다. 그러다가 양자오의 '맹자를 읽다'에서 맹자가 분업에 반대하는 농가를 반박하는 장면을 만났다. 농사를 짓기 위해 쟁기도 만드는가, 옷을 입기 위해 옷도 만드는가, 정치란 마음을 쓰는 일인데, 왜 정치가에게 그걸 요구하는가.
여성인 내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에, 남성인 네가 양육이나 가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나에게 그래, 사람은 자기 삶의 최소한을 자기 손으로 꾸려야 한다는 의미였던 나는, 그 다음의 말들을 아직 찾지 못했다.
여성인 내가 사회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남성인 남편이 양육을 하기는 하지만, 나도 남편도 회사에서의 성취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이건 어쩌면 분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부분이 되버린 거다.
심상정의 난, 네 편이야,를 읽었다. 언니가 준 책이다. 여성정치인 심상정의 현재가 과거와 함께 빼곡하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나는, 성공한 여성들의 가족이 언제나 궁금했고, 이 책에서도 가정은 어찌 돌보고, 아이는 어찌 건사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여성의 성취에 언제나 따라붙는다는, 지극히 여성차별적이라는 그 질문을 다른 사람이 안 하면, 내가 할 판이다. 그게 나는 제일 궁금하니까-
함께 운동했던 정치적 지향이 같은 남자와 결혼해서, 서른다섯에 아들을 하나 낳았다. 남편이 자신의 활동을 축소하고, 아내의 활동을 지지했다. 아내가 더 바빠지면서는 살림을 도맡았다. 아이는 자신의 부모가 돌보았다. 이 가정에서도 분업은 있다. 전형적인 성취를 위한 전형적인 분업이 아니라, 비전형적인 성취 가운데 비전형적인 분업이다.
부르기 나름인 각자의 삶이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비전형적이기 때문에, 둘 다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전형적인 삶 속에서는 둘 중 누구도 '선택'처럼 보이지 않는다. 문화,란 그런 식으로 작동하니까.
부르주아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하층계급 여성이 전일제 가사노동자가 된다. 아니면, 나를 키운 부모가 나의 아이도 키운다. 아니면, 전일제 보육시설이나, 기숙학교에 보낸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새로운 길은 여전히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모두의 정답 따위는 없고, 그저 나름의 삶,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이 그 앞에 있다. 내 삶은 어쩌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