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건 볼품없지만 트리플 3
배기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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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3인 딸이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어줬다. 다 샀는데, 이 책을 빠뜨려서 나중에 따로 결제해서 받았다. 되게 얇네, 라면서 받자마자 내가 읽기 시작했는데, 책소개에 있는 그 문장이 첫 문장이다. '섞정, 몸을 섞다 생긴 정의 줄임말이다' 에??? 에??? 엄마가 딸이 고른 소설책을 읽는 거라서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래서, 순순히 읽지 못하고, 삐딱해진다. 나는 촌에서 나고 자란 농부의 딸이고, 오락으로서 의 성교에 시큰둥한 보수적인 사람이고, 그 정체성 안에서 본다. 

세 개의 짧은 소설과 자신에 대한 에세이, 다른 사람이 쓴 글이 붙어있다. 다 짧고 비어있는 부분이 많은 이야기다. 

그래, 도시 사람들은 이게 문제야. 뭘 잘 먹어야지. 사는 게 뭐 별거 있다고 이렇게 술만 먹고 담배만 피고- 요즘 세상에 이렇게 담배를 마구 피워대는 묘사가-, 밥을 안 먹어. 아이구, 도대체 애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진지하지도 않은 관계에서 성교하는 거야. 뭐야. 도대체. 이게 첫번째 소설을 본 내 인상이다. 

두번째 소설은 어땠더라. 좋아하는 것들로도 삶을 가득 채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치기들이 가득 찬 이야기다. 산다는 것에 필요한 것들을 가볍게 말하는 이야기다. 

세번째 소설은 어땠더라. 두번째 소설까지 읽고 였던가, 계속 읽어야 되나, 도대체 왜 딸은 이 책을 사달라고 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 서점의 책소개페이지를 펼쳤다. 뭐라고 소개되어 있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나. 재밌게 읽었다는 사람들이 많고, 세번째 소설이 좋았다는 사람이 있어서, 더 관심을 가지고 본다. 아 뭐가 좋은지 알겠더라. 어떻게 부유해졌는지는 모르지만 부유해서 가난한 화자의 이상한 동거를 허용하고, 자신의 도덕률에 따라 모르는 체하지 않는 강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에 대해 생각한다. 내 이름은 난노, 라는 넷플릭스 드라마 이야기를 할 때 했던 이야기, 강한 사람을 좋아하는 심정에 대한 생각이 났다. 무엇을 팔아 부를 이뤘는지는 결국 알 수 없다. 당장 회사에서는 농락당하는 중이고, 연애는 깨어지기 직전이고, 레일라의 허용없이는 잘 곳조차 없는 화자의 심정에 이입하기보다는 레일라에 이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술을 한다,는 자기 정체성은 결국 무언가를 모르는 체 할 수 밖에 없는 건가,라고도 생각한다. 결국 글로 쓰여진 소설일 뿐이니까, 젊은 한 때의 장면묘사일 뿐이니까, 섹스 쯤이야 가볍게 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이 되고, 먹고 사는 문제야 어떻게든 되는 것이라는 태도가 있다. 정말 그러한가. 먹고 사는 게 그렇게 쉬운가. 딸에게 그렇게 쉽지 않다고 먹고 사는 걸 이렇게 가볍게 보는 책을 보라고 하고 싶지 않다. 사는 건 무거워서, 먹고 살기도 힘들고, 자칫 잘못하면 아기가 생길 수도 있는데, 어쩌자고 몸을 쉽게 섞겠냐고. 

굳이 고르자면 나는 두번째 소설의 젊은 사장님이 좋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중이므로, 그 와중에 많이 잃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나이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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