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하는 CEO - 직관의 오류를 깨뜨리는 심리의 모든 것
유정식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책의 말미에 믿음이 사실을 대체하는 순간, 문명이 멸망한다,고 까지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육아서적인 인재시교,에 엄마들의 고민, '어떻게 하면 아이가 공부하게 할 수 있을까요?'나 '어떻게 하면 아이가 게임을 그만 하게 할 수 있을까요?'에 대한 답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길거리에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다니는 한 무리의 불량배들에게 앞으로 쓰레기통을 발로 차면 돈을 주겠다고 하고 돈을 주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돈을 안 주면 이 사람들이 하지 않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공부를 하게 하려면 그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면 안 된다,에 더하여, 무언가를 하기 싫게 하려면 그걸 댓가를 받을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들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이라는 기이한 존재에 대한 통찰이거나 댓가라는 것이 가지는 함정에 대한 이야기라서 기억에 남는다. 나는 CEO가 아니라 엄마라서 경영서적도 육아서적으로 읽게 된다. 

늘 어렵고 힘든 방법이, 모호하고 불투명한 방법이 차라리 낫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이 책을 통해 그런 사고방식을 강화한다. 내게 경영할 회사는 없지만, 키우는 아이들이 있으니,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다.  

내가 회사에서 참 열심히 반대했던 것은 인사이동 마일리지에 대한 거였다. 여러 개의 사업장이 있고 선호하고 선호하지 않는 사업장이 있는 회사에서 비선호 사업장에서 가지는 어떤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서 인사이동 마일리지 제도를 만들었다.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을 때 내가 반대하는 게 더 어려웠던 건, 이 제도 자체를 요구한 것이 늘 신입으로 충원되는 비선호사업소의 젊은 직원들이었다는 거다. 경영적으로 심각한 해악이 있는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젊고 어리석은 직원들을 설득할 말을 애써 찾다가 나를 보고 고개를 돌리면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순간 같은 거였다. 그러다가 결국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나의 외롭고 애석한 말들이 공정, 이나 정의란 말들 속에 파묻혀서 인사마일리지는 제도가 되었다.

굉장히 오래 걸려 읽었다.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빡빡하게 붙였는데, 어느 순간, 이걸 어떻게 실행하지,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의 말들을 인용해서 나는 회사가 실행하려는 무언가를 반대할 수 있는데, 돌연 내게 고개를 돌리고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라고 묻는다면 대답을 못하겠다. 게다가 회사가 이 책의 저자가 걱정하는 것만큼 시류에 민감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조직이라기 보다, 전통적이고 거대한 조직이라서 CEO가 아니라 젊고 '개혁적'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그런 해결방식을 들고 나온다. 들고 나와서, 나같은 반대자에게 '그래서 어쩌자고?'로 입을 막는다. 그래서 어쩌자고,의 답은 책 속에 없다. 책 속의 실험들이 나의 조직에 들어맞을 거라는 확신도 없다. 그저 조직을 조직의 문화를 믿음이 사실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그래도 어딘가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나이 든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똑똑하게 말하는 것과 똑똑한 것은 관계가 없다. 또한 말이 많은 것과 똑똑한 것 사이의 상관관계도 미약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똑똑하게 말하는 사람과 말이 많은 사람, 그리고 남의 의견을 공격하는 나르시시스트를 높게 평가하고 그들을 리더로 대접하는 우를 자주 범한다.-p180


성과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역량도 정규분포에 기반해 상대평가하는 회사들이 많은데, 이 또한 조금만 살펴보면 논리적으로 매우 모순임을 알 수 있다. 직원을 채용할 때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부터 역량이 뛰어난 자까지 정규 분포에 들어맞게 골고루 뽑는 회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기업의 채용능력에 형편없는 수준이 아니라면 역량이 중간 이상은 되는 직원들을 뽑을 것이고 직원 간 역량의 차이 또한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p200


목표에 집중하면 달성 의욕은 커지지만 동기는 오래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 실험은 과정(경험)에 집중하는 방법이 목표 달성에 돌입하도록 만드는 데는 약점이 있지만 일단 돌입한 후에는 지속적으로 동기를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p241


왜 그럴까?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목표가 사람들에게 돈과 같은 외적 보상처럼 인식된다고 말한다.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를 저하시키는 것처럼 목표도 그렇다는 것이다. 예컨대 '살을 빼겠다'는 목표는 운동을 경험하는 과정이 아니라 운동을 완료한 후에 얻어지는 보상으로 인식된다. -p242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돈은 목표 달성의 동기를 부여하는 데 매우 부적절한 도구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돈의 폐해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많은 기업들은 금전적 보상을 통해 직원들의 자발적인 협력을 기대하지만 사실 돈은 직원들 간의 협력을 깨뜨리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가장 간단한 도구다. -p286


애컬로프는 이 결과를 '선물교환'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에는 서로 선물을 교환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선물 교환의 개념을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노동자는 자신의 업무량에 딱 맞춰 일할 수 있음에도 높은 임금으로 자신을 고용한 경영자에게 추가적인 노력(선물)을 제공하고, 경영자는 노동시장에서 얼마든지 낮은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지만 추가적인 노력을 기대하고 높은 임금(선물)을 지급한다. 즉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의 상호성에 입각하여 선물의 거래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애컬로프의 연구는 직원들이 경영자의 생각보다 이기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경영자는 노동자들이 정해진 목표에 딱 맞춰서 일하는 데다 '받는 만큼만 일한다'고 간주하지만, 실제로 직원들은 그보다 더 많은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조직에 기여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 선물이라는 이타심이 성과급이라는 이기심으로 변질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의 일이다. 성과급은 이타적인 직원들이 잘 꾸려가던 회사를 이기심이 충만한 직원들로 가득 채우는 촉매제다. 그냥 둬도 괜찮을 텐데 '성과 극대화'란 욕심 때문에 직원들이 알아서 내놓는 선물을 발로 걷어차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과주의가 진정 나아가야 할 방향은 직원들의 이타심을 보호하고 장려하는 문화인데 말이다. -p304~305


당신의 회사는 내부 경쟁을 권장하며 성과창출을 지상목표로 설정했는가? 그렇다면 성과를 창출하는 데 소요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생각해보았는가? 내부 경쟁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경쟁은 고비용의 경영방식임을 깨닫고 소모적인 내부 경쟁을 야기하는 제도와 문화를 걷어내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은 무엇으로 대체해야 할까? 동물과 인간은 본성의 원류를 공유하고 있기에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본성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이야기하는지 알아봐야 한다. 다행히 그 교훈은 다음의 한마디로 정리된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다." -p319


사람들의 생각이 통계적인 모순임을 꼬집는 워비곤 호수 효과는 자신이 일을 잘한다고 말하는 직원들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일깨운다. 따라서 "일 잘하는 사람에게 높은 보상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직원들의 말은 "나는 남들보다 능력과 성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내게'높은 연봉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크다. 차등 보상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직원에게 "보상을 차등화하면 당신이 남들보다 덜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는가?"라고 물어보면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괜찮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진짜로 괜찮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남들보다 연봉을 덜 받을 가능성이 적고 다 많이 받을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차등 보상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직원들의 의견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차등 보상을 실제로 시행하면 오히려 예전보다 '평가지표가 객관적이지 못하다', '평가가 불투명하다'는 식의 불만이 더욱 가중된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접하곤 한다. 성공은 자신의 능력 덕이고 실패는 남의 탓이라고 보는 경향 때문인지 상사는 직원들로부터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는다. ~ 이처럼 차등 보상은 상사와 직원 양측에게 반목과 감정적 스트레스를 조장한다.

이러한 폐해의 원인 중 하나는 '나는 능력이 남들보다 우수하니까 적게 보상 받을 리가 없어. 오히려 많이 받아야 해. 다른 회사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이 차등 보상을 요구하고 인사 부서가 그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듣기 불편하겠지만 이러한 지적은 사실이므로 직시해야 한다. 직원들은 자신이 높은 연봉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심 때문에, 혹은 능력이 떨어지는 다른 직원들이 능력 있는 자신과 비슷한 보상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등 보상을 도입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아닐까? ~ 때로는 직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시류를 따르지 않는 용기도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p346~347


최선의 방법은 평가의 불완전성을 평가자와 직원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객관적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것보다, 평가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한발 물러서서 평가결과를 되짚어보며 잘못된 점을 수정해가는 것이 평가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평가결과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까지 없앨 수는 없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항상 남과 나를 비교하는 까닭이다. -p377


사람들은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을 갈구한다. 의미 있는 일은 직원들에게 활기 넘치는 건강한 삶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조직에게는 생산성 향상과 혁신의 에너지를 선사한다. -p389


밀크만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불안과 불확실성이 사람들에게 의지력의 고갈 상태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룸메이트가 어떤 피자를 사가지고 올지 모르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불확실성조차 의지력을 감소시켜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대안보다는 즉각적이고 이로움이 덜한 보수적인 대안으로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불확실성이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조직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p433~p434 


이 실험 역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분석을 해봤자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나쁜 선택을 하게 됨을 일러준다. 

윌슨의 연구는 분석보다 직관이 우수하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주지만 이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좋은 의사결정에 직관이 유리하냐, 분석이 유리하냐?'라는 질문은 간단히 답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능한 의사결정자가 되려면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할 때와, 분석을 통해 좀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해야 할 때를 잘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점만은 꼭 알아두자. -p478~479


소칼이 장난을 친 이유는 인문학자들이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비판만 가한다는 점을 놀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한 번 읽어서는 이해되지 않는 말이라 해도 권위적으로 보이게끔 포장하면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점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였다. 

사람들은 권위에 약하다. 침팬지들이 우두머리에 복종하고 충성함으로써 생존의 안녕을 보장받으려 하듯 인간의 DNA에도 그런 본능이 강하게 남아있다. 권위를 나타내는 행동이나 말투, 눈빛, 분위기, 남성성을 강하게 풍기는 냄새 등을 통해 후광 효과를 연출하면 대개 꼼짝없이 권위에 굴종하려 한다. 사람들은 뭔가 의심스럽다 해도 전문가가 보는 앞에서는 그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언행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도 않는다. 알지도 못하면서 우스꽝스럽게 "아, 정말 훌륭한 내용이군요."라며 맞장구를 치는 까닭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잘 아는 무리'로부터 축출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학자이자 사회비판가인 노엄 촘스키는 "쉽고 간단한 말로 표현하면 전문가들은 유명해질 수 없고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전문가의 말을 존중하지 않는다. 여기에 지식인들의 고민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문가들이 쉽게 말해주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쉽게 말하는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꼬집는 말이다. -p481~482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 웨이크와 귀노트는 세 번째 실험을 통해, 권력을 가진 사람은 예상 결과물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주의 초점'때문에 예상을 벗어나게 만들 잠재적 요소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권력을 가진 자는 계획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지나친 나머지 근거 없는 낙관주의적 착각에 빠져 실행 중에 발생할 돌발변수를 무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p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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