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길을 잃어라 -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빛을 향한 모험과 도전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 열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영화가 보기 힘든데, 보고 싶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누구라도 읽어도 좋을 책'이라고 이 책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못 보더라도, 책은 볼 수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세 살에 사고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모험 가득한 인생을 사는 이야기이다. 나는 '기꺼이 길을 잃어라'라는 제목이 지나치게 직설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전혀 '기꺼이 길을 잃는' 사람이 아니다. 책을 읽던 중에 늘어놓은 나의 이런 불만은-"기꺼이 길을 왜 잃어, 그럼 책은 왜 읽는데?"- 나의 성향 때문이다.  이런 성향을 가지고도, 이 책을 집어들고, 이 책을 통해 혹시 나의 성향이 달라질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 생각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살아내는  이야기가 '기꺼이 길을 잃어라'라는 조언을 나같은 사람에게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이 책은 이미 성인이 마이크 메이가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기술을 통해 시력을 되찾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살아가는 현재와 사고가 난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교차로 짜여졌다가, 시력을 찾는 수술을 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이야기가 만나 하나로 진행된다. 이 전에 '인재시교'라는 육아서를 읽은 엄마인 나는, 마이크 메이의 성장담에 내내 그의 엄마에게 이입했다. 아이가 '겁에 질린 삶'을 살지 않도록, 울면서도 허락하는 엄마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내 책을 읽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 아이는 나의 어떤 태도때문에 혼자 어린이집에 안 가려는지 생각하면서 읽었다.  

이입을 마이크 메이에게 하지 않으니, 책은 내게 다른 책으로 읽혔다. 그러다가, 그의 어린시절이 지나가고,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고, 그가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되는 시점에서 흥미를 잃었다. 메이의 용기는 대단하게 와닿지 않고, 그의 조언 '기꺼이 길을 잃어라'는 공허하게 느껴지고, 그의 어떤 태도는 무모하거나 무지하게 느껴졌다. 그렇지, 그저 남자들의 무용담,처럼 들렸다는 거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시력을 잃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던 태도대로, 나는 그를 어쩌면 시력을 잃은 사람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다잡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미 두 아이의 아빠이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GPS를 개발 중인 마이크 메이가 고민 끝에 수술을 받기로 하는 대목에서 예의 그 불만을 터뜨리며 속도를 놓쳤다.  "도대체, 왜 기꺼이 길을 잃어! 그럼, 책은 왜 읽는데!" 나는, 이미 시력의 대부분이 뇌의 문제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고, 친구가 권한 논문들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운전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수술을 결심한 이 남자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데, 아직 3분의 1은 남은 책의 다음 부분은 마이크 메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를 통해 한 발 전진한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마이크 메이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그가 참여한 실험을 통해서 나는 시력이 형성되는 머릿 속의 과정을 소개받고, 내가 지금은 알고 있는 그 결과가 이 남자의 그 선택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고 수긍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내게 마이크 메이라는 남자가 삶을 통해 깨닫는 것들을 전하는 책이 아니라, 마이크 메이라는 사람을 통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육아서였다가 다시 시각이라는 것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인간의 몸이 어떤 식으로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이는지를 가르치는 과학책이 되었다. 음, 생각해보니 애초에 다른 기대로 집어들지 않았다면, 훨씬 괜찮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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