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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술 1902-1950 - 조국엔 언제나 감옥이 있었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마치자, 신랑은 "느낌이 어때?"라고 내게 물었다.
신랑의 택배상자에서 꺼내어, 내가 먼저 읽었다. 내가 이 책을 꺼낼 때 신랑은 "누군지 모르지? 해방 후에 설문조사하면 정치인으로 김구만큼 인지도가 있었던 인물이래. 그런데, 지금 아무도 모르잖아. 아예 존재조차 잊혀져서. 궁금해서 샀어."
느낌은 슬프고 안타깝다. 분단으로 '왜곡'되어버린 역사가 그저 안타깝다.
느낌을 묻는 말미에, "읽고 나니, 독립운동은 하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 들지 않냐?"
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니다.
지금 중국이나, 베트남이나, 쿠바나, 북한이 개방을 모색하고, 가장 거대한 '소련'이라는 혁명의 실험이 '실패'라고 불린다고 해서, 애저녁에 눈도 귀도 틀어막았던 우리의 과거를 옳았다고 말한다거나, 여전히 보아서는 안되고 들어서는 안되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우기는' 우리의 현재가 슬픈 것이다. '여기가 싫으면 저기 가면 되잖아'라고 말할 수 있었던 분단의 나라라는 게 슬프고, 사실 더 끔찍하게도 기득권의 이익에 반하는 거라면 아니어도 '저기'라고 '우기고' 몰아내 온 것이 슬픈 것이다.
소설에선가, 어디선가 "말 잘 하고 똑똑하던 사람들은 전쟁통에 모두 죽었지"라는 노인들의 말처럼, 오래도록 '들어서는 안되고 생각해선 안 되고 보아서는 안 되는', 그걸 했을 때 어떤 대가가 기다리는지 학습되어 온 지금의 사람들만 남은 듯한 현재가 슬픈 것이다. 전부를 보아 여기 혹은 저기에 서 있는 사람과 여기만을 보고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은 세상의 크기가 다를 것이다.
그래서, 서로를 믿지도 못하고, 더 좋은 세상도 꿈꾸지 못하고, '여기가 싫으면 떠나면 되지'인 많은 사람들이 슬픈 것이다.
표지의 남자는 웃고 있다, 고 느껴진다. 배신당하면서 끊임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러운 것처럼, 지금 두려운 게 너무 많은 나는 자전거에 전단지를 싣고 전국을 누볐다는 낙천적인 혁명가가 부럽다. 명예롭게 죽을 수 없었던 우리의 역사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