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대며 남편에게 드라마 중계를 했다.
말미에 깔리는 심리스릴러 같은 음악이 다른 음악으로 바뀌어 있더라. 그렇지만, 여전히 이 드라마의 목적은 '피임의 중요성을 남성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A라는 잘 나가는 건축가는 대학 총장? 딸 B와 결혼을 앞두고, 미국 유학시절 동거했던 여자가 자신 모르게 키워오던 아들을 떠맡아 파혼당한다. 눈물로 호소하던 A는 B의 냉정함에 구질구질하게 슬퍼하면서, 한 동네 사는 마음 따뜻한 C의 동정과 배려로 위로받는다. A는 결국 B와의 파혼을 수용하고, C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C는 여섯살 꼬마를 같은 미술학원에 다니는 자신의 두 조카와 함께 챙기고, 그런 C를 A는 더욱 더 좋아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B가 자신의 냉정함을 후회하고, A를 다시 잡으려는 마음을 먹었을 때 A는 이미 B가 싫다. 그러나, B는 A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인 것이다.
대개의 드라마가 이런 임신이 여성을 궁지에 몰아넣는 데 반해, 이 드라마에서 처절하게 궁지에 몰린 사람은 이 남자다. 처음 여섯살 먹은 자신의 아들을 만나는 상황도 그렇고, 지금 겨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이런 상황이 된 것도 그렇다. 게다가 B는 혼외 임신을 한 여자치고는 참 쎄다. 마음이 떠난 게 분명한 남자를 주저앉히는 데 임신을 이용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그 여자가 극 중에서 사랑받을 만한 캐릭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여자가 전화로 그 남자를 불러서,
"나 임신했어. 이것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어?"
-그 남자는 새 여친과 영화를 보느라 전화를 꺼놓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당신이 정해."
라고 말할 때는 정말 통쾌했다. 야, 멋지구나. 낳기로 하든, 중지하기로 하든, 어떤 식의 생활고, 신체적 고통, 심리적 고통, 왜 여자 혼자 고심하겠는가 말이다. 못 본 전편에서 '내가 불행하니, 당신도 불행하면 좋겠다'고 말하던 여자니까-나는 예고편으로 봤다- 그런 방식으로 남자에게 알리는 것은 정말 멋졌다.
그 남자,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스스로를 정의했을 그 남자, 그래서, 차라리 자신의 여섯살 된 아이를 맡고 파혼을 수용한 그 남자는, 지금 그 상황이 괴로울 게다. 세상에 몰랐던 편이 좋았을 그 문제를 그 앞에 던져놓은 그 여자는 '내가 임신했으니, 나랑 결혼하라'고 매달리는 게 아니라, '내가 임신했으니, 네가 정하라'라고 말하는 거다.
궁지에 처한 남자,를 보고 있자니 좋구나. 그러게, 항상 피임하시라구요~ㅋㅋ(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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