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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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혜가 주연한 '내게 거짓말을 해봐'(2011)라는 드라마가 있다.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한 여자주인공이, 실제 결혼하게 된다는 그 줄거리 소개에, 그래 거짓말 하고 싶은 때가 있지,라고 보기 시작했었다. 드라마가 시작하고, 여자 주인공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은 나의 공감이나 기대와는 달랐다. 내가 결혼했다고 거짓말하고 싶었던 순간은, 주변에 친구들이 결혼해서 부모가 결혼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세상 모든 친절들에 혹시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하는 내 자신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성적인 가능성이 열린 채로 긴장감 가득한 관계들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던 거지. 


꾸역꾸역 읽었다. 이해할 수 있던 것도, 무언가 공감했던 것도 아니면서,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야 싶어서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모르겠다. 

사랑으로 내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사랑과 우정을 과연 구분할 수 있는지 의심하는 지경이라서, 책 속에 가득 찬 성적인 것들이 의아했다.  

동성애 삼각관계에 끼어서 자살한 친구의 기억을 가진 여자가, 양성애자 남자친구를 가족에게 거부당한 기억이 있는 여자가, 아예 극단적인 관계맺기만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엄마는 그 남자친구가 양성애자,인 걸 어떻게 알았대? 

결혼한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어쩌면 사회적 관계맺기를 위해서인데, 책 속의 결혼은 좁게 둘만의 관계로 축소되고-단기임대로 남편이나 아내를 빌리고, 그게 직업인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런데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첩보원처럼 자신의 정체를 모르게 한다는 것은- 성적인 묘사들이 그득하다. 화자가 여성이라서였을까, 그 성적인 묘사들도, 마음이 비어버린 건조하고 이상한 묘사들이다.너무 많은 걸 말하고 싶어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의 결혼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결혼한 두 사람의 존재를 너무 지워버린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깊고, 이해하기 힘든, 복잡하고, 이상한,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라서, 설명하지 못하는 판단을 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사랑을 하고, 기이한 제도 안에서도 기이한 사랑으로 자신을 돌본다. 

스스로 괴롭다는 나래이션을 토하면서, 어지러운 선택을 하는, 자기 안에 질문에 답하지 않는 주인공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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