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다시 피는 오월 - 5·18 앤솔러지
정명섭 외 지음 / 올리 / 2025년 5월
평점 :
처음 광주 이야기를 묻는 청소년에게 권할 만한 단편집이다.
총 네 편의 단편소설이 있는데, 세 편은 5월 광주의 앞 뒤로 불안한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같은 단편이다.
전국체전을 앞두고 전지훈련을 떠난 축구부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어찌어찌 광주를 빠져나오는 이야기, <5월 17일>
경찰서 앞의 탱크를 목격한 소년이 광주의 외삼촌 소식을 기다리는 이야기. <양치기 소년>
경찰인 오빠와 의지하며 지내는 여고생이 친구들과 부상자들을 돌보고, 시위자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하는 이야기. <봄날, 송곳을 쥐다>
오월의 전과 중의 이야기는 훌쩍 뛰어서, 현재이거나 조금 가까운 시점 교실에서 오월을 조롱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화만 낼 뿐 할 말을 찾지 못하던 학생,에 대한 이야기.<투사의 탄생>
5월17일이나, 양치기 소년이 어쩌면 당사자성이 없는 서사라서 조금은 부담없이 읽다가, 봄날, 송곳을 쥐다,에서 마음으로 말리는 나를 본다. 전단지를 필사하고, 주먹밥을 만들고, 송곳을 쥐고 길로 나서기를 결심하며 마치는 이야기에서 나는 소녀들의 치마끝을 쥐고 그러지,말라고 하고 싶었다. 예정된 비극을 아는 심정으로, 말렸다. 깨진 계란이 다른 사람을 각성시킬 수 있다는 그 선생님의 믿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내 자신은 언제나 살아남기로 선택한다.
투사의 탄생,은 지금 교실에서 벌어지는 혐오표현에 대한 이야기라서 작금의 사건들이 떠올랐다.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안다고 해도 진지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알면서도 할까봐 가르치는 게 두렵다.
역사를 보면, 가끔은, 너무 가까운 일들은 아직 '우리'의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은, 6.25 때 총부리를 서로 겨눴던 가문, 조선시대 사화에서 서로를 밀고했던 가문일 수도 있고, 수양대군이 나설 때 수양대군 편에 서서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거나 단종 편에 서서 가문이 몰살당하는 와중에 겨우 살아남은 사람의 자손일 수도 있는 거니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수는 있고, 그 시간에 필요한 건 그저 단순한 도덕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일이 있었고, 죽은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우리 가운데, 가까운 이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조심하는 마음. 투사이거나, 정의일 필요는 없이, 그저 버거운 일을 좀 더 가까이 겪은 사람 앞에서 조심하는 마음 정도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너무 가까워서 아직 '우리'의 역사가 되지 못한 상황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가 제일 중요한 덕목인 정권에서는 그 가치가 좀 더 높게 여겨지다가, 국가가 더 중요한 정권에서는 좀 덜 존중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세월이 흘러서 그 모든 적대와 대립 가운데서 그래도 건전하게 '우리'를 유지하면서 그런 일도 있었지,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것만이 정의라면, 서로가 상대를 용납할 수 없지만, 우리가 겪은 아픈 역사라는 인식이라면,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같이 살아갈 수는 있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