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드 - 기후 위기 시대, 제2의 전기 인프라 혁명이 온다
그레천 바크 지음, 김선교 외 옮김 / 동아시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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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바쁘게 읽었다. 

사무실에서 찻물을 받으면서 나의 사치스러움을 자각했다. 그 때, 나는 차를 우리려고 뜨거운 물을 받고는 다시 적당히 식었으면 해서 얼음을 추가하고 있었다. 나 자신의 사치스러움을 자각하고 나니 부끄러웠다.

전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전기를 대하는 일반인의 감각에 뜨악한 적이 많았다. 전기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석탄화력과 원자력, 가스발전소 등)은 물을 끓이고, 그 물로 터빈을 돌린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전기로 난방을 하고, 물을 끓여 먹고, 빵을 굽는 건 정말 사치스럽다. 모든 단계에서 에너지는 줄어드는 중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가스렌지를 인덕션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게 너무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조금도 다르지는 않다. 뜨거운 물에 찻잎을 우려서, 얼음을 보탠다. 물을 끓이는 데도 에너지가 들고, 물을 얼리는 데도 에너지가 든다. 나도 참 다를 바 없네. 알고 있지만, 다르게 살고 있지는 않다. 전기는 코드를 꽂기만 하면 내게 오는 거고, 그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크게 상관없다. 우리나라처럼 전기와 관련된 모든 일들을 국가, 또는 국가를 대신하는 공기업에서 한다면 전기가 제 때 제대로 오지 않는 것은 다 나라의 잘못이니 항의하고 따지면 될 일이다.

전기처럼 보이지도 않는 물건을 환영받지 못하는 방식으로 만들고 있어서, 사람들의 어떤 태도에 위축되는 순간들이 있다. 근처 산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이 전망을 보면서 '저 흉물스러운 송전탑'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었다. 내가 하는 어떤 말에 선배가 '그건 네 직장이 독점산업이라 그런 거 아니야?'라고 했던 말도 생각났다. 

책은 미국의 이야기다. 끔찍하고 무시무시하다. 도대체 가능한가 싶게 굴러가는 이야기들이다. 그래도, 어찌저찌 굴러가던 대형 사업자들의 이야기들이 지구 환경을 위한 노력 가운데 재생에너지 사용으로 전환되면서 커다란 도전을 맞는 이야기다.

해체되는 망 산업에 대한 안전성에 대해 읽을 때는 한국통신 생각도 났다. 넷플릭스가 망사용료를 내지 않아서 소송 중이고, 여전히 강짜를 부리고 있는데, 넷플릭스 욕하는 만큼, 망사업자 욕도 꽤 많았다.

원자력발전소에 다니고 있고, 한국전력으로 입사했다. 책에서 만나는 장면장면이 남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우리와 너무 다른 미국의 이야기라서, 번역한 사람도 진지하게 꽤나 긴 글을 덧붙였다. 정치에 대한 은유로도 읽히고 결국 어느 방향일지 가늠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2002년 경까지 전력의 생산과 송배전을 모두 한국전력에서 담당했다. 분사가 이루어졌고, 송·배전망은 한국전력이, 각각의 발전소들은 권역별로 개별 사업자가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애초 분사의 목적은 너무 큰 산업, 그리고 꽤나 건전하고 이익이 있는 산업을 쪼개어 팔려는 것이었으나, 발전노조의 강경한 저항에 부딪쳐 모든 개별 발전사업자는 공기업이다. 공기업이기 때문에, 전기를 파는 방식은 매 분기 한전과 가격 협상을 해서 정산받는다. 한국전력의 손해는 각각의 발전사업자의 손실로 전가된다. 결국 한 몸이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한국전력 시절이라서 전기세,가 아니라고 요금으로 불러야 한다고 배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건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팔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말을에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나는 언니랑 세 시간 가까이 논쟁하던 기억이 있다. 연구하는 쪽인 언니는 신재생에너지로 돈이 돌아야, 기술이 나올 텐데, 정치적으로 천명하지 않으면 돈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었거든. 

나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를 '작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말처럼 이해했었다. 중앙집권 형태의 에너지 권력이 분산되는 이야기. 그러나, 어쩌면 먼저 그 길로 나아갔다는 미국의 상황은 아수라장이다. 모두 다 제각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미국의 이야기는 꽤나 생경하기도 하고, 정말 저러면 큰 일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신재생에너지의 이미지, 태양광을 지붕에 달고, 해가 있는 동안 전기를 팔다가, 해가 떨어지면 전기를 사는 식으로 망에 연결하면, 망은 감당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한참을 하고 있다. 감당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망을 유지보수할 비용을 산업이 이익을 낼 수가 없다는 말이다. 망이라는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 넘치는 생산을 담아둘 수도, 부족한 생산을 감당할 수도 없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어지러웠다.

망을 벗어나는 사람들은 국민의료보험을 이탈하겠다는 부자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망은 지금의 기술수준에서 불가피한데, 사람들은 송전탑을 끔찍이도 싫어하고 만들기만 하면 어떻게든 팔 수도 있고 살 수도 있고 쓸 수도 있는 거라고도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망에 대한 이해가 별반 다르지도 않았던 것도 같다. 전기의 특성이 언제나 가장 큰 제약이 된다. 담아 둘 수 없고, 설비는 언제나 가장 큰 수요에 맞춰야 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총량이 늘어나면 같이 커져야 하는 망,은 어떤 비용으로 이익이 생겨서 개보수될 수 있을까. 신재생에너지를 망에 통합하고도 전력망은 지금처럼 안정적일 수 있을까.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도전 앞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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