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존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기시유스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영화로도 성공한 [검은집]이었다.

영화도 훌륭했지만 내가 처음 접한 기시유스케를 표현하기엔 많이 부족했다.

그 후 [크림슨의 미궁]과 [악의 교전]을 접하면서 어느새 그의 팬이 되었다.

[검은집]과 [악의 교전]에서는 싸이코패스에 의한 무자비한 학살을 그렸고

[크림슨의 미궁]에서는 판타지 게임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만들어 냈다.

이번에 읽은 [다크존]은 [크림슨의 미궁]이 거대한 스케일로 확장된 완성편이다.

현실이라고 할 수도 없고 비현실이라고 할 수도 없는 판타지적 공간인 다크존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한 본능만으로 서로를 끝없이 죽이는 잔혹한 게임을 벌이는 내용.

지독하게 끔찍하지만 어느새 인터넷 게임 등을 통해 익숙해져 버린 기시감이 생긴다.

그리고 끔찍한 게임의 이변에 숨겨진 한 청년의 비극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된다.

 

책의 도입부에 전투의 무대가 되는 섬의 지형도가 나오고 일본 장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다크존에서 인물들이 벌이는 게임의 규칙은 일본 장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작가 스스로 일본 장기의 팬이어서라고 하는데 일본 장기를 몰라도 읽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나도 일본 장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드물 정도의 몰입감이다.

일본의 전통장기에 서양의 체스와 조합하고 거기에 컴퓨터 게임의 외양을 입힌 시스템.

소설의 주인공들이 장기판이 말이 되어 컴퓨터 게임 속으로 들어가서 싸우는 것 같은 이야기.

마치 게임에서 온 몸이 찢겨서 피를 튀기면 죽어가는 캐릭터의 입장에서 항변하는 느낌이다.

실제로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너무나도 공포스러워 사고가 마비될 정도일텐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잔인함을 목도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작가가 다크존이라는 공간을 게임 속 배경와 연결시키는 부분은 중독된 폭력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서로를 죽이기 위한 치열한 대국의 마지막에 '단장'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쓰카다의 이야기.

오로지 프로 장기기사를 목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누군가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지금의 치열한 경쟁사회는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며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현실이 더 비참할 수 있다.

다크존에서처럼 피가 튀고 온 몸이 찢기는 잔인함은 없지만 현실의 경쟁은 오히려 더 잔인하지 않은가?

결국 벼랑 끝에 몰린 쓰카다의 선택이 가져 온 현실의 비극은 그래서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나도 언제든지 그런 상황에 몰릴 수 있고 나의 선택은 그와 다를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에...

수미상관법을 사용한 마지막 장은 그런 공포를 극한까지 몰아넣는다.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인가?

 

기시유스케라는 작가는 기대이상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빠지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선택이다.

나는 그의 세계에 빠질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세상은 참으로 잔인한 곳이다. 강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