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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순간 감정을 툭하고 쳐서는 당황합니다.
늘 마주치던 눈빛이 어느 순간 다른 감정이 되는 것을, 의미없는 말 한마디에 목숨만큼 소중하다고 여겨지던 어떤 것이 가벼워지는 것을 혹은 그 반대가 되는 것을 느낀 적 있다면, 이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연상에 당혹과 매혹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이유없이 고집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삶의 어느 순간 내가 가진 감정이 그 다음 순간 설명할 수 없음을 알고 당황스러워도, 그 때 내가 그럴 수밖에 없음을 나는 압니다.
너무 오래 산 하숙집 여주인이 연상시킨 자신의 어머니때문에 한없이 친근하기도 하고, 갑자기 닥친 꼬마아이의 한 마디에 연애를 더이상 지속시킬 수 없기도 하고, 이제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닥친 이별의 전언이 무심히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걱정이 많은 타인에게 아무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에 자책하기도 하고, 공연히 저 사람은 더 잘 날 이해할 거라고 속단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타인에게 감정을 만드는 것과, 이유를 알지도 못하고 내 안에 쌓이는 이 많은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소설들은 삶의 모습으로 비춰줍니다.
급류처럼 나를 휩쓸어 어느 미지의 해안에 내려놓는 대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훅하고 내가 서있는 데로 불어와서는 온 몸의 작은 털들을 흔들어 댑니다. 내가 이걸 느낄 수 있다는 게 되려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