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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 기분 따라 행동하다 손해 보는 당신을 위한 심리 수업
레몬심리 지음, 박영란 옮김 / 갤리온 / 2020년 6월
평점 :
금방 읽어버릴 가벼운 심리책인 걸 알면서도 서점에서 보여서 사서 바로 읽고 딸의 책상에 올려두었다.
제목 때문에 사고 싶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딱 그 말이 해 주고 싶었다.
송곳,을 읽을 때 노동운동가는 현장의 노동운동가에게 '사람들은 옳은 말을 듣지 않는다, 좋은 사람 말을 듣는다'라고 조언한다. 먼저 그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 되라고. 나는 그 말을 수긍했었다. 그런데, 맞닥뜨린 순간에 그게 어떤 말인지 알았다. 물론 내가 내 자신을 옳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거겠지만, 갈등의 상황에서 갈등을 중재하고자 할 때, 어쩔 수 없이 크게 소리내는 사람의 틀린 말들로 말들이 휩쓸리는 걸 보게 되었다. 평소에 느껴 왔던 소외감 때문에, 거리감 때문에, 격앙되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미 지난 일이니 여기 쓴다고 해도 괜찮으려나.
여직원회장이 되고 그 첫 해 가을 쯤에 어린이집에서 입소순위를 조정하겠다고 운영위원회를 해서 엄마들에게 알렸다. 엄마들 중 한 명이 여직원회 임원이었고, 그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안건으로 상정했다. 300명 못 되는 여직원회라고 해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만한 엄마들은 다 휴직 중이라 발언권이 없는데, 결정이 되고 상황을 들어야 된다고 해서 알아봤더니, 그 전 해인가 부터 육아휴직을 3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직장 어린이집이다보니 부모 모두 회사 소속인 경우 무적 1순위고, 휴직자도 똑같이 적용되다보니 갈등이 생겼던 거다. 나는 좋은 분께 모두 맡겨서 만 3세가 되기 전에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서, 그 무적 1순위가 무슨 의미인지 그게 왜 갈등상황인지 크게 실감하지 못한 데다가 그걸 물어보러 회사 담당자한테 갔더니, 3년 휴직을 줬는데, 어린이집 입소순위까지 유지해줘야 하냐길래 것도 그럴 듯해서 수긍했다. 그런데, 이미 복직한 엄마들, 아직 결혼도 안한 여직원들이 흥분해서는 직장어린이집에 부리는 전업 엄마들의 텃세인 양 성토하는 거다. 어차피 직장 어린이집이고, 전업 엄마라고 해도 아빠가 동료들인데, 우리 건데 그 엄마들이 욕심을 부린다는 식의 태도에 굉장히 생경한 기분이 되었다. 누가 등 떠밀어 다니는 직장이 아닌 데도, 아이를 똑같이 어린이집에 맡기면서도 전업 엄마들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복직한 엄마들이 지금까지 느꼈던 어떤 서러움들이 태도가 되어 판단하고 있었다. '저는 그 엄마들 부럽던데요'라고 말하는 미혼의 여직원에게도 기묘한 태도가 느껴졌다. 운영위원회라는 제도가 있고,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다면서 참여하지 않은 직장 엄마들이 있는데, 그 결정에 대해서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 게 수긍이 되지 않았다.
감정이 태도가 되는 일, 그저 송곳의 그 조언자가 말했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어떤 말인지 나쁜 방향으로 실감이 났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내 모든 권한을 발휘해서 도와주는 걸 테다. 그런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 나서야, 내가 청하는 도움에 조금이나마 귀를 기울이겠지. 감정을 털어내고 상황을 봐야잖아. 예전에는 1년 휴직이었지만, 지금은 3년 휴직이잖아. 어떻게 그걸 모두 가지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거지. 질문이 생기고 질문에 답을 구하는 나의 물음들이 1년 휴직인 보편적인 상황을 근거로 한 법리해석,에 밀리는 식이었다. 감정이 폭발하는 이슈에, 나는 대응할 방법을 모르겠다. 어렵게 들어온 회사에서 어렵게 가진 나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도, 그 엄마들이 부럽다고 말하는 그 질투심에도, 바쁘다고 역할을 맡지 않았거나, 맡았다고 해도 전업 엄마들처럼 자유롭게 시간을 쓰지 못하면서 느꼈던 소외감에도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건조한 수학식같은 서사를 늘어놓는 나는 아무도 설득하지 못했다. 관계지향적인 모임 안에서 나는 그 사람들과 동등한 존재라서 내 말에 실리는 무게보다, 크게 말하고 감정적으로 어필하는 사람의 말에 무게가 실렸다. 결정과 공지의 어긋남 때문에 그 해에 그냥 해프닝이 되고 말았지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점점 더 겁이 났다. 갈등을 다루는 정치라는 영역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지, 점점 더 회의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