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게 싫다. '한국이 싫어서'라고 말하면서, 한국을 등지는 사람들이 여전히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미워도 이뻐도 '나'란 존재가 보태고 있는 거고, '나'는 그 모든 나쁜 점에도 불구하고 내 나라를 사랑하고, 할 수 있다면 고치고 싶으니까, 싫은 존재에, 나는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한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어이없는 일들이 아직은 물 밑에 숨어 있을 때, 사드와 국정교과서로 저항이 불붙었을 때,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글짓기 숙제를 받아가지고 왔다. '국가적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점'이 글감이었다. 당시 상황의 뻘짓들과 연결되어, 미쳤구나, 싶은 글감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아이의 글감에 말들을 보태면서, 나라,란 게 얼마나 추상적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라,를 어떻게 느끼는지 생각했다. 나에게 나라,란 나의 부모님이나, 나의 가족이나, 나의 친구들, 어울려 사는 이 마을이, 나의 직장이, 그렇게 나라구나, 싶었다. 다행히도 내 나라 말을 가지고, 내 나라 글을 쓸 수 있어서, 말 글로 하나되는 사람들, 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 땅 위에서 벌어진 민족의 수난사에 울컥울컥하고,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목이 메이고, 다시 그래서 촛불을 들고 길 위에 서는 거다. '애국심'이란 말이 어쩌면 왜곡되었지만, 누가 말하듯이 '애국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국심'이 넘쳐서, '너희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 나라'여서, 길 위에 서는 거다.
무한도전,의 역사힙합 콜라보,를 16년의 마지막날, 촛불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던 그날, 집에서 아이들과 보았다. 길에 서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노래 속의 이야기들에 눈물이 났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둘째가 노래 속의 시인이 누구인지 물었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은 알지만, 아직 윤동주와 안중근은 모르는 아들이다. 노래를 들으면서, 힙합이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어쩌면 디스와 허세가 난무하는 장르의 이미지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배움은 모자랄 지 몰라도, 마음은 다르지 않은데,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어쩌면 배반당해서, 싫다고, 헬이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한 거였나, 싶었다. 그래도 여전히, 말은 스스로를 구속하니, 가능하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가능하면 자신을 귀히 여기고-허세,나쁘지 않다-, 할 수 있는 한 타인을 그렇게 또 귀히 여기면서 아름다운 말들로 노래하자,고 말하고 싶다. 이제 왕의 권력은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나누어졌고, 우리는 이 권력을 우리가 좋아할 만한 나라,를 만드는 데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