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반대한다 - 왜 우리는 이기기 위한 경주에 삶을 낭비하는가?
알피 콘 지음, 이영노 옮김 / 산눈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경쟁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건 복종과 순응이다.


나는, 올 초까지 내부평가관련 업무를 담당했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을 조직단위로 쪼개고 쪼개어진 조직들을 비슷한 그룹끼리 묶어 해당 조직의 목표를 수치화하고, 수치화한 목표를 비교하여,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매기고, 순위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기 위한 일. 물론 큰 틀의 얼개가 이렇다는 거고, 나의 일은 내가 속한 조직에 할당된 목표,들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면 이 조직의 일은 저 조직의 일을 돕는 거고, 그 일을 하려면 또 다른 이 조직의 이게 받쳐줘야 하는 거라서, 지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너무 포괄적이라서 현장의 일들과 뚝 떨어져 쓸모 없거나, 혹은 너무 지엽적이라 쓸모없는 것들 이었다. 게다가, 조직이 점점 세분화되어 결국 팀 단위까지 쪼개지고 나면 그저 그 일을 해달라는 게 미안한 지경인 일들만 남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라에서 회사를 평가하니 나라의 평가기준을 맞추기 위해, 회사도 이런 식의 평가를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는다. 게다가 나라에서 회사를 평가하는 일은, 또 나라의 일이라서 나라에서 장려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여성기업 환경친화기업 등등의 물건을 얼마나 샀는지 등을 지표화하기 일쑤였다. '유기적'인 협력으로 '개인'은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조직'을 구성해놓고는 내부에 이런 '경쟁'을 통해 '협력'을 실제로 방해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드는 날들이었다. 그 때마다 떠오르는 건, '사립학교법' 제정 당시에 근 한달을 장외투쟁하던 지금의 대통령을 뉴스로 전해들으면서 남편과 했던 '돈을 받아쳐먹으면서, 평가를 당연히 받아야지*'라고 한 말이었다. 

이게 떠오르면 나는 내가 평가하는 자일 때와 평가받는 자일 때 그저 편리한 식으로 말하고 있는 건가 싶어 한심했다. 그런데,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같은 언어, 경쟁의 언어를 쓰고 있었던 거다. 

'경쟁의 언어'를 쓰는 것은, '평가자'의 존재, '결과를 수용하는 태도', '결과를 통한 불이익을 감수하는 복종'을 모두 포괄한다. 더하여, 서로를 믿지 못하는 개인까지. 

나는 양육자,의 위치에서 저자가 경쟁을 통한 교육,을 말하는 것을 듣는다. 부모나 교사처럼 절대적일 수 있는 사람의 가치기준은 쉽게 아이에게 전해진다. 경쟁을 통한 교육에는 이미 정해진 기준을 수용하는 태도, 결과에 승복하는 태도, 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학습되는 것은, 모두 다른 개인의 모두 다른 삶의 방식이 아니라, 결과로 드러나는 같은 기준이다. 

부모나 교사나 경영자의 위치에서 경쟁하는 방식은 이미 세팅된 여러가지 방법 중에 고르면 될 정도로 많고, 쉽고, 빠르고 직관적이다. '누가 제일 잘 하나 볼까'라고 말하기만 하면 충분한 거다. 그런데,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런 게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다 늦게 깨닫는 중인 나는, 내가 그걸 깨달아 온 회사에서 회사 안이 그런 식으로 달라지는 걸 보고 있다. 나라 전체가 경쟁의 언어로 물들어 버려서, 나라가 운영하는 조직이 -그러니까 정부 행정조직과 공기업들이- 그런 방식의 운영에 압력을 받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 지금이라면, '야, 도대체 뭔 짓을 하길래 재단에 사외이사 한 명 넣겠다는 걸 저렇게 반대하는 거야'라고 말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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