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쩌냐, 이거 끝나면"

어제 광분하여 닥본사하는 나에게 남편이 한말이다.
그렇게 보였나. 그래, 정말 열심히 보고 있다. 무엇때문일까, 계속 생각한다. 무엇때문에 쾌도 홍길동을 좋아하는지.

아, 훌륭하다. 이 이상 어떻게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재미있는 것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불러왔지만, 홍길동은 왜 정치에 무심하면 안 되는지 노골적이거나 우회적으로 계속 말한다.
1.
대학 때 갓 입학한 후배가 나에게
'누나, 운동은 왜 해요?'
'뭐 별 이유없어'
'내가 아는 누나는 그래서 인생 말아먹었잖아요'
독재의 기억을 가진 이 땅에서 가장 약하고 낮은 자가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나, 싶은 그 약한 마음에 대해 드라마가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래, 길동이도 거창한 이유에서 출발한 게 아니었다. 길동이가 의적이 되게 한, 알고 보게 되면 어쩌지 못하는 그 마음들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그저 자신의 억울을 풀려다가, 알아버린 타인의 억울이, 그 보아넘길 수 없는 다른 이의 죽음이 결국 자신의 죽음과 새로운 삶을 열었던 거고. 약한 마음을 이해하지만, 변호하지는 않고, 결국은 그들이 움직이게 하던 그 힘이 좋은 것이다.

2.
이기적인 사랑에 대해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길동이와 이녹이와 은혜와 창휘를 보고 있으면 왜 길동이는 이녹이여야 하는지 알게 된다. 사랑은 이기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랑은 서로를 지키는 것이고, 존경하는 것이고, 응원하는 것이다. 옥에 갇혀 피흘리는 길동 앞에서 '너의 목숨만은 내가 살릴 테니, 모두 말하라'는 은혜를 그래서 길동이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길동이의 사랑은 길동이 곁에서 같이 싸우는 사람, 힘든 길을 지켜보는 사람, 지지하고 존경하는 사람, 이녹이인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걸 통해 강해지는 것, 혼자라면 못할 일도 둘이라면 가능한 것, 그래서 무섭지 않은 것, 그래서 이기적이지 않은 것.

3. 
이 치밀한 정치의 구조와 이야기들에 감동한다. 촘촘하다. 아버지의 세계와 길동이의 세계, 창휘의 나라와 길동이의 나라. 서자인 길동이와 적자인 창휘, 함께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관계들이 놀랍다. 의미를 알 수 없던 '쾌도'라는 수식이 '사인검'과 나란히 있을 때, 서자이자 의적인 길동이가 적자이자 반정을 모의하는 창휘와 나란히 있을 때, 광휘가 창휘를 죽이려던 이유와 창휘가 왕이 되려는 이유,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 적과 적 아닌 자를 알 수 없는 모호함,
장화홍련전은 계급사회의 비극이 되고, 심청전은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이 된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아, 다음 주 수요일 막방이다.(0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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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jinny 2009-08-0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쾌도 홍길동을 볼때는
"지켜보는 국민이 되겠습니다.."라고 생각했는데..지금의 사태에서
방관자로 있는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고 있어.


별족 2009-08-04 13:22   좋아요 0 | URL
그게 참 어려운 일이라 그런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