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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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을 하기에는, 아니 학문을 하기에는 어떤 태도가 결여되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보편화'라는 게 안 된다. 예전에 생물학에 대한 묘사에서, '자연은 어떤 주장의 근거도 보여줄 수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게 협력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든지 우월한 존재가 살아남는다,든지. 결국 자연을 근거로 한 어떤 주의나 주장도 '당위'로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이해했다. 


이 책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이후 증언을 담은 증언집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하기 위해 증언을 모은 게 아니라, 감성의 문을 열어놓고 듣는 청자다. 그래서, 이 증언집의 어떤 말은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말 같고, 어떤 말은 전체주의에 대한 말 같고, 어떤 말은 모든 문명에 대한 말 같다. 사고 수습에 투입되었던 소방관 아내의 슬픔은 절절하고, 소련 붕괴 후 내전을 피해 소개지로 들어온 아이엄마는 또 그렇게 참담하고, 인간을 믿고 인간의 가능성을 신봉했던 늙은 당간부의 증언은 또 그렇게 암담하다. 자신을 위해서 살기만을 요구받는 지금 세상의 공허함 가운데 놓인 나는, 타인을 위해 살기를 요구받은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에 또 바닥을 잃는다. 어떤 상황, 현실 속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이야기들은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는다. 나는, 이 혼란스러움이 바로 이 책이 가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단순화하길 원하는 나 자신을 알기 때문에, 삶 자체가 단순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진지함이나 정직함이라고도 생각한다. 


저자가 아마도 이 모든 혼란스러운 증언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영웅을 원하는 시대'를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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