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한자의 풍경 - 문자의 탄생과 변주에 담긴 예술과 상상력
이승훈 지음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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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다. 

문자에 대한 이야기지만, 문자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은 순간들에 그렇지 문자란 살아 움직이고 언제나 변화하지,라고 생각했다. 

뼈 위에 새겨지던 문자가, 청동기 위에 남기던 문자가, 대나무 위에, 나무판 위에서 비단 위에 종이 위에 옮겨지고, 지배계층의 제사와 전쟁에 사용되던 문자가 모두에게 사용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삶들이 문자에 남아있는지 이야기한다. 

종교적인 의미들로 형상을 묘사하던 한자의 초기 모습이 어떻게 간략화되었고 변화되었고, 다시 소리를 의미하는 방식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음을 듣는다. 오래 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축소된 형상 가운데 추정하고, 그 때 모두들 알아차린 그 형상이 지금은 그저 한자로만 남아 있다. 간략화되고, 변화하고, 피와 살이 튀던 원형은 은유로 남고, 사람들의 삶 속에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이런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책의 모습은 고대의 제사장 이야기였다가, 춘추전국의 전쟁이야기였다가, 발굴되는 죽간들로 한 번씩 점프하는 연구의 이야기였다가, 서체로 묘사되는 어떤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된다. 재미있다. 


문자를 사용했던 5000년이라는 시간은 인간 진화의 전체 과정에서 볼 때 너무나 찰나이기 때문에, 뇌에 문자를 읽기에 적합한 구조가 만들어질 여유가 없었다. 인간의 뇌는 오랜 기간 동안 수렵채집자로서 생존에 적합한 구조로 진화되었다. 그래서 『글 읽는 뇌』의 저자 스타니슬라스 드앤은 인간의 뇌와 문자의 관계를 간명한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생존하도록 설계된 뇌를 이용하여 셰익스피어를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 16%


그러나 문자를 배운 도시인들은 이런 자연의 신호 앞에 까막눈이 되어버린다. 한번 문자 상자를 활성화시킨 사람은 문맹자가 쉽게 구별해내는 자연계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우리는 a와 A가 같은 문자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문맹자를 무시하지만, 그들은 바로 눈앞에 찍힌 맹수의 발자국도 구별하지 못해 곧 죽을 운명이 닥쳐오는 것도 모르는 우리를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문자를 얻은 인간은 생존에 필요했던 섬세한 시각 분별 능력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17%


새것을 만들 때는 아무런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할 수 없다. 익숙한 무언가를 기점으로 삼아 그곳에서 상상을 시작한다. 창의성이란 아무런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에 축적된 뇌의 영역 간 새로운 연결을 통해 생겨난다. - 32%


『한비자』의 "세상에서 제일 그리기 어려운 것"에 얽힌 이야기는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한 것이다. 

제나라 왕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제나라 왕이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그리기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화가가 대답했다. "개와 말이 가장 어렵지요."

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리기 가장 쉬운 것은 무엇인가?" 

화가가 대답했다. "귀신 따위를 그리기가 가장 쉽지요. 개나 말은 사람들이 다 아는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종을 치면 눈앞에 나타나기에 아무렇게나 추측하여 그릴 수는 없지요. 그러나 귀신은 형태가 없으며 종을 쳐도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니 그리기 쉬운 것입니다." - 『한비자』「외저설좌상(外儲設左上)」- 31%


하지만 음악을 통한 이런 동질화는 유가가 강조하는 차별적인 예를 구현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 『예기』에서 『악경』의 나머지 부분을 복원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렇게 차별적인 예를 구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음악의 속성을 잘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음악은 서로를 같아지게 하는 것이고, 예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 33%


주나라 초기 천의 개념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아직 인격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지만, 상제는 더 이상 마음대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상나라의 멸망은 신의 변심이나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왕이 절제하지 못하고 백성들이 도덕적인 기준을 지키지 못해 자초한 것이다. 하늘의 결정 기준은 하늘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이 세상 인간들의 행위에 있었다. 이제부터 인간은 스스로 도덕과 원칙을 지킨다면 하늘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45%


최근 연구에 의하면 한족이라는 범주는 유전적 계통으로도 구분되지 않는 비과학적 범주이다. 그렇다면 한족이라는 정체성을 설명할 유일한 요소는 한자를 지속적으로 사용해온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것뿐이다. - 47%


여기서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이 진행되지 않았고, 철학자에 의해 이성과 감성, 진리와 가상을 구분하는 이중 세계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이오니아학파 철학에서 진리는 도덕이나 감정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결국 문자의보급이 세계관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 49%


높다는 개념이 이렇게 추상적인 의미까지 확장된 것은 인간의 거의 모든 언어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이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높다(高, high)라는 단어는 '높은 계급[고관(高官, high-class)]'에 있는 '고귀한 분(高貴, Highness)'의 '고결하고(高潔, high-souled)' '숭고한(崇高, high-minded)' 태도를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추상개념은 주로 인간의 신체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감각을 빌려 표현된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이를 개념 은유라는 틀로 설명한다, - 50%


공자는 주공의 세계관을 이상으로 따르며, 상나라의 주술적 세계관을 일관되게 부정한다. 주나라 초기 사회야말로 죽은 조상에 대한 숭배보다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 질서로서 예를 강조하고, 외형적 겉치레와 화려한 의식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건한 덕을 중요시했다고 믿었던 것이다.- 62%


그런데 중국의 청동기 시대에 청동제 생산도구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주장은, 인류 사회의 보편적 역사 발전 단계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유물사관 설명과 부합하지 않는다. 유물사관은 기술의 3단계 발전 순서를 따라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인류가 진보했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중국 청동기 시대의 독자적인 특수성을 강조했던 뇌해종과 진몽가는 한 때 유물사관에 반하는 반혁명 우파로 몰려 학술 활동이 금지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 64%


이 지역 사람들은 황하라는 큰 강을 끼고 있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물이 부족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 오히려 물이 넘쳐나는 역설적 환경 속에서 생존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옛날부터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여 홍수 방지용 제방 공사를 추진할 막강한 권력자의 출현을 반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춘추 시대 최초의 패자 제환공과 진문공이 등장했던 곳이 바로 산동에 위치한 제나라와 진나라였다. 황하를 중심으로 하는 기후 환경적 요소는 이 지역의 정치 구조를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 69%


그렇기 때문에 전통 시기 지식인은 유가 사상가로서 관리가 되어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소명이었지만, 자유분방한 노장의 예술적 상상력을 겸비하지 않으면 속된 사람으로 천시받기도 했다. 유(有)의 철학으로서 유가와 무(無)의 철학으로서 노장이라는 두 사상이 지식인의 마음 속에서 서로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 72%


서쪽 변방의 진(秦)나라가 강국이 된 것은 급진적 법가 사상가 상앙이 기원전 356년 무렵 시행했던 일련의 정책 덕분이었다. 이때부터 진은 기존의 봉건적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조직을 갖춘 제국으로 발전했다. 대규모 종족 조직을 상호 감시가 가능한 소규모 가족 단위로 재조정하고, 위법한 자에게 가혹한 조치를 취했다. 세습적 지위나 특권은 점차 사라졌고 국가에서 인정받은 공로가 있어야만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 75%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오래된 자형인 소전체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당시 통용되는 예서체 글자를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끼워 맞춘 것이다. 이런 문자 왜곡은 단순한 오락에 그치지 않고 한 사회의 정서에 해악을 끼쳤다.-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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