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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현감 귀신체포기 1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이가서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내 어린 날의 독서경험을 말하자면 참으로 별 게 없다. 그 때는 그림책, 을 어린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사치는 생각하기 어려웠으니 그림책은 구경도 못했고, 작은 촌 동네에 도서관은 없었다. 정말 재미있는 책을 구했다고, 학급문고에 가져다 냈다가는 책을 분실한 적 있고, 그래서 언니-정작 그 책의 소유권을 주장할 만한-에게 타박만 들었다.
이런 어린 날의 기억 중에 내게 남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다. 페르시아 민화집, 한국 전래 동화집, 표지가 떨어져 나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기에 더하여 누렇게 바랬고 글씨도 작고 줄거리도 복잡했던 박씨부인전, 전우치전. 좀 쎄고 이상한 이야기들.
전우치전이 정말 집에 있었던 건가, 내가 그걸 읽었던 건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읽었다 치고. 어린 기억에는 박씨 부인이 좀 더 쎘다. 전우치는 귀여운 개구장이 같았다면, 박씨부인은 무시무시했으니까.
그런 전우치를 다시 만났다. 기담집과 이상한 이야기를 즐기던 즈음에 장바구니에 넣어놓고는 그저 넘겨버렸던 책을 형님네 놀러가서 책꽂이에서 발견한 것이다. 주책맞게 일찍 일어나는 휴일의 아침들에 다른 사람들이 깨기 전에 읽어치웠다.
귀여운 개구장이같던 전우치는 나이먹어 철 덜든 아저씨처럼 보였고,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던 인어소년들과 야차와 호리병 속의 여우들이 나오는 기담은 나이먹은 아저씨들의 환상처럼 묘사되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름도 이상한 미미라는 파란 눈의 여승에 대한 묘사는 나로써는 좋아할 수가 없다-.
삽화는 내 멋대로 상상하는 담백한 개구장이 전우치나 어리버리한 부여현감을 수염덥수룩한 아저씨같은 인상으로 고착시켰다. 작가의 의도와 잘 맞는 그림이라니, 내가 작가의 의도를 거부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책의 삽화는 상상력을 제한한다. 글래머러스한 삽화가 없었다면, 내가 이 책을 좀 더 내 멋대로 각색해서 기억할까, 알 수 없다.
우습고, 빨리 읽히고, 전혀 걸리는 부분이 없고, 정말은 작가도 그 친구도 흡혈귀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권하는 말을 찾지 못하겠다. 재밌다나 신기하다고 하기에는 권할만큼인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