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를 봤다. 아이를 가지고 싶은 여자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남편이 고민이라고 출연했다. 

세 쌍둥이를 키우느라 애쓰는 여자가 남편의 무심함이 고민이라고 출연했다. 

안녕하세요,를 보고 본 콘택트, 속 언어학자는 아이의 삶과 죽음을 모두 아는 채로도 그 삶을 따라 걸어간다. 

사자소학,을 따라 쓸 때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너무 멀리 가지 마라'라는 글귀를 보며 쿵 가라앉았던 내가 생각났다. 

돈도 많이 들고, 키우기도 힘들고 차라리 강아지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겠다는 안녕하세요,의 남편을 보고 있자니, 내일의 무엇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 되묻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내가 내일 과연 살아있을지를 나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상태로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는 거라고. 아이의 전부를 내가 책임지지 못한다고. 

세 쌍둥이를 아내가 키우는 동안, 자신의 어머니가 양육비에 보태라고 준 돈으로 자신의 장난감을 사들이는 남편에게는 시간이 지나가고 당신은 알 수 없는 깊은 사랑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어려움 없이 취하는 행복 따위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새로운 기쁨에는 새로운 댓가가 필요하다고도 말하고 싶었다. 

콘택트 속 언어학자의 삶을 아프게 쫓으면서는 왜 여성일 수밖에 없는가 생각했다. 여성일 수밖에 없다.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선택은 무모하기 때문에, 남성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한다. 어리석다,는 것이 이런 거라면 여성은 어리석은 걸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한 어리석음,이라고도 생각한다. 

사자소학,의 글귀는 나의 두려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고마웠다. 세계를 여행하는 젊은이들의 말이 넘치는 순간에, 당장 내 눈 앞에서 멀어지는 아이 때문에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부모의 나약한 마음을, 아, 그래 알고들 있어, 싶었다. 알고 있고, 그 마음을 아이에게 가르쳐주다니 고맙구나, 이런 마음이 되었다. 

부모가 되는 것은 새롭고 놀라운 어쩌면 모험,이다. 길고 느리고, 시시각각 변화하고, 원한다고 해서, 늘 가능하지도 않은 두려운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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