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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저는 말입니다, 이게 어떻게 들려?"
"말이라고, 왜?"
"나는 말이지, 저는 말입니다, 라고 들었지. 저는 말입니다. 학생입니다. 뭐 이런. 그 다음을 기다렸다고."
"그럴 줄 알았어, 네가 잘 쓰는 말이잖아?"
빨강도 말을 하고, 개도 금화도, 죽어버린 시체도 말을 하고, 소제목은 간단하게, " 저는 살인자입니다, 나는 세큐레, 나는 카라,"이런 식이니까, 내가 이 책을 속도감 있게 읽었고, 푹 빠졌었다면, 이런 식의 오해는 안 생겼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저는 말입니다, 이 책을 모두 읽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
독특한 분위기가 있고, 조금 더 그 세밀화,란 것을 궁금해하면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이스탄불의 좁은 골목길이나 술탄의 보고에 들어가보고 싶어했지만, 역시 너무 힘이 들었다. 읽으면서 힘든데도, 읽고 싶었고, 끝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처음부터 끝까지 좀 더 속도를 내서 읽는다면, 더 잘 이해하고, 다른 모습들이 보일 것도 같기는 하다.
책을 읽지 않으면서도 책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책은 문화가 충돌하고 변화하는 과정에 대해 묘사하는데, 그것은 그림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오래된 전통의 화법과 새로운 이방의 화법의 충돌이 묘사되는데, 주요하게 이방의 방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원근법'이다. '그림은 어떻게 누구의 관점으로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세밀화가의 대답과 베네치아 화풍 화가들의 대답이 다르다면서 베네치아 화풍의 원근법이 세밀화가의 종교관, 세계관과 어떤 방식으로 충돌했는지 묘사하고 있다. 그런 묘사들에 느리게 따라가면서 사로잡힌 나머지, '세계화의 원근법'이란 책 제목을 보고는 미술책이라고 생각해버리기까지 했다.
종교와 미술이 결합한 방식이나, 문화가 섞이는 과정의 저항이나 충돌을 세밀하게 묘사한 이야기이다. 읽느라 힘들었지만, 다 읽고 나니 큰 그림을 볼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 박하게 점수를 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