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 엽서없음
진가신 감독, 견자단 외 출연 / UEK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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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아침, 티비에서 하고 있었다. 탕웨이도 금성무도 견자단도 다 좋은데, 나는 왜 안 봤었을까, 궁금해하면서 봤다. 

증언 다음 느리게 재연되는 무협적 서사 다음, 금성무가 보는 사건이 다시 재연된다. 진실은 알 수 없는 상태다. 진실은 알 수 없다는 입장에서 금성무의 어떤 추리?는 망상처럼 보였다. 드러나는 상황에서 상대를 무술의 고수로 볼 수 있을 무언가가 있는지 계속 따라간다. 나는 역시 무협을 모르고, 금성무의 망상이 진실이라고 믿고 따라가던지, 견자단이 노력하는 데로 보통의 사람으로 견자단을 보던지 해야 한다.  

법을 집행하려는 의지를 가진 관료 금성무와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려는 견자단 사이의 긴장은 근대국가의 출현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영화를 보는 동안 이것은 중국인이 국가를 대하는 태도는 아닌가 생각했다. 법을 집행하려 하나 법을 집행할 힘은 없다. 무술의 고수는 강하고, 권위를 가지고도 막기는 어렵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부패했고, 법을 집행하기 위해 행사할 수 있는 힘도 부족하다. 금성무는 의지를 가졌으나, 체포영장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지경이고, 순간 순간 자신이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죽이는 아들의 서사가 펼쳐진다. 폭력을 끊기 위해서, 복수의 대물림을 멈추기 위해서 아들은 먼저 자신의 팔을 끊고, 아비를 죽인다. 불가능해 보이는 죽음이 일어나고, 영화는 쓸쓸하게 마친다. 

배경으로 깔리는 멸족의 서사는 복수로 이어지고, 사적 복수가 이어지는 살육을 근대국가는 끊어내지 못한다. 폭력은 끝내고 싶어하는 의지를 가진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나서야, 폭력은 다음 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거대한 나라 안에 얼마나 많은 은원이 흐르고 있을 것인가. 평화를 바라기 때문에 묻어두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국가의 존재 자체가 은원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결국 의지를 가진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선택해야 가능하다. 아버지를 죽이는 서사가 폭력을 끊어내기 위한 것이어서, 권력을 쟁취하는 서사가 아니라 평범한 필부의 삶을 얻기 위한 것이어서 좋았다. 

평화는 개개인의 의지 가운데 겨우 가능하다. 견장을 달고 무기를 가졌다고는 하나, 결국 인간일 뿐인 권력에 의지를 가지고 복종하지 않는다면, 평화는 없다. 어리석다거나 교육받지 않아서가 아니라, 권력의 공백이 가져오는 커다란 불안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의지를 가지고 어느 정도 따르기로 하는 거다. 개개인이 의지를 가지고 수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고,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도를 운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은둔하고자 하는 무술고수가 폭력을 끊고 선택한 아이와 여자,가 바로 미래라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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