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본방으로 써프라이즈,를 보았다. 

지금은 지구 상에서 사라진 소련이라는 나라가 미국과 냉전을 벌이던 때에, 소련에서 둠스데이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있었단다. 커다란 두개의 나라가 악착같이 핵무기를 만들며 경쟁하던 그 때에 설계된 그 프로그램은 인공위성으로 적국의 핵무기 발사징후를 포착하고 포착 시 맞대응으로 핵무기를 발사하기 위한 버튼을 가지고 있었다. 인공위성 오신호로 프로그램이 작동했고, 그 때 실무자가 버튼을 눌렀으면 지구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게 이야기의 전부였다. 실무자는 왜 미국이 다섯발만 쏘았을까?라는 의문 때문에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덕분에 내가 지금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원자력발전소에 다니고 있고, 그래서 '야, 그 당이 탈핵이 강령인데도 지지할 수 있어?'라는 질문을 받았었고, 또 그래서 언제나 직업과 나의 어떤 정치적 판단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어서, 그 이야기가 새삼스러웠다. 소련의 군인이, 그 버튼을 누를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의 괴로움 같은 것을 생각했다. 소련이란 나라에 속해서,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보다 전에 자신이 지구라는 공간에 사는 지구인이라는 자각을 갖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는 성실함으로 아마도 훌륭한 직업인이었을 아이히만,과 다른 위치에 있는 존재들,을 생각했다. 

모든 직업에는, 모순이 있지만, 모순이 충돌할 때는 항상 교과서에만 남아있다고 비웃는 바로 그, 직업이 가지는 본연의 의미에 충실하게 직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게 바로 본질이니까.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존재,로써의 조직에 속한 개인, 직업인,이 아니라, 본연의 의미에 충실한 조직과 개인으로써의 직업인 말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하는 검사, 조직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조직의 명예를 위해 항명하는 검사, 같은 거 말이다. 실망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때문이고, 큰 실망이 가끔 '해체하라'라고 표현될 지라도 그 의미는 결국, 본질에 충실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 본질조차도, 소련의 군인처럼 회의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그 때 다시 판단의 기준은 나에게 결국 마지막까지 남을 정체성,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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