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이다. 

초5 딸래미가 물었다.

"딸만 셋이면 제사를 못 지내?" 

"왜? 지낼 수 있지. 먼 소리냐?"

"썰에서 봤는데, 어떤 여자가 딸만 셋인 집에서 아들만 셋인 집에 시집가서 시어머니랑 이야기한 게 나왔는데, 시어머니가 딸만 셋인 엄마 불쌍하다고 했다고."

"뭐라고 해야 하나. 제사야 지내도 되는데, 규칙은 남자들보고 지내라고 하기는 하지. 제사를 지내겠다고 싸우기도 하고 안 지내겠다고 싸우기도 하니까, 규칙을 만든 거지. 봐, 성씨를 아빠 성씨 따르게 규칙을 만든 것처럼 제사는 아들이 지내게 하자, 이렇게 규칙을 만든 거야. 규칙이야 그렇지만 딸도 지내도 되. 딸이 지내면 절대 안 된다, 그런 규칙은 아니니까."

"그럼 아들 없으면 제사 못 받아서 불쌍한 건가?"

"뭐, 엄마도 안 죽어봐서 모른다. 죽은 다음에 제삿밥 먹을 수 있는지, 없으면 불쌍할지 안 불쌍할지."

...

"근데, 제사는 산 사람들이 기억하느라고 하는 거라고 생각해. 사람이 죽고 나면 점점 잊히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고맙고 그립고 그런 사람들이 일년에 한 번 그 사람 생각을 하려고 모이는 거지. 그런 게 제사라고 생각해. 그리고, 조상을 기억한다는 거, 나를 있게 해 준 분들에게 감사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예전에 부자나 높은 사람들이 더 윗대까지 제사지내고 그랬던 거지. 다른 사람들은 멋지고 높은 사람들이 하는 걸 따라하고 싶어하니까. 살만해지면 제사를 더 지내고 싶어하고. 그런 거지. 뭐."

의미를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간다. 

가끔 이야기가 의미를 가리고, 부여한 의미가 본질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실상은 아무 것도 모른다. 나에게 그럴 듯한 의미들을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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