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백승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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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MD의 통곡리스트(http://www.kyobobook.co.kr/eventRenewal/eventViewByPid.laf?eventPid=38372&classGb=KOR&orderClick=42d )를 보고, 교보에서 산 책이다. 회사의 단체구매 아이디가 있어서 샀는데, 이사한 주소도 전화번호도 옛날 거였고, 심지어 수신인 이름조차 회사이름이었어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 이미 다른 사람이 사는 집을 노크해서 받았다. 일주일도 더 지난 다음이었다. 붙박이 같은 나처럼 어디든 가려하지 않는 사람이, 어쩌다보니 상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어 쓴 글들이다. 재미있다.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인 자신이 자신의 학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자처하여 택한 문맹의 삶이다. 중국어를 모르는 채로 간 상해에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삶의 이야기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고장나는 빌려사는 집의 물건들에 대하여, 혁명의 작은 집이 커다란 쇼핑몰로 둘러싸이고, 도살장이 신혼부부의 촬영지가 되는 도시에 남은 기억의 아이러니에 대하여 들려준다. 상하이,라는 영어동사가 사기치다,라는 의미라는 걸, 자신의 경험과 함께 들려주기도 하고, 하루라도 먼저 도착해서 가족들을 안내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고,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밖에 말하지 못한 전화통화에 대해 들려준다. 

말을 하지 못하고 나를 둘러싼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바짝 긴장하고 나서야 하는 일이고, 어리숙해서 말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을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다. 바보같았는데, 숨기고 싶었을 텐데, 숨기지 않는 글들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참 흠결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행했던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행동들을 떠올리면, 나는 나도 모르게 식은땀은 흘리기도 한다. 이제 나는 세상이 내게 준 상처보다는 나의 흠결을 더 부끄러워하는 남자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흠결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구로 제멋대로 위안을 받는 남자.

자기의 흠결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나의 흠결을 받아주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위악을 떨 때는 몰랐던 고마움 또한 생겨난다.
‘defaut‘라는 단어를 ‘상처‘에서 ‘흠결‘로 읽어내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아직도 위악을 떨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이 흠결 많은 나를 어떻게 받아줬는지 떠올린다. 그 많은 흠에도 ‘불구하고‘ 나를 받아준 아내, 친구들, 동료들. 그래서 조금 더 웃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내 눈에 보이는 다른 사람의 흠결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아니, 프랑스의 위대한 시인이 흠결없는 영혼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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