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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김태완 엮음 / 소나무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성균관 스캔들을 재방에 삼방까지 볼 때, 이 책을 샀다. 공자와 맹자를 읽고 싶어지는 마음도, 열하일기나, 정약용의 책을 읽고 싶어지는 마음도, 드라마 속 청춘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 여름에 서점에서 이 책을 샀으면서, 해를 넘기고 이제서야 책을 마쳤다. 그저 고어일 수도, 그저 한문투의 번역체 문장일 수도 있었는데, 드라마 속 젊은이들의 그 아름다운 말들에 혹해서, -비난조차도 아름다웠지- 이 책을 산 것이다.
책은, 조선시대 마지막 과거시험인 책문에 제출된 답안을 풀어 쓴 것이다. 임금이 제시한 질문에 답안지가 따라붙었다. 고정된 형식 안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임금의 마음, 그 임금의 물음에 답하는 선비의 마음이 드러난다. 드라마 속 청춘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절도있으나 뜨거운 마음은 낮게 업드려 고하고 있으나, 낮지는 않다. 목숨걸고 고한다는 그 대답에는 다시는 뜻을 펼칠 수 없더라도 고해야 하는 결기가 있고, 배우고 익혀 단련시킨 자신의 생각이 있다.
엮은이가 가려뽑은 책제와 그 답변들, 뒤이어 시대상황과 답변한 선비에 대한 엮은이의 해설과 엮은이의 견해가 붙어있다. 현재에 읽힐만한 여지에 대해서 덧붙인 엮은이의 말은 가끔 덜컹거리기도 하지만 괜찮았다. 대답을 듣고 그 선비가 어떤 선비였는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 저 퍼렇던 청춘은 그 뜻을 어찌 펼쳐는 보았는지 궁금했으니까. 유교적 도덕국가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열강들 사이에 몸을 누인 강토를 보전하기 위해서, 도대체 어떻게 국가를 운영할지 고민하는 왕과 선비들은 드라마 속에서 보았던 것처럼 아름다웠다. 가끔은 해가 바뀌는 쓸쓸함에 대해 논하라는 것도 아름다웠다. 현실은 왕과 신하가 대결하고, 오해때문에 당파가 갈렸더라도, 관직에 나서는 선비들의 첫마음은 아름다웠다.
선비들에 대한 설명글에서, 아 이 선비가 혹시 이선준의 모델은 아닐까도 생각하고, 왕이 신하에게 곤룡포를 덮어주는 장면에서는, 규장각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읽었다. 이건 소설이 아니고, 시험답안이니까.
드라마에서 과도하게 개인적 배경을 깔았던 것이 극적인 여러 장면을 만들었음에도, 오히려 단점이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다. 유교적 이상국가를 꿈꾸는 조선이란 나라에서, 관직에 나서려는 젊은이라면 자신의 아비가 혹은 형이 정치적 살해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나라를 꿈꾸는 것은 그 배움의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의식일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네 명의 주인공을 빼고 모두가 그저 몰려다니던 순간, 그랬다. 그 때 했던 공부란 결국 다스리는 것에 대한 것이었으니, 자신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고민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았더라면 하고 바랬고, 이 책 속에서 조금은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