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다르게 배운다 - 누구나, 언제나, 저마다의 속도로
이수인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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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내가 딱 하나만 읽는다면 읽겠다던 '인재시교'를 떠올리게 해서 골랐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371196 ) 

아이들을 키우는 중이라, 교육이 뭘까, 라는 질문을 자꾸 자꾸 하게 되서 이런 책을 읽는다. 큰 아이가 고3이라 지금 입시나 교육이 왜 이런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대학은 필수적인 경로나 교육이 아니다. 30프로만 갈 수 있을 때에도 그랬고, 거의 100프로의 수험생이 갈 수 있는 지금도 그렇다. 상승욕구가 있고, 자녀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은 부모가 방법을 모르는 채로 떠민다. 또래집단 안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압력이 작용한다. 사교육시장은 비대해지고, 사교육시장도, 대학도 살아남기 위해 케케묵은 담론들을 이용하고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한다. 많은 교육관련 책들은 그래서 위험을 안고 있다. 그래서 목표는 무엇인가?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인가?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인가? 어떤 삶을 살면 좋은 삶인가? 어떤 것이 성공인가? 질문은 많고 답은 모른다. 

그래서 책들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저자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게임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남편의 유학길에 동행해서 첫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유전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아이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느리게 배우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아이가 적어도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만큼, 수를 이해할 만큼 적어도 2학년짜리만큼은 되길 바라면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다. 에듀테크,라고 불리는 분야의 기업가가 되어 쓴 책이다. 엄마의 마음, 기업가의 마음이 드러나는 글들이다. 근원적인 질문을 엄마도 하고 있을 거다. 그래도, 기업가기 때문에 더 하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 엄마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들도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그래도 최선을 다 해서 말한다. 자신의 일이 좋은 일이기를 기대하면서 일하는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배움의 목표는 무엇일까,에 답은 없어도, 여전히 끊임없이 배우고 있는 사람을 본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배움의 목표는 '좋은 사람'이라고 유학의 '군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목표여야 끝까지 배울 수 있고,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래서 부모는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대하는 태도, 깜깜한 미래를 기쁘게 기대하는 태도, 자기 자신을 귀하게 돌보는 태도,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키워서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태도, 그런 걸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질문하고 의심하고 노력하고 정진하는 저자의 말들에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기대도 조금은 하기로 했다. 


며칠 후 병원의 유전학자인 닥터 골라비가 병실에 찾아와서 무슨 질문이든지 해보라고 했을 때, 나는 "이 아이와 같은 유전 정보의 아이를 찾아서 어떻게 자랐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 할머니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조곤조곤 말을 쏟아냈다. "너는 유전적으로 정상인 아이를 하나 보면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공부를 잘할지 못할지, 착하고 남을 돕는 사람이 될지 악인이 되어 교도소에서 삶을 마무리할지 알 수 있겠니? 장애가 있는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마찬가지야. 아이가 어떻게 자라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나는 머릿속에서 막연히 '장애가 있는 아이'와 '장애가 있지 않은 아이'를 나누고, 그 부모의 인생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불행한 삶'과 '그렇지 않은 행복한 삶'의 두 갈래로 나눠지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닥터 골라비는 아이와 그 가족의 인생을 예측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부모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말해주었다. 더군다나 우리 아이의 유전질환은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조합도 아니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축복이지 않니? 아무도 모른다고!" -p17~18


그러다가 아이가 다른 반 교실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쉬는 시간에 그런 아이들을 마주치면 매우 반가워하면서 말을 걸고 같이 놀고 싶어 한다고 했다. 방학 중 추가 학습이 필요한 아이들이 모인 교실에서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고 말을 걸면서 아이는 매우 행복해했다. 이런 광경을 몇 번 지켜보자, 차라리 특수학급에서 비슷한 수준의 또래들과 함께 있게 했다면 아이가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p200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교육의 목표가 잘목되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았다. 그림 그리는 것의 목표가 직업을 얻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는 기능을 훈련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결과물의 수준도 목표가 될 수 없다. 또래와 비교해서 미술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잘 그리는 것, 상업적으로 팔릴 것을 목표로 그리면 안 된다. 교육의 목표가 '어떤 수준을 달성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워야 한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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