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일요일,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시설을 방문한 차윤희가 시설에 봉사점수 채우러 온 학생과 학생의 엄마가 시설의 아이가 사진촬영에 방긋방긋 웃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걸 보고는 그 엄마에게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항의를 들은 엄마는 '당신이 뭔데 그러냐'고 되묻고, 잠시 머뭇거리던 차윤희가 '얘 엄마예요!'라고 소리지른다. 다시 토요일 드라마가 시작하면서 그 장면을 반복할 때, 딸아이가 묻는다. '왜 엄마라고 하는 거야?' 음. 그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음, 사람들은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저 아줌마는 자기가 잘못했지만, 그걸 따지는 사람은 따질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당신이 뭐길래 자신에게 항의하냐고 물었거든. 그런 사람에게는 다시 묻지 못할 확실한 자격이 나에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지금은 '엄마'라서 그렇게 말한 거야.'
열심히 궁리해서 대답해보지만, 딸아이는 듣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대답하는 나조차도, 내 대답이 옳은가, 생각한다.
'엄마있는 애였어?'라며 다른 아이를 불러 자리를 피하는 그 아줌마에게, 차윤희는 부모없는 아이면 그래도 되는 거냐고 따져 묻고. 나는, '엄마'라고 거짓말하는 차윤희가 어떤 면에서 옳은가,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말을 하는데, 자격이 있어야 하는 걸까,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을 제지하기 위해 내게 필요한 자격은 무엇일까. 그래서, 세상은 이런 걸까.
오전에 봉사활동 강의를 듣고 왔다. 봉사시간 2시간을 인정해준다고 해서 서명하고 받는 교육. 강의하시는 분조차 갈피를 못 찾는 교육. 스스로 무언가 굉장히 회의하고 있는 강사의 교육은 좋지 않았다. 지역공동체에 대해 말하고 싶은 자원봉사센터장이라, 보수주의 정권하에서 자원봉사가 자란다고 말하는, 가난의 책임이 사회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진보고, 개인에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수라고 말하는 무언가 이상과 자신의 직업에 괴리를 느끼는 사람의 교육이라서, 수긍이 안 갔다.
주변의 혼자사시는 할머니, 어린이를 보살피라고, 그게 바로 봉사라고 말하는 그 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차윤희가 '엄마'라고 말했고, 그래서 내가 질문받았던 상황이 떠올랐다. 현대 도시인의 삶에서 자격없는 사람이 끼어드는 것을 얼마나 허용하고 있는가, 하는. 그런 자격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하는. 지역사회에서 누구나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그 따뜻한 손내밈이, '자원봉사센터'의 다리를 거치지 않고는 믿을 수 없게 되버린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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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고민하지 말자고. 자격을 묻기 전에 책임인 거라고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