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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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없이는 정치도 종교도 불가능해보인다. 


프랑스에 테러가 일어났다. 샤를리 엡도,라는 시사잡지사의 편집회의에 괴한이 난입해서는 총을 쏘았다. 어떤 기사는 괴한이 정확한 대상-풍자만화가들-을 알고 저격했다고도 한다. 그 잡지는 내내 이슬람에 대한 풍자만화를 그려서, 협박당하고 있었다고 하고, 그 사건 이후로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내가 샤를리다'라는 트윗이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젊은 날의 내가 비난했던 어느 양비론자들처럼 도대체 그 잡지는 무슨 사명감으로 그렇게까지 이슬람을 조롱이나 모독한 걸까, 생각한다. 어떤 권위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좌파'잡지라는 소개도 흘러가듯 나왔었기 때문에, 나는, 거슬러 아서왕연대기-윈터킹, 에너미 오브 갓, 엑스칼리버-로부터 얼마 전 마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로 이어지는 '정치와 종교는 한 몸'이라는 생각이 공고해졌다. 

사람을 한,둘 정도 설득할 때는 논리와 합리로 혹시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비합리적인, 사람이란 존재를 천명, 만명 설득하려면 그건 눈가린 사람들의 절대적인 믿음, 이 필요하고, 인간의 역사에서 정치는 계속 종교와 한 몸이었던 거다. 


책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미국처럼 종교적인 나라-청교도가 세운 나라이니-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래되고 전통적인 믿음, 도덕적이고 반박하기에는 순전한 그런 믿음들을 떠받치는 헌신적인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어서, 자신의 이득에 눈감고 부자의 이득을 지키기 위해 투표하는 사람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낙태도 총기규제도 반대하는 사람들, 그걸 위해서, 자신의 절망이나 가난을 수용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오히려 절망했고 가난하기 때문에 종교에 몰입하기도 한다. 성공을 숭배하는 세속의 '종교'-자본주의-를 벗어나 자신의 가난을 '인정'하는 오래된 '종교'-기독교든 이슬람이든-를 선택한 사람은, 그 종교적 틀을 빌어 만들어진 거짓 담론에 파묻혀 정치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한다. 


절망했기 때문에 맹신에 빠지는 사람들을, 조롱한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절망했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을, 멍청하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게 아닐까. 


결국, 편집실의 테러,범들은 모두 잡혀 사살되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질도 여럿 죽었다고 하는데, 책 속의 그 '똘레랑스'의 나라 파리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세상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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