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제624호 : 2019.09.03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이번 호 불편할 준비,의 제목은 '범인은 왜 항상 남자인가'이다. 

지면으로 나온 글이고, 나는 독자라 그 위계성 가운데 나는, 세상 의미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는 내가 이상한가, 질문한다. 우먼스플레인,에서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만큼 비난받는 존재는 극단적인 발언들에 지면을 내어주는 진보,연하는 언론들이다.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나는, 미친 놈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것은, 너도 살아야 하고, 나도 살아야 하니, 우리 무얼 해야 할까,다.


'범인은 왜 항상 남자인가'는 남성일반을 범죄자화시키는 말이다. 

글쓴이는 개빈 뉴섬이라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총기난사사건에 대해 한 발언을 인용했을 뿐이지만, 그게 의미있고 중요한 말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으니 가져왔을 것이고, 글이 되었을 것이다. 그 질문이 나오는 맥락과 그 질문을 다시 하는 사이에는 서양과 동양이라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 

나는 동양의 철학이 해온 일이, 문화를 구성한 것들이 폭력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양의 문명에게 동양은 그대로 '여성'이거나 '자연'이어서 참혹하게 정복당한 거라고도 생각한다.-다음 펀게시판을 보다가 굉장히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마을에서 케이팝을 듣는 소녀들이 '아시안 페티쉬'냐고 질문받는다는 짤을 보았다- 서양의 페미니즘 서적에서 드러나는 울분-학문이 여성을 배제한다,라던지, 자연과 여성을 묶어서 배척한다,라던지, 이분법적이고 상호대립하는 은유들이 서양의 학문적 전통 안에 있다-은 서양의 전통 안에서 유효하다. 어쩌면 급격한 근대화로 대학교육까지 학교 안에서 서양식 교육을 받은 나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스무살의 나는 페미니스트임을 스스로 확신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확 트인 지구적 공론의 장에서 지역적 특수성을 배제하고 그대로 말을 따서 옮기는 것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한다. 


'친구로 대하면 친구가 되고, 적으로 대하면 적이 된다'는 동양고전의 명구(https://shb.skku.edu/ygmh/menu4/sub_04_01.jsp?mode=view&article_no=3255614&board_wrapper=%2Fygmh%2Fmenu4%2Fsub_04_01.jsp&pager.offset=0&board_no=63) 가운데, '범인은 왜 항상 남자인가'가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없다. 

관계 가운데 기대하는 바가 결국 상대에게 반영된다. 남자던 여자던 사람이고, 사람으로 대해야 사람 노릇을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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