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영웅전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김용소설번역연구회 옮김, 이지청 그림 / 김영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싸우는 걸 구경하는 건, 재미있다. 내가 싸움구경을 좋아한다,라고 써야 맞나. 

고등학교 때 친구가, 시간이 나면 언제나 읽는다고,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었다.

다 늦게, 읽기 시작해서는 펼치기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순식간에 읽어치웠다. 싸우는 걸 구경하는 기분이다. 홍콩무협영화를 열 편쯤 보아치운 기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다가는, 잠깐 돌이켜 볼 때면, 도대체, 이사람들이 '의'라고 믿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단일민족국가에 살고 있어서, 중국처럼 거대한 다민족국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이해해 보려고도 노력한다. 


이야기는 금의 침략으로 국토가 반토막나고, 다시 몽고의 부흥으로 위태로워지는 이십여년동안이 시대적 배경이다. 지배권력이 누가 되던지, 목숨을 귀히 여긴다면 상관없다, 싶다가도, 그런 방식으로 이런 마음을 설명해낼 수 있을까 궁금해한다. 

일곱권쯤 까지 읽다가 이 신출귀몰한 남자주인공이 겨우 열아홉이고, 남자주인공과 모험하는 사랑스럽고 영리한 여자주인공이 열다섯이라는 깨달음이 닥쳐서, 허탈해지기도 하고, 도둑질이 그 사람의 의협심이나 훌륭함을 갉아먹지 않는 '의협'의 도덕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동양에서는 '개인'이 없었다고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말할 수 없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한다. 


흥분했더라도, 조금만 더 이야기나눴으면, 굳이 죽자고 싸우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순식간에 욱,해서는 누구 하나 죽어버리고 그 죽음 때문에 다시 서로 복수의 시위를 당기는 이야기를 구경한다. 

아둔해도 꾸준하고 고집스러운 남자주인공도, 뭐든지 척척 해결하는 사기캐릭 여자주인공도 지금의 내게는 그저 너무 아이같고, 가장 마음 쓰인 사람은 여자주인공의 아버지인 황약사였다. 늦은 회한이 가득한, 세상 어떤 오해도 그저 내버려두는, 동사,라고 불리며 절세무공을 겨루고 또 원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외떨어진 섬에서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사람. 지나치게 괴팍해서, 수하의 제자가 서로 사랑함을 말하지 못하고 아예 도망가게 만드는 사람. 결국 딸조차도 도망가게 만드는 아빠. 사위의 스승을 도륙했다는 오해도 그저 내버려 두고 변명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저 다시 싸우는 사람. 그저 그걸 감당하기로 하는 사람.  

사는 걸 써 놓는 건 그저 다 변명같아서, 이 변명하지 않는 사람,의 외로움이나 각오가 마음에 쓰였다. 억울하지는 않을까. 그저 최고의 무공을 인정받으면, 그런 죄들은 별 게 아닌 걸까, 별 게 아니라고 자신을 따로 떼어 둘 수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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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 2015-08-2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 어떤 오해도 그저 내버려두는, 동사,라고 불리며 절세무공을 겨루고 또 원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 외떨어진 섬에서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사람. 지나치게 괴팍해서, 수하의 제자가 서로 사랑함을 말하지 못하고 아예 도망가게 만드는 사람. 결국 딸조차도 도망가게 만드는 아빠. 사위의 스승을 도륙했다는 오해도 그저 내버려 두고 변명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저 다시 싸우는 사람. 그저 그걸 감당하기로 하는 사람.
사는 걸 써 놓는 건 그저 다 변명같아서, 이 변명하지 않는 사람,의 외로움이나 각오가 마음에 쓰였다.˝

예전에 읽었던 것이지만, 모든 김용 소설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저는 곽정을 제일 좋아하고, 가장 처음에 읽었던 사조영웅전이 제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황약사는 그런 사람이었죠. 맞아요. 끄덕끄덕
그런데 제목이 싸움구경이네요 ^^

별족 2015-08-24 10:52   좋아요 0 | URL
제가 고딩때 읽었다면 `곽정`을 좋아했을 것도 같아요.

저는 음, `한수철`님이 겹쳐 떠오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