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상
페터 회 지음 / 까치 / 199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채널을 돌리다가, 새로나온 영화들의 예고편을 보여주는 화면에 멈췄다. 낯선 화면에서 머리를 길게 늘인 남자 둘이 웃통을 벗고는 이상한 결투를 하고 있었다. 둘을 둘러싼 사람들은 털옷에 모자까지 썼다. 배경은 온통 하얗다. 에스키모들의 이야기다. 스밀라 생각이 났다.

그렇게 스밀라 생각이 난다.

<서재결혼시키기>를 읽을 때도 그랬다. 앤이 묘사하는 이상향을 들을 때, 스밀라 생각이 났다. 남편의 이상향이 밀림이라면, 자신의 이상향은 북극이라고 말할 때, 그 때 스밀라 생각이 났다.

스밀라,를 생각하면 눈밭이 떠오른다. 끝도 없는 눈, 또는 얼음. 얼어버린 바다 위를 걸어가는 스밀라 생각이 난다. 한없이 차가운 기분이 된다. 차가운 바람이 닥쳐서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 된다.

사람을 지배하는 풍경이 있는 것처럼, 스밀라는 눈뿐인 세상에서 나서 자라서 문명으로 이식된 사람이다. 이식된 사람이 전해주는 덴마크의 풍경은 여느 도시와 다름없지만, 또 참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사라져 가는 언어, 충돌하는 가치관, 이해하기 어려운 욕망들, 변해버린 사람들.

참 긴 책이고, 가끔은 아주 느린 기분이 되지만, 어느 순간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바쁜 마음이 되었다. 스밀라가 어떻게 되었을까, 스밀라는, 스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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